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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122일간의 언론 보도가 남긴 과제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5-05-30

지난 122일 동안 국민은 그 어느 때보다 언론에 주목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불안과 분노, 충격에 휩싸였던 국민을 위해 언론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탄핵 기간 드러난 언론 보도의 문제점과 지속되는 악습과 관행의 극복 방안을 고민해 본다. 편집자 주

 

122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작년 12월 3일부터 탄핵 선고가 내려진 4월 4일까지의 기간이다. 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시민들은 수시로 급변하는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며 매일매일을 불안과 분노, 충격 속에서 지내야 했다. 충격적인 뉴스의 홍수는 여론의 정파적 양극화와 극한 대립이라는 한국 민주주의의 왜곡된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자, 언론은 관찰자가 아니라 그러한 갈등에서 중요한 한 축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계엄 선포와 해제 직후만 해도 비판적 관망 자세를 취하던 언론은, 탄핵 반대 세력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곧 정파적 양비론이라는 이전의 진영대결 자세로 되돌아갔다.

 

122일은 한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울 이례적이고 극적인 사건으로 넘쳐났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는 적어도 탄핵 심판이라는 헌법적 절차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묵시적 합의가 여야 간에 존재했던 반면, 이번 탄핵 국면에서는 불법적 계엄과 헌법재판소의 판결까지도 마치 정치 집단 간의 대립적·논쟁적 사안처럼 다뤄졌다는 점이 큰 차이일 것이다. 언론은 헌법의 권위와 민주주의적 기본 가치를 부정하는 목소리조차도 정치적 의견 표현이자 정당한 뉴스원인 것처럼 취급하며 여과 없이 퍼다 날랐다. 이렇게 해서 증오와 폭력에 호소하는 극우 세력은 헌법 기구나 합법적 정당만큼 당당하게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취재원으로 대접받았다. 이 기간 보도에서는 미국의 언론학자 대니얼 핼린(Daniel Hallin)이 말한 ‘정당한 논쟁’ 영역과 ‘일탈’ 영역 간 구분이 사실상 사라졌다.

 

122일간의 기록은 사실상의 ‘정서적 내전’으로 정치적 민주주의와 언론이라는 제도의 토대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된 초유의 사태를 사건 단위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한국 언론 보도의 사건사에 획을 긋는 한 장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처럼 극적인 사건만 강조하다 보면, 그 표면적 이례성과 특이성 저변에 흐르는 연속성을 간과하기 쉽다. 한마디로 말해, 122일간의 보도에서 드러난 언뜻 이례적이고 특이한 보도 양상은 사실은 오랫동안 한국 언론에 꾸준히 내재한 모순되고 왜곡된 흐름이 집약돼 나타난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장 경쟁의 부산물, 정파성과 선정주의

 

탄핵 국면의 언론 보도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정파성과 선정주의라는 두 축을 꼽을 수 있다. 정파적 시각과 상업적 전략이라는 언뜻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 두 특징은 사실 시장 경쟁의 부산물이라는 공통점으로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오랫동안 정파성은 논쟁적 사안을 둘러싼 기존 언론의 다양한 의견 차이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 차이가 반드시 전통적인 다원적 민주주의에서 집단별로 추구하는 이념적 가치 차이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다. 서구의 보수주의가 법치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 반면, 탄핵 국면에서 이른바 보수는 헌법을 파괴하는 쿠데타를 옹호하고 때로는 폭력에 호소했으며 국회의 헌정 질서 회복 시도를 입법 독재로 매도하기까지 했다. 보수 언론의 논조는 보수주의의 정치적 가치에 따른 판단보다는 수세에 몰린 탄핵 반대 세력의 위기의식에 영합하는 데 더 치중한 듯하다. 이는 정파적 가치 차별화라기 보다는 주 표적 고객에 충성하는 상업적 전략의 산물로 해석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이러한 전략하에서 사건의 진실이나 사실성은 무시되고 저널리즘의 기본 가치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정파성과 더불어 두드러진 또 한 가지 추세로는 선정주의 형태의 뉴스 연성화를 들 수 있다. 탄핵 정국에서는 온갖 사회 집단의 인물들이 앞다투어 자극적 발언과 근거가 의심스러운 거짓 주장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유튜브는 이러한 극단적 말의 홍수에 최적의 장을 마련해주었다. 지명도가 높은 일부 유튜버는 수많은 구독자를 통해 영향을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기성 언론이 이를 다시 받아서 중계하는 관행 덕분에 더 광범위하게 파급효과를 미쳤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탄핵 보도 훨씬 이전부터 이미 뚜렷한 추세로 자리 잡았지만, 탄핵을 둘러싼 갈등 국면에서는 정치적 파장 때문에 유독 큰 폐해를 낳았다.

 

서구 저널리즘의 역사에서는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이 이미 유튜브와 유사한 선정주의적 행태로 악명을 떨쳤지만, 언론계 전체로 보면 권위지의 절제된 보도가 이를 보완하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한국 언론에서는 선정적 대중지의 공백을 메울 권위지의 전통이 부재했고 오히려 신문이나 방송 등 레거시 매체가 유튜브식의 타블로이드 보도 양식을 모방해 주목을 끌려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여론의 균형이 무너졌다. 기성 언론의 시장 전략으로서 뉴스의 선정주의가 ‘타블로이드화’, 더 나아가 ‘유튜브화’로 진화하면서 뉴스 전반의 질적 하락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추세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보도를 사실 확인과 진실 규명의 과정으로 여기지 않고, 논란과 비난, 화젯거리 유발을 통해 클릭 수 증가에 목표를 둔다는 것이다. 이는 유튜브와 거의 구분하기 어려운 보도 관행이다.


받아쓰기 관행이 초래한 ‘황당 발언 잔치’

 

탄핵 보도 기간 동안 정파적 선정주의는 언론계의 해묵은 악습과 얽혀 더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바로 추가 검증 없이 출입처 발언의 ‘받아쓰기’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오랜 직업 관행이다. 언론은 탄핵 정국을 계엄 선포의 위헌성 여부를 둘러싼 법률적 문제에서 벗어나 정파 간 세력 대결 양상으로 변질시키면서 각종 정파적 인물의 극단적 주장과 검증되지 않은 발언을 마구잡이로 퍼다 날랐다. 특히 탄핵 심판 대상인 대통령과 주변 인물의 인용문 중에는 사실과 전혀 부합되지 않거나 황당무계한 주장이 무수하게 쏟아졌고, 이 모든 발언은 언론이 인용문 형태의 기사 제목으로 부각시키면서 여과 없이 전달됐다.

 

국회 병력 투입의 진실 공방에서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 요원’,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었다는 주장은 이러한 기상천외한 발언에서 압권을 이룬다. 기자들이 윤 대통령 측 주장 역시 주요 취재원으로 인용할 수는 있겠지만 이들의 주장을 기사에 인용할 때는 내용의 팩트 여부나 중요도에 따라 선별하고 검증하는 책임이 뒤따른다. 탄핵 정국에서 넘쳐난 황당 발언의 말잔치는 물론 한국 민주주의의 짧은 역사에서 유래하는 정치적 후진성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평소 팩트체크를 게을리하는 언론 관행이 초래한 그릇된 학습효과의 산물이기도 하다.

 

탄핵 보도를 둘러싼 그동안의 정파적 갈등은 이처럼 ‘따옴표 저널리즘’의 극단화라는 언론의 병폐와 쌍둥이처럼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이러한 보도의 문제점은 유독 탄핵 정국에서 두드러진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취재원에 대한 유착과 인용문의 팩트체크를 거의 하지 않는 언론 관행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레 나온 부산물에 불과하다. 나아가 언론은 이러한 식의 보도를 ‘양비론’ 추구라는 또 다른 관행으로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탄핵 심판이라는 헌법 집행 절차 문제를 진보-보수 간의 정파적 세력 다툼, 인물에 대한 호불호 등 다른 정파적 이슈와 뒤섞어 양비론이라는 정파적 기회주의의 대상으로 변질시킨 것은 어떤 이유로든 합리화하기 어렵다.

 

122일간의 극심한 사회 갈등과 혼란은 탄핵 인용으로 끝이 났다. 언뜻 보면 언론의 과열된 보도 역시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122일의 경험은 한국 언론에서 또 하나의 흑역사로서 두고두고 성찰할 만한 숙제를 던져주었다. 이는 언론계의 미래를 어둡게 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신뢰까지도 손상하고 있다. 국내외 정치 경제 환경이 급변하고, AI 기술의 발전으로 기자 없는 언론의 가능성까지 점쳐질 정도로 직업 환경 역시 숨 가쁠 정도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언론이 안주해 온 과거의 어두운 전통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혁신 없이는 다가올 미래의 모습 역시 낙관적이지 않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의 현실이지만, 악몽처럼 드리운 과거의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 보기 어렵다. 혁신은 테크놀로지 도입 자체가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진 삶의 방식을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이야말로 122일간의 악몽 같은 경험이 남긴 소중한 교훈이라면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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