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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트렌드]호외의 역사와 의미
미디어 트렌드 | 등록일 : 2025-01-24

오랫동안 모습을 볼 수 없었던 ‘호외’가 지난해 12월 재등장해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실질적으로는 이미 알고 있는 뉴스를 재확인 시켜주는 기능뿐임에도 대중이 열광한 이유는 무엇인지, 디지털 시대 호외 발간의 의미와 시사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2024년 12월은 연말의 들뜨고 흥겨운 분위기 대신 암울하고 충격적인 뉴스로 넘쳐난 시간이었다.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은 “종북 세력 척결, 헌정질서를 지키겠다”라면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에서는 즉시 의원들을 소집해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고, 계엄은 6시간 만에 끝났다. 우여곡절 끝에 12월 14일에는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이 짧은 시간 동안 거리는 촛불시위대로 메워졌고, 사건 전개를 둘러싼 뉴스뿐 아니라 온갖 형태의 의견, 감정 표출, 루머가 온라인에 넘쳐났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숨 가쁜 사건 전개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70~80년대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졌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언론이 제공하는 단편적이고 통제된 뉴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면, 지금은 사건 전개 과정 내내 모바일과 인터넷이 주된 소통 수단이 되면서 여론 통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흥미로운 현상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오랫동안 잊혔던 ‘호외’가 서울 시내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2024년 12월 1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신문사들은 앞다퉈 호외를 발간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시민이 이겼다>, <내란 수괴 윤석열 탄핵안 가결> 등의 극적인 제목을 붙였고,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각각 <윤대통령 탄핵 가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등의 담담한 제목으로 호외를 발행했다. 종이신문을 읽는 사람이 드문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종이판 호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지하철역에서 호외를 집어 들고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가 하면, 온라인 장터에서는 호외를 고가에 매입하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관심은 디지털 음원이 대세를 이루는 이 시대에도 사회 일각에서는 투박하고 지직거리는 LP 음반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는 추세와 비슷한 양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속보성 보완을 위해 등장해 역사의 뒤안길로

 

호외는 원래 기존 대중 매체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출현한 현상이었다. 일간신문이 대중 매체에서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 신문은 하루 단위의 보도 주기에 의존해 뉴스를 전했다. 하지만 이 보도 체제에서는 마감 시간 이후 중요한 사건이 갑자기 터질 경우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하기에 속보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그래서 신문사가 발행하는 호외는 마감 시간과 무관하게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빠르게 보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호외 문제를 연구해 온 언론인 정운현은 지금까지 국내 신문들이 발간한 신문 호외가 대략 1,000여 건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당시로서는 속보성이라는 장점 때문에 호외 발행은 신문사들 사이에 또 다른 경쟁의 장이 되기도 했다. 사건에 따라서는 심지어 한 신문사가 하루에 여러 차례 호외를 발행하기도 했는데, 한국전쟁 당시 서울신문은 하루에 여섯 번 호외를 발행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신문은 하루에 여섯 번 호외를 발행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24년 12월 4일 서울 종각역 인근에 배포된 호외 ⓒ연합뉴스

 

 

하지만 호외 자체가 신문의 속보성 제약을 보완할 목적으로 생겨났기에, 방송 매체가 등장하면서 호외 발행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신문은 방송과 속보성에서 경쟁하기가 어려웠다. 호외는 신문사의 거점인 서울 인근에만 배포됐기에 파급효과 역시 방송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신문 호외 발행은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발간 빈도가 급격히 줄었다.

 

더구나 인터넷과 모바일의 등장은 호외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흔들어놓았다. 이용자들이 지리적·시간적 제약 없이 실시간으로 뉴스를 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모바일은 호외가 수행하고자 했던 역할을 훨씬 더 빠르고 효과적이며 지리적으로도 더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서 완수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의 양상은 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2023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수용자 조사에 의하면 텔레비전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수용자 비율은 76.2%, 포털을 이용하는 비율은 69.6%에 달했다. 반면에 종이신문 이용자 비율은 10.2%에 불과했는데, 수치 자체가 낮을 뿐 아니라 10년 전의 33.8%에 비해서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포털 이용자 비율에는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숏폼, SNS, 팟캐스트 등 다른 온라인 정보 채널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뉴스 유통의 주도권은 사실상 온라인 매체로 넘어갔다고 보아야 한다.

 

‘시대착오적’ 부활? 이면의 의미 되새겨야

 

그렇다면 2024년 말 다시 등장한 호외는 미디어 역사의 시대착오적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인가? 기능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이용자들이 모바일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뉴스를 재확인 해주는 데 그쳤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 시대착오적인 호외 발행이 사람들의 관심을 적지 않게 끌었다는 사실은 신문이라는 매체의 존재 의의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기회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인 정운현은 호외를 ‘대사건의 색인’이자 호외의 역사는 곧 우리 역사의 ‘사건사’라고 규정했다. 역사 기술은 수많은 크고 작은 사건 중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을 추려내 정확하게 기록하는 작업을 한다. 호외 발행 자체가 그 사건의 역사적 중요성과 기록의 권위를 말해준다. 넓게 보면 신문 자체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비슷한 역할을 추구했다. 한때 신문은 현대의 ‘사관(史官)’으로서 ‘정론직필’과 ‘공명정대’를 표방한 적이 있다. 비록 언론의 실제 행태는 이 잣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이는 언론인의 직업적 이상이자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치를 지배하던 담론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낭만적 시대는 사라졌다. 특히 신문은 정파성과 상업주의에 사로잡혀 탐욕스러운 유명인들이 배설하는 거짓말, 과장, 허위 정보를 여과 없이 중계하는 유튜브 채널로 전락한 지 오래고, ‘기레기’라는 노골적인 비난에 대해서조차도 거의 무감각해진 상태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호외의 ‘시대착오적인’ 부활은 오랫동안 잊힌 신문의 낭만적 담론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호외는 속보성에서는 모바일 정보에 뒤질지 몰라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세심하게 기록하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언론인들이 호외에 기울이는 만큼의 정성이 왜 일상적 뉴스 가치 판단에는 투입될 수 없는 것인가? 지금처럼 변화와 새로움이 당연한 시대정신으로 통용되는 시대에, 호외는 오래된 가치, 전통, 권위, 신중함이라는 해묵은 유산이 언론에게는 미래의 가치로서 아직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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