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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던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언론 또한 저마다 총력을 다해 총선 보도에 임했다. 이번 총선 보도 역시 기존에 지적됐던 문제점들이 되풀이됐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제22대 선거 보도의 명암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갈등과 논란, 분노와 열광으로 얼룩진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언론의 총선 보도는 드라마틱했던 선거 과정만큼이나 보는 이에게 극심한 감정적 널뛰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겼다. 총선 보도 전반을 돌이켜보면서 평가하자면, 수많은 해묵은 문제점이 상당 부분 되풀이되면서도 건설적 미래를 지향하는 희망의 조짐도 보였다.
이번 총선 보도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언론의 뿌리 깊은 관행이던 ‘경마 보도’와 ‘따옴표’ 저널리즘, 가십 보도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문제점들은 이번 총선을 지역구 대표자 선출 과정보다는 정파적 권력투쟁의 장으로 파악하는 언론의 과잉 정치화 성향이 상업주의 추구와 만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징후로도 볼 수 있다.
경마식 보도에 밀려난 공약 검증과 쟁점
첫 번째로 지적할 부분은 경마식 보도의 문제점이다. 총선 기간 내내 언론은 정치 세력 간, 또 정당 내부 유력자 간의 대립과 갈등, 권력투쟁의 관점에서 사안을 보도했다. 다시 말해 언론은 선거 과정을 주로 경쟁, 판세, 승패 등 기존의 세력 균형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편협한 정치공학적 관점에서만 파악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렇게 되면서 경마식 보도 자체의 선정성이란 문제점과 더불어, 선거 보도의 다른 핵심 기능들이 빛을 잃는 부작용도 생겨났다.
예컨대 이 시기에는 온갖 여론조사가 쏟아져 나왔는데, 그 결과 보도에서 경마식 보도의 병폐가 두드려졌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여야 후보자 간의 경쟁이 치열했기에, 여론조사 결과 역시 다수가 통계적 오차 범위 안의 차이로 나타났다. 그런데 상당수의 언론은 이 차이를 선두 경쟁의 틀에 억지로 꿰맞춰 ‘오차 범위 안에서 우세/역전’이라는 해석을 남발했다.
오차 범위 내의 차이는 경합이나 판단 유보로 해석해야 하는데 수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바람에 통계가 왜곡돼 버린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보자면 이러한 보도 태도는 여론조사 결과 자체가 곧 여론의 반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물론 선거 보도의 구태에서 탈피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MBC의 <여론M>은 여러 조사 결과를 취합·제시해 조사 간의 편차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추세’를 읽어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었는데, 이는 여론조사 보도의 한계를 개선하려는 긍정적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총선 결과를 경마식 경쟁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데서 생겨난 다른 문제점도 있다. 경쟁의 산물인 투표 결과는 복잡다단한 해석의 여지를 갖고 있는데, 이 미세한 의미 차이에 주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총선 개표 직후 언론은 ‘석권’, ‘참패’ 등의 자극적 문구를 사용하면서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동서가 양분된 지도를 제시했다. 그렇지만 지역별 득표율 분포는 이러한 이분법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다양한 의미 층위를 갖고 있다. 득표율 분포만 놓고 볼 때, 대구·경북과 호남, 제주 지역을 제외하면 양당 간 격차는 그리 압도적이지는 않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이 득표율 격차는 한 자리 숫자이거나 많아야 10%p대에 그쳤기 때문이다).
양당 간 의석수 차이는 커 보였지만, 지역구 개표 기준으로 양당의 전체 득표율 격차는 5.4%p에 불과했다. 대다수 지역에서 승자의 득표율은 50%대 초반에 불과한데, 그렇다면 승패 결과를 떠나 나머지 40여%의 선택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수치들이 여론의 향배 판단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이러한 의문들은 여론의 구체적 양상에 관해 좀 더 심층적으로 해석해야 할 결과가 경쟁의 승패 측면에서만 해석되는 바람에 나타난 문제점의 단면을 보여준다.
경마식 선거 보도에 치중하면서 생겨난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사건의 정치적 의미와 중요한 이슈가 외면당했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가 대통령 중간평가와 정당 간의 주도권 경쟁의 성격을 띤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근본적으로는 지역구 대표자 선출 절차이기도 했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선거 보도에서 공약 검증이나 쟁점이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 물론 이처럼 혼탁한 양상 속에서도 앞으로 선거 보도의 대안으로 고려할 만한 긍정적 변화의 조짐도 일부 나타났다. 중앙일보의 <공약은행>, 동아일보의 <당후루>, 한국일보의 <제22대 국회의원 총 선거> 등은 선거공약의 쟁점이나 후보자 정보 등 유익한 정보를 도표나 인포그래픽으로 정리한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했는데, 이는 선거 보도에서 그동안 한결같이 지적된 한계를 뛰어넘어 실질적이고 유익한 정보 제공이라는 취지에서 나온 시도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뉴스 이용이 주로 포털 등의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는 현재 환경에서 이러한 노력이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
따옴표 저널리즘과 선거 보도의 연예화
둘째로는 이른바 ‘따옴표’ 저널리즘과 뉴스의 ‘연예화’를 들 수 있다. 이번 총선 보도는 정치인의 발언을 중계하고 제목에까지 내세우는 따옴표식 보도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따옴표 보도는 갈등과 경쟁 중심의 경마식 보도와 짝을 이루면서 정치를 갈등화 하는 수준을 넘어 희화화하는 역할을 했다. 따옴표 보도에서는 대개 유력한 정치인의 막말이나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중계했고, 인용부호는 언론의 검증 책임 회피 장치로 악용됐다. 기자는 이 과정에서 정치인의 주장을 일단 의심하고 팩트체킹해야 할 뿐 아니라, 발언의 맥락을 확인하고, 반대 주장도 취재해 교차 검증까지 해야만 제대로 된 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한참 거리가 멀다.
나아가 유력 정치인들의 폭탄선언과 자극적인 말싸움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치면에 마치 연예 기사를 연상시키는 자극성 가십 기사가 넘쳐나게 됐다. 정치인의 발언 취지나 맥락, 내용의 사실성보다는 표현 행위 자체가 유발하는 ‘화제성’이 초점이 되었기에, 파급효과 측면에서 정치 기사가 연예 기사와 비슷하게 변해버린 셈이다. 언론사에게 이러한 관행은 포털에서 클릭 수를 늘리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정치인은 무책임한 발언으로 의도한 홍보 효과를 얻고 언론은 손쉽게 주목을 끌 수 있으니, 양자에게는 만족스럽겠지만 정치적으로는 바람직하지 못한 공생관계가 형성된 셈이다. 이런 식의 선거 보도가 과연 유권자의 판단에 어느 정도 유용성이 있을지 의문이며, 오히려 정치 혐오와 냉소주의를 유발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이처럼 잘못된 보도 관행은 여론을 오도하고 민주주의 정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병폐 재연했지만, 새로운 가능성 보여줘
세 번째로 선거 보도와 관련된 제도적 문제점도 지적하고 싶다. 현행 제도에서는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선거일 일주일 전부터 금지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애초부터 실제 여론 동향과 동떨어진 정세 분석이나 결과 예측 기사가 나올 가능성이 컸다. 특히 상당수의 선거구에서 후보자 간 예상 득표율 격차가 근소한 상황에서는 잘못된 예측 보도가 실제 투표 행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사전투표 제도가 도입되고 나서는 금지 기간이 종료된 지 불과 이틀 후 투표가 시작돼, 금지규정의 취지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또한 이번 총선처럼 선거 당일 투표자만을 대상으로 한 출구조사 결과가 실제 개표 결과와 상당히 동떨어지게 나올 경우 언론의 예측 보도가 웃음거리가 될 우려도 있다. 앞으로 이 제도 개선과 관련해 당사자이기도 한 언론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시급하다.
이번 총선 보도는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해묵은 병폐를 재연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가능성의 조짐도 보여주었다. 이와 더불어 매체 환경 변화로 등장한 새로운 양상이 기존 관행의 명암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현상도 볼 수 있었다. 가령 선거판을 한동안 시끄럽게 했던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에서 볼 수 있듯이 유튜브발 뉴스와 기성 언론의 정치 보도 사이의 구분은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 선거 보도에서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맞는 뉴스 전달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개선과 변신을 모색해야 하지만, 자극적이고 불확실한 정보를 퍼 나르는 속보 경쟁보다는 저널리즘의 오랜 원칙인 검증과 확인, 절제의 미덕을 체질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