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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저널리즘 하우투 - 스토리텔링 하우투
기획연재 | 등록일 : 2021-04-08

장기기증 기사를 기획한다면, 기자들은 우선 죽음의 문턱에서 누군가의 장기를 기다리는 환자 서너 명을 확보해야 한다. 섭외가 쉽지 않겠지만, 장기기증자도 꼭 필요하다. 장기기증에 대한 법규를 찾아봐야 하며 장기기증의 현황과 어려움, 이식수술, 장기기증 활성화 대책, 장기기증 선진국의 모범 사례도 알아볼 것이다. 그리되면, 기사는 이런 순서로 작성된다.

 

환자 #1의 다급한 사례를 소개한 다음에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환자는 많지만, 기증자는 적다는 주제를 제시한다. 장기기증의 절차는 간단한데도 기증자가 많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고, 환자 #2와 #3을 보조 사례로 덧붙인다. 장기기증자의 선행 사례와 함께 장기기증의 활성화를 강조하며 기사를 마무리한다. 그러면서 기사 곳곳에 관련 법규와 통계, 전문가 코멘트를 덧붙일 것이다. 기사에 따라 내용의 순서는 조금 바뀔지 몰라도 구도는 똑같다. 작년에 모 일간지는 200자 원고지 25매짜리 기사를 꼭 이렇게 보도했다. 이보다 더 의욕적이라면, 설문조사와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 좌담도 시도할 것이다. 이런 식의 보도는 장점과 함께 단점도 지닌다.

 

장점은 사안을 일별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장기기증의 A부터 Z까지를 단박에 알고 싶다면, 이런 기사를 보면 된다. 단점은 기사가 사안의 모든 부분을 중시하는 바람에 어느 한 부분도 특별히 기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사가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다면, 어느 한 부분이라도 유다르게 부각해야 한다. 장기기증 사안에서 그럴 만한 곳은 역시 장기기증자와 수혜자다. 이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장기기증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다. 지난달에 동아일보는 <환생>을 보도하면서 그렇게 했다.

 

독자를 울린 우둔하고 비효율적인 취재

 

<환생: 삶을 나눈 사람들>(이하 <환생>) 1화1)는 장기기증자 사례를 두 부분으로 나눴다. 첫 부분은 6m 높이에서 떨어져 두개골이 부서진 동생과 그의 장기기증을 결정했던 형을 다뤘다. 동생의 치명적인 사고를 듣는 형의 전화 통화 장면, 동생의 끔찍한 얼굴 모습, 동생의 손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이름을 부르던 어머니, 담당 의사가 형에게 절망적인 사실을 전해주는 장면, 동생의 죽음을 예견하고 부모에게 장기기증을 의논하던 형, 장기 적출을 위해 수술실로 가기 전에 동생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을 감겨주던 아버지, 수술실로 가는 동생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며 병상을 부여잡은 어머니…. 기사는 이런 장면들을 그대로 카메라로 찍고 글로 옮겼다.

 

1화의 두 번째 부분은 장면이 확 바뀌어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 이하 코노스) 상황실을 보여준다. 코노스는 부산에 있는 동생의 심장을 이식받을 수 있는 환자를 꼬박 하루가 걸려 서울에서 찾아냈다. 부산 취재팀이 동생을 취재하는 동안 서울 취재팀은 이 수혜자를 만났다. 6개월째 인공 심장을 달고 사는 수혜자는 심장 기증 소식에 놀라움과 감사, 미안함, 이식수술의 불안감을 기사에 표현했다. 심장이식은 4시간 안에 이뤄져야 해서 동생의 심장은 부산의 병원을 떠나 부산역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수서역에 도착한 뒤, 구급차로 서울의 병원에 이르자마자 수술실로 들어갔다. 취재팀은 군사작전 같았던 이 3시간 58분을 생생하게 기사에 담았다.

 

<환생> 1화에 담긴 장면들은 기존 기사에서 본 적이 없다. 장기기증의 디테일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적은 기사는 없었다. 기사가 예사롭지 않아서 그런지 댓글도 남달랐다. “기사를 읽고 울어본 적 처음이다”, “자다 깬 새벽에 기사를 읽다 눈물범벅이다”, “모처럼 기사다운 기사를 읽는다”, “삶과 죽음을 돌아보게 만드는 기사” 등 동생의 명복을 비는 위로의 댓글은 수천 개나 됐다. 왜 이런 댓글이 이렇게 많이 달렸을까?

 

이 기사는 사례-주제문-사례-통계-코멘트 식으로 전개되는 대신 그저 여러 장면을 보여줬다. 마치 다큐멘터리 같았다. 기사를 이렇게 쓸 수 있었던 것은 취재를 다르게 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취재원의 말이 아니라 장면에 주목했다. 취재원에게 질문을 하기보다 취재원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과 움직임을 관찰했다. 인터뷰도 취재원의 내면이 드러나는 데까지 깊숙이 들어갔다. 기자가 알고 싶은 것을 취재원에게 요구하는 대신 취재원이 스스로 보여줄 수 있도록 기다렸다. 한마디로, 가장 우둔하고 비효율적인 취재였다. <환생>은 이렇게 전통적 취재와 기사 형식에서 완전히 벗어났기에 근래 보기 드문 성공작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 기사는 한국 언론에 두 가지 고민거리를 던진다.

 

<환생>이 언론에 던진 고민거리

 

첫째는 ‘이 기사의 작품성을 더 높일 수 없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기사에 웬 작품성이냐고 의아해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영화가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으면 최상이듯이, 이 기사도 대중성만큼이나 작품성을 잡았더라면 한국 언론사(史)에 남을 ‘레전드 기사’가 됐을 것이다.

 

사실, <환생(디지털 버전)>은 1화 기증자, 2화 수혜자, 3화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사람들, 4화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소속의 장기기증 코디네이터, 5화 장기기증을 둘러싼 오해, 6화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한 과제로 나눠 보도했다. 앞에서 봤듯, 1화도 굳이 두 부분으로 쪼갰다. 각 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지만, 이들을 모두 합쳐서 엮는다면 더 크고 화려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는 언제나 그렇게 한다. 내용을 쪼개거나 나누는 대신 합치고 엮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수백 쪽의 줄글과 2시간의 영상에 내내 몰입하도록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부분만으로는 단조롭고 평탄한 1인극이지만, 부분들을 엮으면 여러 인물이 등장해 경쟁하는 입체적인 구도로 바뀐다. 이것이 진짜 ‘이야기’다. 이야기의 힘은 세계의 모든 작가가 바이블로 여기는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2,300여 년 전에 설파한 터라 여기서 재론할 필요는 없다.

 

이야기의 제1요소는 주인공이다. 주인공 없는 소설이나 영화는 없다. <환생> 기사에서 주인공을 물색한다면, 당장 장기기증자가 떠오른다. 기증자의 가족도 괜찮다. 하지만 누구나 기증자를 선호할 것이므로 오히려 수혜자를 주인공으로 잡고 기증자를 조연으로 삼는 차별화 전략도 좋다. 더 도발적인 기자는 4화의 코디네이터를 주인공으로 잡을지 모른다. 가족에게 장기기증을 안내하고 뇌사 확인부터 이식수술까지 기증의 전 과정을 조율하는 코디네이터는 기증자와 수혜자의 처지, 장기기증의 법규와 문제점, 왜곡된 사회적 시선 등을 모두 다 잘 아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를 통해 장기기증의 전모를 보여주기 수월하다. 실제로, <환생> 4화의 코디네이터는 간호사 출신으로서 이식수술과 같은 전문적 의학지식도 지녔다. 이렇게 되면, 코디네이터가 주연을 맡고, 기증자와 수혜자는 조연을, 가족과 의사 등은 엑스트라 역할을 맡는 구도가 된다. 이제 기사는 장기기증 사안의 각 부분을 순차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부분들을 종횡으로 엮는다. 평탄 구조가 입체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코디네이터가 등장해 기증자 #1의 사연을 소개하다가 수혜자 #1의 처지가 나오고, 다시 기증자 #1로 돌아왔다가 기증자 #2, 수혜자 #1 또는 수혜자 #2, 가족, 의사 등이 번갈아 나오면서 이야기는 전진한다. 소설이나 영화의 모든 장면에 주인공이 등장하지는 않듯이, 기사에서도 주인공이 모든 장면을 통제할 필요는 없다. 전체적으로 주인공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분위기를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처럼 기사의 주인공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캐릭터(character)로 부른다.2) 결국, 기자는 ‘코디네이터의 눈’으로 사람들에게 장기기증의 세계를 보여주게 된다.

 

<환생>과 관련한 두 번째 고민은 ‘언론은 무엇을 위해 이런 기사를 쓰는가?’와 연관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 기사는 현재로도 매우 좋다. 많은 독자가 이미 울었으며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도 당장 <환생>을 보면 울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 울리기’가 저널리즘의 본질이나 목표는 아니다. 동아일보 내에서도 <환생>에 대해 감정 과잉 아닌가, 휴머니즘이 기사의 목표냐와 같은 의문이 제기됐다. 언론이 이런 아이템을 보도하는 목적은 두 가지다. 장기기증의 ‘선행 바이러스’ 전파와 정책적 문제점 노출. 기사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뜨거웠던 것으로 보아 전자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된 것 같다. 문제는 후자 즉 장기기증의 문제점 같은 사회적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자로서 더 욕심을 내고 싶은 곳도 당연히 여기다. <환생> 취재팀도 그것을 시도했지만, 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환생> 6화는 장기기증 전문가 4명에게 장기기증 현황이나 장기기증 정책과 관련한 문제점을 인터뷰해 그 결과를 Q&A 형식으로 정리해 보도했다. 그런데 6화의 페이지뷰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적어서 동아일보는 급히 웹사이트 톱 자리에서 기사를 내려야 했다. 기자들이 강조하고자 했던 콘텐츠를 독자는 철저하게 외면했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그런 것에 관심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증자와 수혜자의 애절한 사연을 들려주다가 장기기증 현황이나 의료 정책의 문제점을 정색하고 지적하면, 독자는 흥미를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중대한 문제를 엄숙하게 가르치듯이 말하면, 누구도 기분 좋게 들으려 하지 않는다. 수험서 같은 주입식 콘텐츠에 지칠 대로 지친 한국인 아닌가? 그런 묵직한 콘텐츠는 오히려 편하게 읽고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제공될 필요가 있다. 휴머니즘 같은 소프트 콘텐츠에 정책 같은 하드 팩트(hard facts)를 집어넣으려면, 둘을 따로 주면 안 되고 섞어줘야 한다. 쓴 약을 맛있는 밥에 섞어 먹이는 것과 비슷하다. 누구도 밥과 나물을 따로 먹지 않으며 비벼서 비빔밥으로 먹는다. 이야기 속에 하드 팩트 녹여 넣기! 이를 위해서도 코디네이터의 주인공 설정은 매우 유용하다. 코디네이터가 전하는 기증자나 수혜자의 사례를 통해 장기기증의 문제점이 노출되면, 독자의 ‘분노 게이지(gauge)’는 더 높아질 수 있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다. 저널리즘의 미학이기도 하다.

 

실험을 반복하면 이야기 역량은 커진다

 

기사는 소설이 아닌데, 주인공을 설정하고, 그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 싶다. 하지만,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아이템은 의외로 많다. 가출 청소년을 통해 한국 가정의 위기와 부실한 사회 안전망을 드러낼 수 있으며, 은퇴 노부부의 일상에서 초고령화 사회의 실태를 보여줄 수 있다. 주인공과 주제를 더 짝지어보면, 평범한 직장인과 현대 샐러리맨의 애환, 북한 이탈 주민과 통일시대 민족 화합의 문제, 이주노동자와 한국 사회의 다문화 역량, 연쇄살인마와 인간의 악마성, 트랜스젠더와 인간의 정체성 찾기 등이 떠오른다. 노인학당을 통해 인간은 왜 배우려고 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으며 신혼부부를 통해 한국인에게 집이 지니는 무게감, 아이돌 그룹을 통해 산업으로서 음악의 의미,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외국인을 통해 코리안드림의 실체를 전할 수 있다.

 

<환생> 기사는 여러 면에서 언론계의 주목을 받을 만했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의 조선노보는 <‘디지털 근육’ 키울 콘텐츠 실험해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환생>을 제작했던 동아일보 ‘히어로 콘텐츠팀’ 2기를 소개했다.3) 취재 기자 5명, 프로젝트 기획 담당 기자 2명, 사진·동영상 기자 3명 등 총 18명이 제작에 참여했으며 취재 기간만 5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 기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마음속 킬러 콘텐츠를 꺼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라고 했다. 기사에 대한 파장은 그러나 동아일보 사내에서 더 컸던 것 같다.

 

<환생>의 동아일보 사내 반응은 대체로 호평이었다. 그것은 그간에 이 정도의 기사도 없었다는 방증이다.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환생> 기사를 통해 동아일보에 ‘스토리가 잘 읽히더라’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이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예전에 없던 기사를 바로 옆에서 보게 되면서 눈높이가 상당히 높아졌다. 독자의 눈높이도 높아졌을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눈이 높아지면, 제품은 고품질로 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조선노보에 나타난 조선일보 기자의 부러움이 실제로 구현된다면, 동아일보와 함께 고품질 기사 경쟁이 본격화할 것이다.

 

모든 사건에는 사람이 개입돼 있다. 그간에 기자들은 사건을 사건 중심으로 보았을 뿐이지 사람 중심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로 발전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건을 사람으로 치환해 보면, 모든 사안에 이야기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역시, 모든 것은 사람의 일이다. 소설의 주인공이 주제를 상징하는 매개물이라면, 기사의 주인공은 사회적 사안 및 사회적 문제의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이제 관건은 ‘누구 또는 어떤 캐릭터를 통해 주제를 보여줄 것인가?’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발생 사실 자체를 보도하는 그간의 관습을 넘어 사안의 근원과 배경, 맥락, 인간의 이야기를 발굴하게 해준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기사다’라는 상투적인 말을 다시 환기한다. 그간에 썼던 스트레이트 기사를 모두 이야기 기사로 바꿔 쓸 수 있다. 그래서 아이템은 넘쳐나고 할 일은 많다. <환생> 기사와 같은 대형 기획은 당연히 무시로 나올 수 없다. 그러나 매일의 뉴스 제작에서 그보다 작은 아이템 한 개라도 이야기 형식으로 만들어 볼 것을 권장한다. 그런 실험을 반복하다 보면 기자들의 이야기 역량도 커질 것이다. 사람들은 한 가지 이유만 있어도 특정 매체를 선호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 한 가지로 이야기 기사를 강하게 추천한다.

 

 

 

 

 

 

1) https://original.donga.com/2021/rebirth1/story1 

2) 박재영, 《뉴스 스토리: 내러티브 기사의 작법과 효과》, 이채, 2020. 

3) 조선노보, 1437호 1면, 202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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