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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지상파 민영방송사인 떼에프앙(TF1)과 엠시스(M6)가 지난 5월 17일 합병을 결정했다. 물론 시청각최고위원회(CSA)의 허가가 있어야 하므로 2022년 말 하반기가 돼야 실질적인 합병이 이뤄질 수 있지만, 텔레비전 광고 시장의 75%를 차지하는 두 지상파 민영방송사의 합병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로 다가온다.
프랑스 거대 방송사 탄생 예고
미디어 기업인 그룹 엠시스(M6)는 현재 독일의 미디어 그룹인 베텔스만(Bertelsmann)이 소유하고 있다. 베텔스만은 지난 2월 엠시스를 매각하기 위해 시장에 내놨고, 떼에프앙(TF1) 그룹을 소유하고 있는 부이그(Bouygues)가 엠시스의 지분 30%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합병을 결정한 것이다. 베텔스만은 합병 과정에서 필요한 협상을 위해 16% 지분은 남겨놓기로 했다. 이렇게 합병이 이뤄지면 부이그와 베텔스만이 총 46%의 지분을 가지고 새로운 거대 미디어 기업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떼에프앙과 엠시스의 합병은 시청 점유율 42%, 텔레비전 광고 시장 점유율 70%대, 총 매출 34억 유로(약 4조 5,812억 원), 영업이익 4억 6,000만 유로(6,198억 원) 수준의 거대 미디어 기업의 탄생을 의미한다.
미디어 기업의 합병과 거대 미디어 기업의 탄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미국의 거대 미디어 기업들이 서로 인수·합병을 통해 초국적 미디어 기업으로 거듭나는 일을 우리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목격해왔다. 또, 이들의 인수·합병은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가 작동하는 미디어 산업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프랑스 두 미디어 기업의 합병은 미국의 미디어 기업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프랑스의 방송 미디어 생태계는 미국과 달리 전통적으로 지상파 방송 채널 중심으로 꾸려져 왔다는 점, 특정 미디어 기업의 과점이나 독점을 매우 경계하는 프랑스 미디어 산업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민영방송사로서 1, 2위를 다퉈 온 ‘영원한 라이벌’로 생각됐던 지상파의 두 민영방송사라는 점에서 합병 결정은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두 지상파 방송사 합병의 의미
이번 지상파 최대 민영방송사들의 합병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회자됐지만 반복되는 지적 속에 추상적인 수준에 머무르던 지상파 방송의 위기 상황을 실감하게 만드는 순간이 됐다. 다시 말해, 두 지상파 민영방송사의 합병은 지상파 방송사의 위기를 눈앞에서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누가 봐도 쉽지 않고, 기대하지 않았던 최대 민영방송사 두 곳이 합병을 결정한 것은 지금의 지상파 방송사들이 겪고 있는 위기를 단독으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음을 인정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프랑스의 지상파 방송사들도 전 세계의 많은 지상파 방송사들과 같이 십수 년 전부터 시장에서의 영향력과 사회적 위상이 추락하고 있었다.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의 등장으로 점차 시청률 감소, 광고 매출 하락을 경험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는 방송 미디어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떼에프앙은 지난 5년간 주식 가치가 4분의 1이나 줄어들었다.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으로 중단되다시피 한 프랑스텔레비지옹(France Televisions)에 대한 개혁 논의도 지상파 방송의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지상파 방송사이자 공영방송사로서 프랑스텔레비지옹이 어떻게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위기를 벗어나고 공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두 지상파 방송사의 합병이 지상파 방송사 위기 탈출의 한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이미 프랑스 사회에 형성돼 있는 듯하다. 방송 시장이 지상파 텔레비전과 케이블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형성되던 시기에 두 민영방송사의 합병이 논의됐다면 과점을 염려하며 합병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넷플릭스, 유튜브,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에 맞서기 용이할 것이라며 합병에 대한 긍정적인 목소리가 더 호응을 얻고 있다. 엠시스 최고경영자인 니콜라 타베르노스트(Nicolas de Tavernost)는 지난 1월 미국의 글로벌 OTT에 대항하기 위해선 프랑스 텔레비전 방송사가 몸집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여러 프랑스 언론들이나 미디어 전문가들은 심지어 미국에서도 2018년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의 사세 확장에 긴장한 미디어 기업 타임워너(Time Warner)가 통신사 에이티앤티(AT&T)와 합병한 사례를 언급하며 두 방송사의 결합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즉, 이미 거대한 방송 미디어 그룹인 두 그룹의 결합에 대해 독과점에 대한 우려보다는 규모를 키워 쓰나미처럼 덮쳐오는 디지털 시청각 미디어 플랫폼에 대항할 수 있다는 의견이 지지를 얻는 것이다. 베텔스만의 대표 역시 합병을 통해 콘텐츠 제작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고 있는 넷플릭스를 의식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두 방송사와 경쟁 관계에 있는 공영방송사마저도 미국의 구글,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에 대항하기 위해 좋은 팀이 구성됐다며 환영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더불어 두 방송사는 합병을 통해 경영 효율성을 도모할 계획을 밝혔다. 합병 발표 보도자료를 통해 두 방송사는 현재 각각 자회사 형태로 운영 중인 민영 광고 렙을 하나로 통합할 계획이며, 넷플릭스, 아마존, 디즈니플러스 등에 대항할 수 있는 OTT 서비스 플랫폼도 신설할 희망을 비추기도 했다. 또, 방송사가 운영하는 채널들과 관련해 이미 충성도를 가진 이용자들, 잠재적 이용자들을 위해 채널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프로그램 편성이나 스포츠 중계권 입찰 등으로 채널 간 경쟁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동안 소모됐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떼에프앙과 엠시스의 실질적 합병 가능성
떼에프앙과 엠시스가 합병을 결정했지만 합병 과정이나 절차가 쉬운 것은 아니다. 2023년 라이센스 재허가를 앞두고 있는 두 미디어 그룹은 그 전에 협상을 끝내려고 하고 있지만, 규제 당국인 시청각최고위원회(CSA)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시장의 독과점을 경계하는 프랑스 규제 정책에 따라 프랑스는 미디어 기업이 지상파 디지털 채널(TNT)을 최대 일곱 개까지만 소유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지상파 디지털 채널까지 포함해 다섯 개 텔레비전 채널(M6, W9, 6ter, Gulli, Paris Premire)을 소유하고 있는 엠시스그룹과 여섯 개의 텔레비전 채널(TF1, TMC, LCI, TFX, TF1 Sries Films)을 가지고 있는 떼에프앙그룹의 결합은 서너 개의 채널 폐지 없이 불가능하다. 아직 논의 선상에는 오르지 않더라도 당장 채널 세 개를 폐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리해고와 같은 인력감축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경우 노조의 거센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시청각최고위원회 입장에서 전체 텔레비전 광고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두 텔레비전 방송사의 합병은 규제 정책 측면에서도 새로운 고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시청점유율 역시 42%로 공영방송사 프랑스텔레비지옹(France Televisions)의 시청점유율 28%에 크게 웃돌게 되며 사실상 과점, 독점에 이르게 되는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제작자들 역시 거대하고 강력한 시장 행위자가 등장함에 따라 협상에서 불리한 상황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광고주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두 지상파 방송사 그룹이 합병을 발표했다고 하더라도 그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특히, 독점의 위험도 크다는 점에서 규제 당국이 허가를 쉽게 내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계자들이 넷플릭스로 대변되는 미국의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들과 대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환영하고 나서는 것은 그동안 미국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의 ‘침입’과 지상파 방송사가 겪은 어려움에 대해 프랑스 미디어 업계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두 미디어 기업은 비록 텔레비전 광고 시장에서 4분의 3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갖게 되지만 디지털 미디어를 포함한 전체 광고 시장에서의 미국 기업의 영향력을 근거로 제시하며 합병 허가를 설득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시 한번 프랑스 미디어 시장에서 미국 기업과 프랑스 기업의 대결 프레임이 형성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동안 유럽에서도 가장 강하게 미국 미디어 기업들에 대해 경계를 해온 프랑스가 최대 지상파 방송사 합병을 어떤 입장에서 받아들일 것인지, 바로 2022년 하반기에 공개될 규제 당국의 결정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