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지난 5월 18일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과 방송의 공적 책임 제고를 위한 ‘2020년도 방송평가 기본계획’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총 367개 방송국이 지난 한 해 동안의 방송 내용, 편성, 운영 등을 평가받게 된다. 그 결과가 재허가·재승인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방송사들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평가 제도의 현황과 개선 방향을 짚어 본다. 편집자 주
매년 실시되는 방송평가 결과가 발표되는 시점이면, 방송 사업자들은 시청률 순위만큼이나 자사 방송평가 점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실시하는 방송평가 결과가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에서 정량적으로 40% 반영되고, 나머지 60%는 별도의 재허가 심사에서 정성평가를 통해 반영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방송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재허가 과정에서 조건부 승인을 받을 개연성이 높다.
방송법 제31조 제1항은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사업자의 방송프로그램 내용 및 편성과 운영등에 관해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서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평가위원회를 구성하고 방송 사업자의 방송 프로그램 내용과 편성뿐만 아니라 운영과 관련된 영역을 포함해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일 발표된 <2019년도 방송평가>에서는 총 157개 방송사업자(367개 방송국)가 방송평가를 받았다.
이 가운데 중앙 지상파TV 평가 점수(총점 700점)는 MBC 577점, KBS 1TV 563점, SBS 505점, KBS 2TV 483점 순이었다. 방송 사업자별로 프로그램 관련 수상 실적, 어린이 프로그램 편성, 방송심의·편성 규정 및 관계 법령 준수 여부 등에서 사업자 간 평가 점수 차이가 발생했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던 MBC는 자체 심의와 공정 보도를 위한 노력이 평가 점수에 반영됐고,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 항목에서 타사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SBS는 방송심의 관련 제규정 준수, 방송 편성 관련 제규정 준수 항목에서 감점이 많았다. 반면 KBS 1TV와 KBS 2TV는 방송법과 공정거래법 등 관계 법령 준수 항목에서 상대적으로 감점이 많았다. KBS는 방송평가 과정에서 다양한 이의를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KBS 1TV는 매년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KBS 2TV는 매년 하위권에 머물렀다. 2008년 방송평가 결과가 공표된 이래로 KBS 1TV는 지상파TV 사업자에 대한 평가에서 2019년을 제외하고 줄곧 1위를 차지했으며, KBS 2TV는 2008~2010년 3위, 2011~2013년 2위, 2014~2016년 4위, 2017년 3위, 2018~2019년 4위 등 만년 하위권에 머물렀다. 방송법 제31조 제1항에서 정하고 있는 방송평가 대상이 “방송프로그램 내용 및 편성과 운영”에 한정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두 개의 지상파 채널을 운영하는 KBS에는 불리하게 작동한다. KBS 1TV는 주로 시사·교양 중심으로, 2TV는 연예·오락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편성한다. 또한, KBS 1TV는 광고가 없고, KBS 2TV는 광고를 편성한다. KBS는 수신료를 주재원으로 삼기 때문에 이러한 차별적 채널 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지만, 방송평가에서는 운영 측면에서 불이익을 받는 구조이다.
방송평가 제도의 문제점
종합편성채널 평가 점수(총점 600점)는 JTBC 494점, TV조선 486점, 채널A 484점, MBN 452점 순이었다. 종합편성채널 평가에서도 프로그램 수상 실적, 어린이 프로그램 편성, 재난 방송, 재무 건전성, 장애인 및 여성 고용, 심의 관련 규정 준수 여부 등에서 사업자 간 평가 점수 차이가 발생했다. 채널A는 자체 심의와 공정 보도 항목에서 종편 4사 중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으며 방송심의 관련 제규정 준수항목에서 감점이 가장 많았다. MBN은 어린이 프로그램 편성 항목에서 매우 낮은 점수를 받았다. JTBC는 재무 건전성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으나 다른 항목에서 점수가 좋았다. 보도전문채널의 경우(총점 500점)에는 YTN이 422점, 연합뉴스TV가 382점이었다. YTN과 연합뉴스TV는 보도 영역에서 더 많은 수상 실적을 올려 평가 점수에 차이가 컸다.
현행 방송평가 제도는 지상파 방송 사업자가 과점체계를 유지하던 2000년에 통합방송법 제정과 함께 만들어졌다. 방송평가 제도 도입은 민영방송인 SBS 개국(1991), 케이블TV 도입(1995), 위성방송 출범(2001) 등 다매체 다채널 시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시청률 경쟁 심화와 프로그램의 선정성·폭력성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방송의 공적 책임을 강화할 목적이었다. 방송평가에 대한 규칙은 2001년 이후 지금까지 총 11차례 개정됐다. 방송평가 규칙은 개정 때마다 새로운 평가 기준이 추가되며 강화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방송평가 제도는 도입 초기부터 지적돼 온 문제점을 지금까지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첫째로 조직 목적과 운영 원리가 서로 다른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을 한 틀에서 평가하는 문제점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시장 진입이 늦었던 후발 주자들이 상업적 경쟁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방송평가 과정에서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지역 민영방송에 대해서는 평가 항목과 평가 방식, 평가 점수를 지상파 방송 사업자와 차등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법에 따라서 공적 책무를 수행해야 하는 공영방송과 그렇지 않은 민영방송에 대한 방송평가에서도 동일한 평가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이처럼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소유 구조와 경영 형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KBS, EBS, MBC, SBS 등에 대해 경영의 적정성, 재무의 건전성 등을 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공영방송인 KBS와 EBS는 수신료를 주재원으로 운용해야 하는 사업자로, 근본적으로 상법에 따라 설립된 민영방송사처럼 효율적인 경영을 추구하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공영방송은 민영방송처럼 경영진이 독자적으로 경영 방식을 선택하고 경영 효율성을 추구할 수 없으며, 투자 우선순위에서도 공적 평가를 먼저 받아야 한다. 일례로 「경영투명성 확보방안 종합평가」 세부기준 중 ‘감사(감사위원회) 선임 시 의결권 제한지분율’은 상법 제409조 제2항을 준용한 것으로 의결권 제한을 통해 주주총회에서 대주주의 전횡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라는 점에서 ‘경영투명성 확보’라는 평가 목적에 적합하다.
그러나 KBS는 정관 제17조 제5항에 따라서 KBS 감사를 이사회 제청으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임명하고 있으며, 이러한 선임상 특수성은 주주총회에서 감사를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주식회사 기반의 민영방송 사업자와는 다르다. 또한, KBS는 이사회에서 매년 경영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와 별도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방송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중복규제라고 할 수 있다. MBC와 EBS도 이러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공영방송은 방송평가와는 별도로 매년 국회로부터 국정감사를 받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둘째, 재허가 항목과 방송평가 항목이 중복되는 문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평가규칙과 재허가와 승인제도 개선 과정에서 심사 기준을 대폭 정비했지만, 여전히 행정처분(방송법 등 관계 법령 준수 여부)과 지역사회 발전(지역방송사 자체 제작 비율), 방송 편성 등에 대해서 중복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중복 평가는 재허가 심사에서 사안에 따라 두 번 좋은 점수를 받거나 두 번 나쁜 점수를 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해 심사의 부정확성으로 이어진다. 방송사는 방송평가와 재허가를 준비하기 위해서 매년 적지 않은 인력과 예산을 써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공영방송사로서는 국정감사와 방송평가, 재허가라는 일련의 과정이 경영 투명성과 효율성, 공적 책무에 대한 평가를 받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공공서비스방송을 위한 업무와 직접 관련 없는 평가에 너무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한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방송통신위원회는 2001년 지상파 방송에 대한 평가를 처음으로 시작한 이래 채널별 총점 및 평가 항목은 공개하고 있지만, 방송평가 세부 내역인 세부 기준 점수 및 평가 척도의 적용 기준을 상세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평가를 받아야 하는 방송 사업자로서는 구체적인 평가 척도를 알아야 방송평가를 준비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개선 필요한 방송평가 제도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지상파 채널에 주어진 특혜가 사실상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방송평가 제도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
첫째, 실시간뿐만 아니라 비실시간 영역에서도 방송 프로그램이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해, 전송 수단을 기준으로 한 매체별이 아닌 공·민영사업자와 플랫폼별로 방송평가 대상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방송평가 제도는 도입 초기부터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를 통해 방송의 공적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방송 책무를 수행하도록 제도화된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서비스 특성과 운영 체계에 대한 구분 없이, 프로그램 심의 내용, 법 규정 위반 여부, 시청자 의견 반영, 경영 평가 등 기준을 재허가 심사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공영방송은 상법에 따라서 설립·운영되는 민영방송사와 동일하게 회계 기준이나 경영 성과를 추구하기 어려우며, 주재원인 수신료로 투자를 촉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방송평가 제도는 시행 초기부터 평가 항목과 평가 지표의 위헌·위법성 논란, 객관성·공정성에 대한 논란, 그리고 과다한 평가항목과 지표 수, 중복 지표 등 체계성과 상호 연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방송 책무를 수행하는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에 대해서는 사업자별로 차별적인 방송평가 제도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둘째, 공영방송의 방송평가는 공적 가치에 대한 책무 수행에 대한 평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월 발표한 「제5기 방통위 비전 및 주요 정책과제」에서 디지털 대전환의 가속화와 더불어 디지털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해외 주요국이 방송 통신 분야 관련 제도 정비에 나서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OTT 서비스의 약진 등 온라인 플랫폼의 영향력의 전산업적 확대, 지능정보사회 도래에 따른 이용자 피해 가중, 그리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난의 일상화와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에 따른 새로운 정책 비전과 과제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 사업자에 대한 허가·승인과 방송평가 제도를 매체별 특성에 맞게 개선하고, 기존의 편성·광고 규제 등 낡고 불필요한 규제를 정비함으로써 방송산업 활성화와 매체 간 공정 경쟁 환경을 조성하며 최종적으로는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까지를 포괄하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 법제’를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을 제정한다면,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에 대한 방송평가 방식도 이원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이에 근거한 공영방송 평가 제도 도입이다.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을 제정한다면, 민영방송은 현행과 같이 방송평가 제도를 재허가와 연계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 또한 플랫폼별로도 평가 기준은 필요하다. 실시간 방송을 송출하는 사업자 이외에도 OTT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업자들에 대해서도 평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때 실시간 방송 사업자와 비실시간 방송 사업자의 평가를 차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평가 항목은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은 법에 규정된 위탁 사항인 공적 책무를 수행하기 위한 별도의 책무 평가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은 공적 책무 수행 과정에서 정치적 독립과 재원 안정성, 제작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또한 공영방송은 이사회와 시청자위원회 등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내적 통제 과정에서 반영하도록 제도화돼 있다. 예컨대 KBS는 재난주관방송사이자 난시청 지역에서 지상파 송출을 대행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코로나19 상황에서 EBS는 원격수업 주관방송사로 지정됐다. 이러한 공영방송의 특성을 고려해 현재의 방송평가 제도와 재허가 제도를 하나로 묶는 ‘공적 책무 협약’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으며, 공적 책무 협약 체결에 관해서는 법률에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