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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타블로이드지 빌트(Bild)에 헝가리 정부의 전면광고가 실렸다. 상업광고가 아니다. 헝가리 총리 명의로 유럽연합을 비판하는 ‘의견’ 광고다. 유럽연합 내에서 언론 자유와 인권 침해 논란으로 비판을 받는 헝가리 정부의 전면광고를 실어준 빌트의 결정에 광고 윤리 논란이 일고 있다.
‘헝가리의 제안’ 전면광고
지난 7월 5일 빌트 9면에 <유럽연합의 미래-헝가리의 제안>이라는 제목의 전면 컬러 광고가 발행됐다. 독일어로 발행된 광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필자 주).
1. 브뤼셀(유럽연합)은 그 누구도 권한을 주지 않은 슈퍼국가를 만들었다. 우리는 유럽 제국에 반대한다.
2. 통합은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따라서 유럽연합의 기본조약에서 ‘유럽 시민들 간에 항상 긴밀한 통합’을 추구한다는 목표는 삭제돼야 한다.
3. 결정은 선출된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지 시민단체들이 하는 게 아니다. 법치국가를 (시민단체에) 위임하는 것을 반대한다.
4. 유럽 통합의 힘은 공동의 경제적 성공을 준다. 합치는 것이 개별 국가보다 성공하지 못한다면 유럽연합은 끝내야 한다.
5. 앞으로 10년 동안 가장 위험한 도전이 될 것이다. 대규모 이주민과 전염병이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유럽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
6. 우리는 유럽의 민주주의를 재건해야 한다. 유럽 의회는 ‘막다른 길’로 판명 났다. 유럽 의회는 오직 그들만의 사상과 구조적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 국가 의회의 역할을 더 키워야 한다.
7. 세르비아도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제안 마지막에는 헝가리 총리의 이름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n)과 그의 서명이 표시돼 있다. 오르반 총리는 유럽연합을 ‘제국’이라 부르며 강하게 비판했다. 마치 유럽연합을 두고 선전포고를 하는 뉘앙스다. 최근 유럽연합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아온 헝가리 정부의 항변이기도 하다. 극우 성향의 오르반 총리는 10년 이상 집권하면서 반난민, 반외국인 성향을 보여왔다. 언론통폐합으로 친정부 미디어 기업을 만들고 지역 언론과 독립 언론을 탄압했다. 최근에는 성소수자의 미디어 및 광고 출연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면서 유럽연합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극심한 비판에 직면한 상태다. 전면광고의 내용은 유럽연합과 헝가리의 갈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언론 자유의 적’으로 선정된 오르반 총리
공교롭게도 헝가리 광고가 발행된 7월 5일, 오르반 총리는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언론 자유의 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유럽연합 회원국으로는 유일하다. 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오르반 총리는 공영방송과 뉴스통신사 MTI를 하나로 통합하는 등 언론통폐합을 통한 언론 통제를 가속화하고 있다. 지역 언론사 또한 친정부 성향 기업이 되고 있고 2018년에는 500개 가까운 언론사가 하나로 합쳐졌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정부 비판적 보도나, 탐사보도는 작은 온라인 미디어를 통해서 겨우 퍼지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블랙리스트’ 언론인들의 명단도 계속해서 발표하고 있다”고 전했다.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헝가리 총리의 ‘말’을 실어준 빌트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센 이유다.
독일기자협회(DJV, Deutscher Journalisten-Verband)는 7월 6일 “슈프링어가 그래도 되는가?”라며 광고를 실은 신문사를 비판하는 사설을 내보냈다. 빌트를 발행하는 회사는 독일의 대표적인 미디어 기업인 악셀슈프링어(Axel Springer)다. 마티아스 되프너(Mathias Dpfner) 악셀슈프링어 대표는 다름 아닌 독일신문발행인협회(BDZV, Der Bundesverband Digitalpublisher und Zeitungsverleger) 협회장을 맡고 있다. 언론 자유와 독립을 지켜야 할 신문협회 대표직을 맡고 있으면서 어떻게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헝가리 정부의 광고를 실어줄 수 있냐는 비판이다.
독일기자협회는 “독일신문협회장이 대표로 있는 바로 그 신문이 ‘언론 자유의 적’에게 무대를 제공했다”며 “되프너는 신문협회장으로서 평소 민주주의를 위한 언론 자유를 주창해왔다.

(…) 국경없는기자회가 ‘언론 자유의 적’으로 오르반을 선정한 바로 그날에 오르반은 (빌트 광고로) 자신의 정책을 ‘선언’했다”며 “오르반은 유럽연합을 ‘슈퍼국가(Superstaat)’, ‘유럽 제국’이라고 언급했다. 거짓, 왜곡, 절반의 진실-바로 전형적인 독재자의 단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해당 광고에 비판이 이어지자 악셀슈프링어 측은 “자유, 특히 생각의 자유는 우리 악셀슈프링어의 핵심 기둥으로 편집국 소속 모두가 지지한다”며 “이 자유는 우리 회사가 그 생각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여부와는 상관없다”고 주간지 슈테언(Stern)에 설명했다. 이어 “자유는 힘들더라도 다른 생각과 입장을 참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역할은 광고를 검열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광고 내용에 찬성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광고의 메신저는 우리가 아닌 광고주”라고 해명했다.
이같은 악셀슈프링어의 입장에 대해 독일기자협회는 “외형적으로는 옳은 말이지만 언론 정책적으로는 의문스럽다. 앞으로 악셀슈프링어 대표인 마티아스 되프너가 말하는 언론 자유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신문협회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을 거두지 않았다.
돈으로 사는 지면
독일공영방송라디오 칼럼니스트 마리나 바이스반트(Marina Weisband)도 헝가리 정부의 광고가 ‘저널리즘의 편집권을 돈으로 사는 행태’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는 미디어 비판을 통해 통제된다. 정부가 자신의 정책이나 법률안에 대해 전면기사를 내려고 하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이 모든 것은 매우 어렵고 복잡한 일인데 쉽고 합법적으로 간단히 할 수 있다. 적은 돈(50만 유로, 약 6억 7,700만 원)으로 빌트 전면광고를 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리나는 “독일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신문이 독재 국가의 선전을 전면광고로 허용했다”며 “돈으로 저널리즘 편집을 자유롭게 살 수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광고는 헝가리 관광을 홍보하는 내용이 아니다. 유럽연합의 비판에 직면한 헝가리 총리가 유럽연합을 비판한, ‘해야 한다’는 서술어로 가득한 의견에 더 가깝다. 일반적인 신문이라면 편집국과 데스크의 심사를 거쳐 ‘오피니언’ 면이나 ‘외부 기고’에 들어가야 할 법한 기사다. 하지만 헝가리 정부는 돈으로 지면을 샀다. 현재 빌트 독일 전국판 전면 광고비는 54만 5,700유로, 한화로 약 7억 4,000만 원이다. 헝가리 정부의 광고로 빌트는 광고비를 벌었겠지만, 광고 윤리를 뒤흔든 문제적 사례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