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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열린 도쿄올림픽 중계방송은 그 어느 때보다 이슈와 논란이 많았다. 실제로 ‘사건’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심각한 사안부터, 이전에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던 이슈까지 쏟아져 나왔다. 도쿄올림픽 중계방송에서 드러난 문제와 시청자들의 달라진 감수성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올림픽 개막식 중계부터 시작된 무개념 방송
“이 자막 만들면서 ‘오? 괜찮은데?’라고 생각한 담당자, 대한민국 선수들이 입장했을 때 세월호 사진 넣지, 왜 안 넣었어? 미국은 9·11 테러 사진도 넣고? 도대체 얼마나 무식하고 무지해야 폭발한 핵발전소 사진을 넣어?”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있던 다음날, JTBC <비정상회담>에 나오기도 했던 러시아 방송인 일리야는 개막식 중계에 대해 분노 가득한 트윗을 올렸다. 이유는 MBC의 개막식 중계방송 중 우크라이나 선수단이 입장할 때 삽입된 나라 소개와 사진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체르노빌 원전 사진이 있었다. 1986년 터져 지금껏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는 원전 사고를 담은 사진이 올림픽 개막식 중계에 버젓이 들어간 것. 하지만 이날 MBC의 부적절한 중계방송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엘살바도르 선수단이 입장할 때는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해 반대 시위가 일고 있다는 이유로 비트코인 사진을 넣었고, 아이티 선수단이 입장할 때는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을 붙였으며, 마셜제도는 ‘한때 미국의 핵 실험장’이라고 소개했다.
워낙 MBC의 중계방송이 도드라져 보여서 타 방송사들은 가려진 면이 있지만, KBS, SBS도 부적절한 중계는 마찬가지였다. KBS도 우크라이나를 소개하며 사진은 넣지 않았지만 “체르노빌 사고가 있었다”고 했고, 투발루를 소개하며 “바다에 잠길 위기에 처한 나라”라고 했다. 비대면 상황에서도 홈트레이닝을 하며 올림픽을 준비한 선수들을 표현하며 ‘간호사 복서’ 스바사 아리사가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이자, SBS는 “홈트레이닝을 하는 모습인데 홈쇼핑하는 느낌도 나네요”라고 말해 비하 발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파장은 컸다. 미국 뉴욕타임스, CNN, 영국 가디언 등 주요 외신들의 신랄한 비판과 더불어 국제적인 망신이라는 대중의 질타가 이어졌다. 결국 박성제 MBC 사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전 세계적인 코로나 재난 상황에서 지구인의 우정과 연대,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방송을 했다”며 공식 사과했다. 사태 경위 파악과 더불어 책임자 처벌도 약속했다. 결국 이 사태로 인해 올림픽이 끝난 후 MBC 보도본부장은 사퇴했고 스포츠국장은 교체됐다. 하지만 이로써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올림픽 같은 국가적인 스포츠 제전의 중계방송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긴 어렵다. 그건 이번 무개념 개막식 중계 사태가 몇몇 책임자들의 관리 소홀로 인한 실수가 아니라, 올림픽 중계 같은 ‘저널리즘’의 영역에 있는 방송마저 예능화하고 있는 모든 방송의 달라진 태도가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제 선거 개표 방송에서조차 치열한 방송사 간의 경쟁 때문에 예능적 연출은 일상화됐다. 이런 경향으로 인해 분명히 지켜야 할 선이 있는 방송조차 ‘선을 넘는’ 방송으로 이어지게 만든 것이다.

시청자들의 달라진 감수성 못 따르는 방송 해설
개막식 이외에도 도쿄올림픽 중계방송은 다양한 지점에서 시청자의 질타를 받았다. 물론 올림픽 특성상 자국 선수들에 어느 정도 편파적인 중계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대 팀이나 선수를 비하하는 중계방송에 대해 시청자들은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한국과 루마니아전 축구 중계에서 MBC는 마리우스 마린 루마니아 선수가 자책골을 넣자, 중간 광고 중 자막으로 ‘고마워요 마린, 자책골’이라는 자막을 넣었다. 이는 어느 정도의 편파가 아닌 ‘조롱’에 가깝다며 시청자들의 뭇매를 맞았다. 승리에만 집착한 나머지 어떤 종류의 차별 없이, 우정과 연대 그리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주창하는 ‘올림픽 정신’을 잊어버린 방송이었던 것이다.
여자 탁구 경기 신유빈 선수와 룩셈부르크 니시아리안 선수 경기 중계에서 KBS도 이런 문제를 일으켰다. 상대 선수가 나이가 많다는 걸 이유로 “탁구장 가면 앉아 있다가 갑자기 오시는 숨은 동네 고수 같다”는 표현이 중계방송 중 등장한 것이다. 58세의 나이에도 국가대표로 발탁된 니시아리안 선수는 ‘백전노장’으로서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했지만, 그의 능숙한 경기 운영을 “여우 같다”고 표현하는 등 편파를 넘어선 부적절한 중계 문제를 드러냈다. 이 밖에도 유도 경기에서 동메달을 딴 안창림 선수에게 “우리가 원했던 색깔의 메달은 아닙니다만”이라고 한 것이나, 마라톤 경기에서 허벅지 통증으로 경기를 중도 포기한 오주한 선수에게 “완전히 찬물을 끼얹네요”라고 말하는 등의 해설 역시 대중의 비판을 받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구시대에 머물러 있는 방송과 달리, 선수들과 시청자들은 너무나 다른 감수성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즉 이른바 ‘4등의 약진’이라고 해도 될 법한, 4등을 한 선수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줬고, 이들에게 시청자들도 아낌없는 박수를 쳐줬다는 것. 남자 높이뛰기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4위에 오른 우상혁 선수는 “행복한 밤”이라며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고 이에 대해 시청자들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남자 스프링보드 3m에서 한국 다이빙 최고 성적을 거둔 우하람 선수 역시 “올림픽 4등 자체가 영광”이라고 했고, 남자 자유형 100m에서 5위를 기록한 황선우 선수 역시 “만족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여전한 성차별적 시선도 문제로 지목돼
지난 리우올림픽 중계에서도 나이, 외모 등을 거론하는 부적절한 중계는 지적받았지만,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여성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중계진의 성별 고정관념이 담긴 중계 문제는 여전했다. ‘얼음공주’, ‘태극낭자’, ‘여궁사’, ‘여우 같다’ 같은 표현들이 중계에 등장한 것. 여자 양궁 대표팀이 단체전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때 유독 ‘태극낭자’라는 표현이 급증했던 건, 일종의 올림픽 중계에서의 관성에 가까웠다. 이전부터 이 표현은 마치 고유명사처럼 사용됐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남성 선수들을 ‘태극총각’, ‘태극도령’이라 표현하지 않으면서 여성 선수들을 부를 때만 들어가는 이런 표현은 지난 올림픽에서도 문제로 지적됐지만 이번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에 대한 대중의 비판은 훨씬 많아졌다. 그만큼 최근 대중의 달라진 감수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또 여성 선수들에게만 부각되는 ‘외모’ 표현도 대중의 질타를 받았다. ‘미녀 검객’, ‘올림픽 여신’ 같은 표현들은 마치 칭찬의 의미처럼 쓰였지만 실은 실력으로만 검증받고 싶은 여성 선수들에게는 성차별적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 신문 보도에서도 자극적인 제목을 위해 사용되는 ‘여신’, ‘공주’ 같은, 선수 이력이 아닌 외모나 몸매, 의상을 담은 표현들은 여전했다. 올림픽 중계방송의 성별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실질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캐스터의 ‘성비’와도 관련이 있다. 지상파 3사 캐스터들이 MBC 단 한 명의 여성을 빼고는 모두 남성들로 구성돼 성비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한편 올림픽 중계방송이 이른바 인기 종목에 집중됨으로써 비인기 종목을 홀대하는 차별도 여전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 3사에게 과도한 중복 및 동시 편성을 제한할 것을 권고했지만 실질적으로 이 권고는 지켜지지 않았다. 축구와 야구 그리고 배구 경기가 동시에 열렸던 7월 31일 밤 지상파 3사는 축구와 야구를 모두 편성하고 배구를 배제함으로써 ‘차별’ 논란을 빚었다. (마침 배구 한일전은 명승부로 기록됐다.) 이처럼 비인기 종목이라는 이유로 혹은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홀대했다가 명승부 이변을 낳은 경기는 실시간 중계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배드민턴 남자 단식에서 세계 랭킹 38위의 허광희 선수가 세계 랭킹 1위 우승 후보를 꺾고 8강에 오르는 명승부를 실시간 중계하지 않은 것에 질타가 이어진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도쿄올림픽이 남긴 숙제들
이번 도쿄올림픽을 통해 드러난 건 시청자들의 시선과 감수성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지나친 국가주의적인 관점으로 승패나 메달에 집착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쳐줬다. 사실 도쿄올림픽은 메달 순위에 있어서 역대급으로 저조한 16위에 머물렀지만, 대중은 그다지 집착하는 반응들이 없었다.
보통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이어지는 예능 프로그램의 올림픽 스타 섭외 경쟁에서도 금메달만이 아닌 동메달, 4등, 심지어 꼴찌도 최선을 다한 모습만으로 섭외 대상이 되기도 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대표적이었다. 유도에서 동메달을 딴 안창림 선수는 물론이고, 출전팀 중 꼴찌 성적을 기록했지만 98년 만에 첫 세계무대에 나왔던 럭비 국가대표 선수들도 섭외됐다. 이것은 이번 올림픽에서 대중들의 관심이 달라진 것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청자들의 변화와는 달리 방송사들은 국가주의적 이벤트로서 올림픽 중계방송을 하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편성에 있어서도 해설에 있어서도 승패와 메달 색깔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전부터 계속 지적된 성차별적 해설 또한 ‘관성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캐스터들의 극심한 성비 불균형이 근본적인 문제로 지목됐다. 국가주의적 관점으로 자국과 타국을 나눠 대결적 시선을 드리우고,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을 나누고, 승패와 메달에 집착해 승자와 패자를 나누고 금메달과 노메달을 나누며, 성별에 따른 차별적 중계를 하는 식의 구태는 여전했다.
이번 도쿄올림픽 중계방송에서 유독 논란과 비판이 많았던 건 어떤 의미에서는 건강한 면이 있었다고 보인다. 방송의 관행과 시청자들의 달라진 감수성 사이에 괴리가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고, 그래서 비판도 많았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제 방송사들(특히 국가주의적 스포츠 이벤트로 독점적 수혜를 가졌던 지상파들)엔 이 괴리를 없애야 하는 중대한 숙제가 주어졌다. 구시대적 관행을 계속 이어간다면 자칫 해당 방송사는 구시대적 매체로 추락할 수도 있다. 과연 변화는 일어날까. 당장 내년 2월에 치러질 베이징동계올림픽이 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