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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하반기 예능 프로그램 최대 이슈는 바로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였다. 한때 <프로듀스 101> 투표 조작 논란으로 고개를 숙였던 Mnet이 선보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지만 수용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무엇이 이런 극명한 변화를 만들었을까. 그 이면에 숨겨진 답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댄서들의 진심이 만든 <스트릿 우먼 파이터> 열풍
그 누가 이런 열풍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시작 전부터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듀스 101> 투표 조작 사태가 남긴 여파는 지금껏 지워지지 않고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댄서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서바이벌 오디션이라는 형식은 우려를 만드는 가장 큰 이유였다. Mnet과 서바이벌 오디션의 조합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첫 회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이른바 ‘센 언니’ 콘셉트를 내세운 <언프리티 랩스타>의 댄스 버전을 보는 듯한 살풍경한 장면들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각 크루가 이른바 ‘스트릿 파이트 클럽’에 입성하는 장면에서부터 자신들이 최고라며 타 크루를 저격하는 말들이 자극적으로 연출됐다. 게다가 첫 번째 미션은 ‘노 리스펙트, 약자 지목 배틀’이었다. 각 크루에서 약하다고 생각하는 크루와 팀원을 직접적으로 지목하고, 파이터존에서 배틀을 진행한 것이다. 이 미션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가진 자극적인 서바이벌 오디션으로서의 면면을 전면에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미션에서 걸그룹 출신이라는 이유로 팀 원트의 이채연은 다른 크루들에게 공공연히 물어뜯기는 먹잇감으로 연출됐다(이것은 <쇼미더머니>에서 아이돌이 등장했을 때 많이 보였던 광경이다). 장외 댄스 신 간에 존재했을 법한(실제로 그렇게 첨예한 것도 아니었지만) 갈등 요소들도 무대의 대결 구도로 가져왔다. 과거 MBC <놀면 뭐하니?> 환불원정대 안무 선택에서 맞부딪쳤던 팀 라치카의 가비와 팀 훅의 아이키 간 대결은 그래서 다소 감정적인 양상으로까지 연출됐다.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무대에서 바지까지 벗어 내릴 정도였다. 또 싸움 구경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같은 팀에서 활동하다 갈라져 골이 생긴 팀 홀리뱅의 허니제이와 팀 코카앤버터의 리헤이 간 대결 무대도 세워졌다. <프로듀스 101> 논란으로 자극적인 서바이벌 오디션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 것으로 애초에 생각됐지만,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이런 예측이 무색할 정도로 더 자극적인 연출과 대결 구도를 첨예하게 내세웠다. 시청자들은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일어났다. 출연한 크루의 댄서들이 이 치열한 대결과 서바이벌을 저마다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소화해낸 것이다. 무리하게 바지까지 벗어 내린 가비가 신발에 옷이 걸려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자, 보다 못한 아이키가 바지를 잡아당겨 벗겨주는 코믹한 장면이 나왔고, 허니제이와 리헤이는 함께 춤 대결을 벌이며 저도 모르게 같은 춤동작을 선보이는 광경이 등장했다. 그리고 대결 끝에 리헤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껴안아 준 허니제이의 모습에 댄서들은 눈물을 흘렸다. 치열한 서바이벌 무대를 세웠고 댄서들도 ‘서바이벌은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을 내세웠지만, 같은 댄서이자 동료로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하나의 애티튜드로 드러났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우려는 기대로 바뀌었고 팬덤이 꿈틀꿈틀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바이벌 오디션, 제작진이 극악할수록 공고해지는 팬덤
사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그 형식 자체가 짧은 기간 안에 많은 팬덤을 끌어모으는 데 최적화돼 있다. 일찍이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Mnet은 이 형식이 가진 강력한 힘을 잘 알고 있었다. <슈퍼스타K>가 배출한 시즌 2의 허각과 존박, 시즌 3의 울랄라세션과 버스커 버스커, 시즌 4의 로이킴과 딕펑스 같은 출연자들이 프로그램 종영 이후 강력한 팬덤을 가진 스타로 등극했는데, 이는 서바이벌 대결 구도를 치열하게 연출해내는 제작진과 그 안에서 미션을 넘어서며 생존하는 출연자들을 보며 만들어지는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참여 때문이었다. 특히 오디션 프로그램은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참여해 스타덤에 오르는 과정을 담는다는 점에서 시청자 참여의 몰입감이 훨씬 높은 특징이 있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형식 자체가 그간 제작진이 일방적으로 만들어 내보이던 방송 프로그램들과 달리, 시청자 참여를 더 전면에서 끌어들이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일단 서바이벌에 도전하는 출연자들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면, 제작진이 제시하는 미션이 더 치열해질수록 해당 출연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려는 팬덤은 더욱 공고해진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이런 서바이벌 오디션이 팬덤을 만들어내는 효과적인 방식을 더 강력하게 무장해 가져왔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정복과 굴욕 같은 자막들이 연달아 등장했고, 팀 프라우드먼의 모니카나 립제이를 대놓고 크루들의 선생님이라는 캐릭터로 세워 마치 사제 간의 대결처럼 몰아세우기도 했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위아래도 없다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약자 지목 배틀에 이어 벌어진 ‘메인 댄서 선발전’도 크루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미션으로 특히 리더들 간 경쟁의식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미션이 극악해질수록 출연자들에 대한 팬덤은 더욱더 단단해졌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건 서바이벌 속에서 비춰지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공감대를 주는가 하는 점이다. 이기기 위해선 어떤 선택도 한다는 모습은 이기적으로 비춰지기보다 늘 가수들 뒤에 가려진 채 빛을 보지 못했던 댄서들의 간절함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승부의 세계에서는 서로 뒤통수를 쳐도 막상 승부가 끝나고 나면 그것조차 쿨하게 받아주는 댄서들에게서 같은 동료로서의 유대감이 느껴졌다. 이는 마치 제작진과 출연자들 간의 대결처럼 보였고, 극악한 미션에 출연자들이 멋지게 대응하는 모습들은 시청자들을 팬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팬덤은 이제 ‘내 댄서들은 내가 지킨다’며 SNS 등을 통해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와의 공조로 만들어낸 팬덤과의 시너지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팬덤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고 나아가 프로그램과의 시너지까지 불러일으킨 건 다름 아닌 유튜브와의 공조였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서바이벌 오디션 미션 과정 자체에 유튜브를 끼워 넣었다. 즉 ‘메가크루’ 미션이나 ‘맨 오브 우먼’ 미션을 미리 고지하고, 각 크루가 만들어낸 댄스 영상들을 유튜브를 통해 선공개하면서 조회수와 좋아요 수를 승부에 반영한 것이다. 팬들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크루의 댄스 영상을 찾아보고 좋아요를 누르며 저마다의 댓글로 감상평을 남겼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각 영상은 적게는 400만 회에서 많게는 700만 회를 훌쩍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댓글만 1만 7,000여 개씩 달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특히 댓글들은 저마다 응원하는 크루의 팬덤들이 모여드는 장이 됐다. 언어의 장벽이 없는 댄스의 특징상 해외 팬들도 만들어졌고, 방송을 통해 심사위원들이 주는 점수와 평가들은 이제 댓글 창을 통해 팬들의 평가를 받게 됐다. 즉 심사위원들이 방송에서 ‘아쉽다’는 평가를 해도 팬들은 그렇지 않다며 그 이유를 댓글로 담았다. 본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벌어지는 방송 프로그램과 팬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에너지가 될 수 있었다.
유튜브는 미션 영상에서 머물지 않고 알고리즘을 타고 출연 댄서들의 과거 무대 영상으로까지 팬들의 관심을 옮겨줬다. 그간 가수들 뒤편에서 마치 배경처럼 취급되던 댄서들은 팬들에 의해 전면으로 재배치돼 주목받게 됐다. 박재범이 부른 ‘몸매’의 직캠 영상은 그 뒤편에서 춤을 추던 허니제이로 인해 조회수가 무려 850만 회를 넘길 정도로 엄청난 화제가 됐다. 지난 9월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이하이의 무대에 참여한 모니카 직캠은 200만 회 조회수를 훌쩍 뛰어넘었고, 현아&던 무대에 백업 댄서로 선 팀 원트의 엠마 직캠은 600만에 육박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청하의 노래들은 그의 많은 댄스를 안무한 가비로 인해 다시금 주목받았고, ‘카이 옆에 그 여자’로 이미 유명했던 팀 웨이비의의 리더 노제로 인해 카이의 ‘음(Mmmh)’ 뮤직비디오와 무대 영상도 화제가 됐다.
유튜브 영상 중에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살벌한 대결구도로 연출됐던 댄서들이 실제로는 절친한 사이이고, 또 다소 노골적인 승부욕을 드러내던 센 모습과는 사뭇 다른 순둥이의 모습을 담은 것들도 적지 않았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초반 기세를 만들었던 가비가 대표적이다. 프로그램 안에서는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는 모습으로 연출됐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인성의 소유자라는 게 유튜브 영상을 통해 보이면서 가비는 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팬들의 응원을 받았다.
팬들에 의해 지켜질 수 있었던 댄서들의 진심
본래 프로그램의 방향성이 그렇게 설정된 것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뒤로 갈수록 초반의 자극적인 서바이벌보다는 댄서들이 저마다 드러내는 매력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아마도 팬덤이 생겨나고, 이들의 반응이 댄서들의 진심을 지켜주자는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생겨난 변화가 아닐까 싶다. 물론 미션들은 여전히 논란의 소지가 있기도 했다. 예를 들어 메가 크루 미션의 경우 이른바 ‘연예인 지인 찬스’를 쓰는 크루가 있어 생기는 공정성 문제가 있었다. 팬들도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모니카가 나서 “댄서로서 자존심도 없냐”고 일갈하는 장면이 방영됨으로써 방송은 논란을 비껴갈 수 있었다. 즉 제작진이 만들어낸 미션의 허점을 댄서가 진심을 담아 지적하고 이에 팬들도 호응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남성 댄서를 초대해 함께 꾸미는 맨 오브 우먼 미션은 여성 댄서들이 오히려 자존심을 드러내는 장이 됐다. 남녀의 성을 뒤바꿔 놓거나, 성을 무화시키는 의상을 입기도 하고, 박재범 같은 연예인을 데려와서도 그저 크루의 한 일원처럼 활용함으로써 오히려 더 각광받는 무대를 만들었다. 또 이 미션에서 팀 프라우드먼이 질 스콧(Jill Scott)의 ‘여성선언문(Womanifesto)’을 선곡해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을 위한 응원 메시지를 드랙킹, 드랙퀸의 연기와 춤으로 선보인 실험적인 무대는 대중적이지 않다는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았지만, SNS에서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것이 팀 프라우드먼의 댄스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 무대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점점 팬덤이 강력해지면서 댄서들의 진심을 지켜주고픈 이들의 요구들이 곳곳에서 생겨났고 이것은 다시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시 <프로듀스 101>의 투표 조작 논란으로 고개 숙였던 Mnet이 <스트릿 우먼 파이터>로는 어떻게 신드롬을 만들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면, 동시에 발견하게 되는 건 팬덤의 영향력이다. Mnet이 일찍이 열었던 오디션 예능의 힘의 원천은 바로 시청자 참여에 있었다. 시청자들은 이 열려있는 무대에 일반인으로서 참여하기도 했고, 참여한 이들을 응원해 스타로 육성해내기도 했다. 오디션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팬덤은 그러나 비즈니스 욕망과 만나면서 조작과 같은 부작용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찾아내고 공론화해 그 진상을 밝혀낸 것도 결국 팬덤의 힘이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역시 이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애초 우려했던 서바이벌의 자극적인 지점들이 있었지만, 팬덤이 형성되면서 프로그램도 자극과 대결만이 아닌 리더십이나 협업 같은 긍정적인 포인트를 담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춤에 진심인 댄서들의 울림 가득한 목소리들을 전하게 됐다. 그래서 파이널 무대에 이르러서는 이 서바이벌 오디션은 온전히 댄서들의 축제가 돼 있었다.
“잘 모르겠고 우리가 제일 잘했고 제일 멋있었어. 그럼 된 거야!”
아쉽게 최종 3등에 그친 팀 라치카의 가비가 소감으로 던진 외침이 그걸 잘 말해준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그래서 서바이벌 오디션이라는 장르가 결국은 제작진과 출연자 그리고 수용자(팬덤)의 공조에 의해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이고 그 무게중심이 이제 제작진에서 출연자와 수용자로 옮겨가고 있다는 걸 다시금 재확인시켜준 프로그램이 됐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서바이벌 오디션의 성패는 이제 시청률 같은 방송의 성공이 아니라, 팬덤이 만들어지느냐 아니냐로 갈리는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