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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현재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콘텐츠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서도 깨어난 과거를 마주하게 되는 일이 흔히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레트로’ 혹은 ‘뉴트로’라고 부르는 이 새로운 경향이 생겨난 이유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25년 만의 귀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이노우에 다케히코(井上雄彦)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4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서적으로 재출간된 원작 만화와 비하인드를 담은 책들이 모두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1월 국내 개봉 후 지금껏 이어지는 흥행에 대중은 ‘꺾이지 않는’이라는 수식어를 집어넣는다. 그건 흥행이 꺾이지 않는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이 <슬램덩크>라는 작품이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까지도 꺾이지 않고 기억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현재 우리네 대중에게 중요한 정서 중 하나로 꼽히는 이른바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와도 관련이 있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다름 아닌 그 중꺾마 정서를 툭툭 건드리는 작품으로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꺾이지 않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유를 찾기 위해선 먼저 그 원작 <슬램덩크>가 어떤 작품이었는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992년 한국에서 주간 《소년챔프》를 통해 연재됐던 <슬램덩크>는 당시 아직 일본 문화가 개방되지 않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주인공 이름인 강백호는 <슬램덩크>의 상징처럼 호명됐고, 이 이름은 우리식으로 변환된 이름임에도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진 후까지 일본 이름 대신 쓰일 정도로 이 작품의 대명사가 됐다. 점점 팬덤이 생겨나면서 강백호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북산고 농구팀을 이끄는 인물 하나하나가 부각됐다. 팀을 이끄는 주장이지만 리더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려는 약점을 가진 채치수,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패스를 하지 않는, 제 잘난 맛에 뛰는 서태웅, 실력은 있지만 방황 끝에 다시 농구를 하게되어 체력이 약한 정대만 그리고 경기의 완급을 조절하고 볼 배급을 하는 가드지만 키가 작다는 약점을 가진 송태섭이 그들이다. 즉 <슬램덩크>의 인기는 마치 아이돌 그룹 팬덤처럼 처음에는 팀 전체가 보이다가 그중 두드러진 한 사람이 보이고 그러다 주변 팀원들까지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으로 좋아하게 되는 그런 양상을 띠었다.
1990년대가 한국의 대중문화가 폭발하던 시기고, 무엇보다 H.O.T.나 젝스키스처럼 아이돌 그룹 팬덤이 조직화하던 시기라는 점은 <슬램덩크>의 인기가 비슷한 경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실제로 <슬램덩크>의 인기는 당시 대학팀과 실업팀이 함께 뛴 농구대잔치의 인기로도 이어진 바 있다. 특히 연세대, 중앙대, 고려대 같은 대학팀들이 급부상하면서 이 팀을 이끈 서장훈·우지원(연세대), 허재·강동희·김유택(중앙대), 현주엽(고려대)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아이돌 같은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또 1994년 방영됐던 <마지막 승부>도 이러한 <슬램덩크>와 농구대잔치의 인기에 힘입어 손지창, 장동건, 심은하, 이종원 같은 배우들을 스타덤에 올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25년이 흘렀다. 애니메이션 영화로 재탄생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어떤 점이 원작의 인기를 다시 현재로 잇게 만들었을까. 캐릭터들과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팀의 기본 서사를 가져왔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현재 대중 정서에 맞는 중꺾마 서사에 집중했다. <슬램덩크> 원작에서는 그다지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가드 송태섭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세워놓고 산왕공고와의 경기를 통해 각각의 선수들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채치수는 중요한 순간에 송태섭에게 리더의 역할을 넘겨주고, 서태웅은 이기기 위해 강백호와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정대만은 약한 체력을 정신력으로 극복한다. 농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룰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강백호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자존감’으로 북산고에 힘을 불어넣고, 송태섭은 작은 키를 빠른 발로 극복한다. 이 중꺾마 정신은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까지 이 작품에 빠져들게 만든 중요한 힘이다. 경제 불황에 코로나19까지 겹쳐 가장 힘겨운 위치에 서 있는 젊은 세대들이 자신 안에 있는 불씨를 다시 끄집어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와 현세대의 접점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시작돼 원작 만화에 대한 역주행 열풍이 벌어진 이 현상에는 그래서 그저 1990년대 <슬램덩크>를 봤던 중장년 세대들의 향수와 추억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현재성’이 담겨있다. 그것이 제아무리 당대에 큰 인기를 끌었고 그래서 그때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해도 현재의 어떤 촉발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역주행 열풍이 생겨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결국 현 대중문화가 폭발적으로 소비되는 신드롬적 경향이란 그것이 중장년 세대 같은 특정 층에만 소구되는 것으로는 가능하기 어렵다. 젊은 세대들이 호응해줘야 하는데,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과거 <슬램덩크>를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들이 주목하고 빠져들 수 있는 요소들이 담겨있어 이러한 신드롬이 생겨날 수 있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열풍은 작년 6월 개봉해 코로나19 시기에도 800만 관객을 돌파한 <탑건: 매버릭>과 유사한 지점이 있다. <탑건: 매버릭> 역시 1986년 방영됐던 <탑건>의 후속작으로서 무려 36년 만에 돌아와 열풍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대에 영화를 봤다면 이제 중장년의 나이가 됐을 관객들에게 다시 돌아온 <탑건: 매버릭>은 먼저 시간의 장벽을 뚫고 과거에서 현재로 훅 날아온 듯 보이는 톰 크루즈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물론 환갑의 나이고 얼굴에도 주름이 생겼지만 잘 관리된 몸은 그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과거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은 이 작품이 기성세대들, 그중에서도 중장년 남성들의 마음을 직관적으로 사로잡은 중요한 포인트다. 그 나이에도 여전히 정력적인데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불릴 정도로 한계를 뛰어넘는 비행을 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중년여성 페니(제니퍼 코넬리)와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 매버릭(톰 크루즈)이다. 중장년 남성들의 워너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처럼 중장년 세대의 취향을 저격한 <탑건: 매버릭>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그러하듯이 젊은 세대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1986년 <탑건>에서 전투기 조종사였지만 <탑건: 매버릭>에서 교관으로 돌아온 매버릭은 무인기가 작전을 수행하는 시대에 불필요한 존재 같지만, 그에게 과거 방식으로 수행할 수밖에 없는 미션이 주어진다. 즉 직접 적진에 들어가 아날로그적인 전투 방식만으로 수행해낼 수 있는 그 미션은 실로 인간의 힘과 더불어 몇 차례의 기적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아날로그 미션의 과정을 <탑건: 매버릭>은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담아낸다는 점이다. 매버릭 교관의 진두지휘하에 연습에 연습을 더하고 실전에 투입되는 과정이 그렇고, 실전을 마치 게임처럼 긴박감 있게 연출한 장면들이 그렇다. 이 지점은 게임적 요소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취향을 건드린다. <탑건: 매버릭>의 성공 역시 기성세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판타지와 더불어 젊은 세대의 취향에 호소한 접점 덕에 가능했다.
젊은 세대가 옛 감성에 열광하는 이유
<더 퍼스트 슬램덩크>나 <탑건: 매버릭>이 인기를 끄는 현상이 레트로가 아닌 ‘뉴트로(New+Retro)’로 불리는 이유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기성세대만이 아닌 과거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사실상 이 흐름을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과거 아날로그 경험이 없는 젊은 세대가 옛 감성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역설적으로 이들이 디지털 세대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디지털 문화란 복제를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쉽게 복제된 콘텐츠들은 더 많은 대중의 저변을 갖게되지만, 그만큼 몰개성화되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MZ세대가 개성적인 자신만의 경험을 갖기를 원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경험을 SNS를 통해 알리고픈 욕망이 크다는 사실은 이들이 왜 아날로그적인 옛 감성에 열광하는가를 말해준다. 이를테면 누구나 쉽게 찍고 보정하고 때론 버리는 디지털 사진이 주는 몰개성 대신 이들은 현상할 때까지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알 수 없고 그 순간 포착이 거의 유일무이한 경험을 담게 해주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구독 가입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음원의 시대에 이들이 레코드판을 사서 듣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개성이 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의미로는 가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기만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아날로그가 오히려 힙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트렌드에 특히 민감한 대중문화 콘텐츠 업계에서는 일찌감치 이러한 뉴트로적 변화를 읽어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1990년대 음악부터 당대의 문화들까지 끄집어내 복고를 넘는 뉴트로적 성공을 일궈냈고, 이 흐름에 영화 <써니>, <고고70> 같은 작품들이 동참했다. 인터넷에서 생겨난 ‘온라인 탑골공원’이 옛 음악 차트들로부터 양준일 같은 비운의 가수를 찾아내자 <슈가맨> 같은 프로그램이 이들을 출연시켜 차트 역주행을 만들었고, 2004년부터 약 1년간 방영된 드라마 <영웅시대>에서 김두한 역할로 출연했던 김영철이 “사딸라”를 외쳤던 장면이 현재로 소환되어 밈처럼 유행을 만들자 이를 패러디한 광고가 등장했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됐던 <전원일기>가 OTT를 통해 다시 서비스되면서 급부상하자, 당대의 출연자들이 벌이는 전원 라이프를 담은 예능 프로그램 <회장님네 사람들>이 새롭게 제작됐다. 이제 지금의 대중은 과거 방영돼 공전의 히트를 했던 시트콤 <순풍산부인과>나 레전드 예능 <무한도전>, 레트로 패션 감성을 자극하는 <세일러문>이나 지금의 판타지 열풍의 원조 격인 <해리포터> 시리즈를 현재로 소환해내 소비한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OTT 같은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 때문이다. 과거 시간순으로 소비되고 사라지곤 했던 문화 콘텐츠들은 이제 OTT를 타고 쉽게 현재로 귀환한다.
역주행 현상과 소비자 파워
그래서 옛 콘텐츠들이 부활해 현재에 열풍을 만드는 ‘역주행’ 현상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됐다.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이 군인들의 소름 돋는 리액션과 더불어 역주행하고,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이 발매 시점에서 한참 지난 후 재발견돼 차트 정상에 오른다. ‘추앙’ 신드롬을 일으킨 박해영 작가의 <나의 해방일지>가 큰 화제가 되자 넷플릭스에서는 이 작가의 전작인 <나의 아저씨>가 역주행해 톱10 리스트에 오른다. 최근 들어 IP 개념의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으로 등장하는 콘텐츠들은 타 분야의 원작 역주행을 만들기도 한다. 일본에 웹툰으로 먼저 진출했던 <이태원 클라쓰>가 당시에는 별 반응이 없다가, 드라마 리메이크로 큰 성공을 거두자 웹툰 역주행을 일으킨 사례는 대표적이다. <사내맞선>이나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작품들도 리메이크된 드라마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원작 웹툰, 웹소설이 역주행한 사례들이다.
이러한 역주행 현상이 말해주는 건 달리 말하면 ‘소비자 파워’다. 생산자가 언제 상품을 내놨고 그래서 당대에 성공했든 실패했든 상관없이 이제 현재의 소비자들이 마음에 들어 한다면 역주행 소비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상품이 성공하면 그와 연관된 상품들도 연달아 소비되는 ‘팬덤 소비’도 생겨난다. 이러한 소비자 파워를 인지한 기업들은 이제 이를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한때 제과업계에 일어났던 ‘포켓몬빵’ 대란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동네 빵집들에 밀려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제과업체가 빵 안에 향수를 자극하는 포켓몬 카드를 넣는 마케팅 전략을 활용했고 이 제품은 40일 만에 1,000만 개가 판매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옛 콘텐츠들이 다시 현재로 소환되어 기성세대는 물론이고 젊은 세대들에게도 열광적으로 소비되는 이른바 ‘뉴트로’와 ‘역주행’ 경향은 그래서 단순한 복고와 추억을 넘어 디지털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흐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디지털의 역작용으로 아날로그를 추앙하고, 그렇게 끄집어낸 아날로그가 SNS 같은 디지털을 통해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오르며, 결국 막강해진 소비자 파워에 의해 시간을 거스르는 역주행에도 이르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과거는 현재의 힙한 콘텐츠로 부상한다. 그 흐름에서는 과거와 현재 같은 시간의 경계를 넘어 이제는 취향으로 묶이는 디지털 문화의 특징이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