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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평화상은 두 명의 언론인이 공동 수상했다.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와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가 그 주인공이다. 노벨위원회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이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두 명의 수상자가 걸어온 길과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언론의 사명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2006년 10월 7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48세 여성이 무참히 살해당했다. 두 자녀의 엄마였던 희생자는 머리, 가슴 등에 총격을 당했고 이 사건은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비극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반인권 정책을 강력하게 규탄해 온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Anna Politkovskaya) 기자였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10월 7일은 푸틴 대통령의 생일이었다. 안나는 독립선언을 한 체첸공화국을 상대로 러시아가 감행한 2차 체첸전쟁(1999~2005) 당시 러시아군의 약탈, 강간, 살인 등의 각종 만행을 세상에 알렸다. 안나의 기사들은 이후 수십 건의 전쟁범죄가 기소되는 데 단초가 됐다. 그러나 그녀는 이로 인해 오랜 기간 살해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2001년 체첸에선 러시아군에 의해 억류됐고, 2004년 ‘베슬란 학교 인질 사건’ 때는 독극물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안나의 죽음은 8년간의 늑장 수사 끝에 2014년에야 청부 살인으로 밝혀졌고, 다섯 명이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누가 살인을 지시했는지는 끝내 미궁으로 남았다.
저널리스트, 인권운동가, 작가 등으로 활동하면서 언론 자유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안나의 삶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10월 8일, 노르웨이 오슬로의 노벨위원회가 “민주주의와 항구적 평화의 전제조건인 표현의 자유를 위해 용기 있게 싸웠다”며 저널리스트 두 명을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상을 주지 않는다는 노벨상의 원칙 때문에 안나는 그 명단에 들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소속해 일했던 러시아의 독립언론사 노바야가제타(Новая газета)의 편집장 드미트리 무라토프(Dmitry Muratov, 60세)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무라토프는 수상 소감에서 “노벨상은 내 몫이 아니다. 안나와 우리 언론사가 함께 받는 것이다”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노바야가제타는 푸틴 치하에서 자유 언론의 전진기지 역할을 해 왔고, 이 과정에서 소속 기자 여섯 명이 살해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필리핀 대통령의 권력 남용과 인권 탄압을 고발해 온 탐사보도 매체 래플러(Rappler)의 창립자 마리아 레사(Maria Ressa, 58세)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권력 감시에 목숨 건 저널리스트들
레사와 무라토프의 공통점은 ‘독립 저널리즘’을 통해 권력자들이 불편해하는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권력이 아닌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 1992년 이후 필리핀과 러시아에서 살해당한 언론인이 각각 87명, 58명에 달했을 만큼 두 나라의 언론 자유는 최악이었다. 이번 노벨평화상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표현 및 결사의 자유가 위축되고, 언론 자유가 퇴보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
무라토프는 1961년 러시아 중부 노보시비르스크(Novosibirsk)주의 서부 도시인 쿠이비셰프(Kuibyshev)에서 태어났고, 쿠이비셰프주립대에서 공부했다. 잠시 군에 몸담은 후 저널리즘에 뛰어들었고, 이후 러시아 일간지 콤소몰스카야프라우다(Комсомольская правда)에서 일했다. 그리고 1993년 독립언론사 노바야가제타를 창립했다. ‘새로운 신문’이란 뜻의 노바야가제타는 ‘정직하고, 독립적이고, 풍부한’ 언론이 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당시 도움을 준 이가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었다. 고르바초프는 1990년에 받은 노벨평화상 상금 중 30만 달러(약 3억 4,900만 원)를 언론사 운영에 사용하도록 쾌척했다. 초기에 편집장 대리로 일을 시작했던 무라토프는 1차 체첸전쟁 때 특파원으로 일한 뒤 1995년부터 2017년까지 편집장으로 일했다. 회사가 2019년 편집장 직선제를 채택한 뒤 다시 편집장에 선출됐다.
1999년 이후 푸틴의 철권통치가 지속돼 온 러시아에서 노바야가제타는 부패, 경찰 폭력, 선거 범죄는 물론이고 러시아 정부와 유착한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Oligarch)의 비리를 특종 보도했다. 2017년에는 정부 주도의 동성애자 탄압을 폭로했다. 당시 기사를 쓴 기자는 살해 위협 때문에 외국으로 피신해야 했다. 푸틴 정부는 지속적으로 비판적 언론사와 언론인들을 ‘외국 첩자’로 지정함으로써 해당 언론사가 경제적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레사는 1963년 필리핀에서 태어난 직후 아버지를 여의었고, 이후 어머니는 레사와 그의 여동생을 할아버지에게 맡겨놓고 미국에 정착했다. 9년 후, 레사는 어머니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갔고, 고교 때 디베이트팀에서 활동하며 방송 실력을 키웠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영문학 학위를 받았고, 졸업 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마닐라에서 정치 연극을 공부했다. 1987년부터 CNN의 마닐라 및 자카르타 지국장으로 일했으며, 2012년 방송계 동료들과 힘을 합쳐 200만 달러(약 23억 2,900만 원)를 조성해 인터넷 매체 래플러를 창립했다. 래플러는 필리핀에서 발행되는 영어 매체 중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레사는 필리핀 정부의 인권 탄압과 여론 조작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레사가 가장 주목한 것은 2016년 5월 대통령에 당선된 두테르테였다. 특히 래플러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 이른바 ‘토캉(Tokhang) 작전’을 통해 살인과 폭력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두테르테는 경찰을 향해 “당신들이 임무를 수행하느라 1,000명을 죽여도 나는 당신들을 보호하겠다”라며 경찰의 초법적 살인을 옹호하기도 했다. 인권단체들은 마약 소탕 작전 과정에서 1만 2,0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는 미성년자와 빈민 계층이다. 래플러는 온라인 트롤, 여론 조작, 인권 탄압 등 사안에서 선구자적 보도를 해왔고, 지난 9월 국제형사재판소는 두테르테의 반인권 범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두테르테의 적대적 언론관도 여러 번 주목받았다. 그는 언론인을 ‘스파이’ 또는 ‘개자식’이라고 비난했고, 심지어 “암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위협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두테르테는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와 관련해 기자들을 ‘가짜뉴스 행상인’이라고 낙인찍기도 했다. 필리핀 정부는 합리적 증거도 없이 래플러가 외국인 소유라는 구실로 사업 면허를 취소시켰다. 탈세,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레사와 래플러를 기소했고, 이 과정에서 레사가 두 차례 체포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압권은 2020년 6월, 필리핀 법원이 온라인 명예훼손 혐의로 레사와 전직 래플러 직원에게 각각 최대 6년의 징역형과 8,000 달러(약 932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한 것이다. 래플러가 권력형 비리를 보도한 지 4개월이 지나서 새롭게 제정된 사이버모독법을 근거로 삼은 것이었다. 법 제정 전 벌어진 일을 소급적용한 ‘초법적’ 선고인 셈이다.
레사는 또한 두테르테와 정부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가짜 계정들을 활용해 거짓 정보를 전파하고 여론을 조작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필리핀의 민주주의가 가짜뉴스로 위협받는 것을 직접 목격한 레사는 미국의 포인터연구소(Poynter Institute) 등과 협력해 ‘팩트체킹 저널리즘’을 지구촌에 확산시키는 데 앞장섰다. 레사는 2018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고, 세계신문협회로부터 ‘황금펜상’을 받았다.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언론의 역할
노벨위원회가 저널리스트 두 명에게 노벨평화상을 주기로 한 결정은 많은 나라에서 위축된 표현의 자유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다. 다음은 노벨위원회의 변이다.
“수상자들은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갈수록 열악한 환경에 처해가는 지구촌에서 용기 있게 싸우는 저널리스트들을 대표하고 있다. 무라토프는 살인과 협박에 굴하지 않고 저널리즘의 전문적, 윤리적 원칙을 지키는 기자들에게 원하는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지원했다. 레사와 래플러는 소셜미디어가 어떻게 가짜뉴스를 전파하고, 반대진영을 괴롭히고, 공론장을 조작하는 데 악용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증명했다.”
언론인이 세계 평화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 것은 노벨상 역사상 이번이 세 번째다. 1907년 이탈리아 평화운동 지도자이자, 신문 편집장이었던 에르네스토 테오도로 모네타(Ernesto Teodoro Moneta, 1833~1918)가 첫 번째 수상자였고, 1935년 독일 저널리스트 카를 폰 오시에츠키(Carl von Ossietzky, 1889~1938)가 두 번째다. 오시에츠키는 주간지 벨트뷔네(Die Weltbhne) 편집장으로 재직하던 1929년 독일 공군이 비밀리에 재무장하고 있다는 기사를 쓰는 등 나치즘 반대 평화운동을 벌이다 체포돼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86년 만에 노벨평화상의 영광이 또다시 언론인에게 돌아간 것이다.
2021년 언론인의 노벨상 수상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권위주의 국가들, 그리고 ‘표현의 책임’을 외면하는 테크 기업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성격이 크다. 또 노벨위원회의 이번 결정에는 지구촌의 민주적 공론장을 지키고, 가꾸기 위한 포석이 담겨 있다. 구체적으로 이번 노벨평화상의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노벨위원회가 저널리즘의 역할을 세계 평화의 초석으로 선언했다는 점이다. 노벨위원회는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사실에 기반한 저널리즘은 권력 남용, 거짓말, 전쟁 선동에 맞서 세계를 보호하는 데 기여한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없다면 ‘국가 간의 우애’, ‘군비축소’, ‘더 나은 세계 질서’를 성공적으로 촉진하기 어렵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더불어 노벨위원회가 민주주의의 수호 차원에서 저널리즘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달라고 촉구했다는 점도 뜻깊다.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 로저 코헨(Roger Cohen)은 “이번 노벨평화상은 세계의 권위주의 정부들이 가짜뉴스를 이유로 언론 자유에 대한 공격을 확대하고 있는 시점에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인보호위원회(CPJ, 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세계적으로 274명의 언론인이 투옥돼 있으며, 이는 1992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나라별로는 중국(47명), 터키(37명), 이집트(27명), 사우디아라비아(24명) 등 순서다. 언론 보도에 따른 보복성 살인은 2019년 10명에서 2020년에는 22명으로 늘었고, 2020년 가짜뉴스 보도를 이유로 투옥된 언론인은 34명에 이른다.
둘째, 거짓 정보로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뉴미디어 생태계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다. 미얀마, 필리핀, 인도,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가짜뉴스와 증오 메시지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하면서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졌고, 테러, 인종 청소 등 불행한 사태가 잇따랐다. 페이스북은 이런 현실에 나 몰라라 했고, 자신들은 정보의 단순 유통망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레사는 노벨평화상 발표 직후 “페이스북은 지구촌 최대의 플랫폼이지만 팩트(Fact)와 저널리즘의 역할에 반하는 소셜미디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2016년 레사는 두테르테가 적대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활용했다는 시리즈 보도를 한 후 시간당 100건이 넘는 협박성 음성 메시지를 받아야 했다. 레사는 “그들의 공격은 악랄했다. 난 인간 본성의 최악을 마주했다. 그들은 ‘난 당신을 죽일 것이다, 강간하겠다’고 위협했다”며 “그때 난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동물로 불렸다”고 밝혔다. 2016년 8월 레사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와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레사가 “필리핀 인구의 97%가 페이스북을 쓴다. 당신이 필리핀을 방문해 페이스북이 필리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직접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자 저커버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런데 나머지 3%는 (페이스북이 아닌) 뭘 하고 있죠?”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저널리즘의 사명을 위해 살았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제 플랫폼이 그 역할을 맡게 됐는데 그들은 제대로 일하지 않는다”고 레사는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레사의 수상은 공공안전과 민주주의를 교란한 소셜미디어를 향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레사는 이번 수상으로 120년의 노벨상 역사에서 노벨평화상을 받는 18번째 여성이 됐다. 여성 저널리스트가 수상자가 된 것은 진실을 알리다 희생된 러시아의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 기자를 비롯해 지구촌 여성 언론인이 겪어 온 수난과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레사는 “필리핀에서 나를 상대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괴롭힘과 위협은 하나의 글로벌 트렌드”라며 자신의 여성성이 부당한 공격의 소재가 됐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미디어학자 줄리 포세티(Julie Posetti)에 따르면, 레사에 대한 온라인 공격의 경우 ‘가짜뉴스의 여왕(Queen of Fake News)’ 또는 ‘프레스티튜트(Presstitute, 언론(Press)과 매춘부(Prostitute)의 합성어)’ 등의 표현이 많고, 레사의 언론 활동을 여성 혐오로 부추기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저널리즘 본질로 돌아가야
미국의 언론학자 스테파니 크래프트(Stephanie Craft)와 찰스 데이비스(Charles N. Davis)는 “저널리즘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진실된 정보(truthful information)’를 모으고, 검증하고, 보도하는 데 목적을 둔 일련의 투명하고, 독립적인 절차를 말한다”고 정의했다.
그렇지만 오늘날 한국의 언론 상황은 어떠한가. 속보 경쟁과 정파성에 매몰된 채 ‘정보 검증’과 ‘진실 전달’이라는 저널리즘의 사명을 외면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런 점에서 한국 언론은 이번 노벨평화상을 계기로 저널리즘의 본질을 숙고하고 고민해야 한다.
특히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책임은 동전의 양면처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언론의 절대적 존재 이유이자 숭고한 가치다. 때마침 한국 사회에선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언론재갈법’인지 아닌지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 정치권력은 혹시라도 자신들을 불편하게 한 보도를 가짜뉴스로 치부하면서 언론을 적대시하지 않았는지, 표현의 자유가 가진 중요성을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자성해야 한다. 언론 또한 부정확하고 왜곡되고 거짓된 정보를 전달해 보도 당사자들에게 부당한 피해를 끼치지 않았는지, 나아가 그 피해를 구제하는 데 소홀해 언론의 막중한 의무를 외면하지 않았는지 성찰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과제는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보여준 것처럼 ‘독립 언론’을 실천하는 것이다. 미디어, 언론사, 언론인은 정치권력, 경제권력, 언론사주, 취재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시민의 편에 서서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가 되기 위한 실행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2021년 노벨평화상이 한국 사회에 주문하는 시대적 소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