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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Wir schaffen das).”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가 2015년 난민 위기 때 내놓은 메시지는 그의 대표적인 슬로건이 됐다. 지난 11월 7일, 국영 방송 도이체벨레(Deutsche Welle)와 나눈 인터뷰에서 메르켈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해냈습니다(Wir haben das geschafft).”
이 두 마디로 앙겔라 메르켈의 임기를 간단히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2005년 이후 지금까지 16년간 독일을 이끈 메르켈 총리. 재임 기간 금융 위기와 탈원전, 난민, 브렉시트, 코로나19까지 굵직한 위기를 끝내 이겨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기 말 지지율은 70%를 넘는다. 메르켈을 보내는 독일 사회의 아쉬움이 묻어난다. 긴 재임 기간, 언론과 메르켈은 어떤 관계를 유지했을까. 총리 퇴임을 앞두고 언론과 메르켈의 다양한 역학 관계를 살펴봤다.
메르켈 총리와 독일 언론의 16년
앙겔라 메르켈과 언론과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키워드는 ‘여름 기자회견(Sommerpressekonferenz)’이다. 메르켈 총리는 매년 여름, 1년에 한 번 연방 기자단의 초청을 받아 연례 기자회견을 열었다. 메르켈 총리와 독일 언론 사이의 전통이자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 잡은 행사다. 독일 연방 기자단은 독일 정부가 장소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언론사와 기자들이 독립적으로 세우고 운영하는 조직이다. 매체 소속이든 프리랜서 기자든 정치 보도를 하는 기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기자단에 가입된 기자라면 누구나 기자회견에 참여할 수 있다. 메르켈은 연례 기자회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기자들의 모든 질문을 받았다. 앞서 언급한 메르켈의 슬로건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도 바로 이 기자회견에서 나온 메시지였다.
연례 기자회견과 달리 개별 언론과의 접촉은 점점 더 줄었다. 2019년 10월 타게스슈피겔(Der Tagesspiegel) 보도1)에 따르면 메르켈은 2018년 22건의 언론 인터뷰를 진행했다. 신문 8건, 방송 14건이다. 그 이전 평균 60건 이상 인터뷰에 응한 것과 비교하면 언론과의 접촉이 점차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긴 재임 기간을 거치면서 새로움이 없어진 탓도 있지만, 그동안 정치·사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바뀌었다. 연방정부는 SNS 홍보 채널을 운영하면서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SNS로 직접 소통이 가능해진 이상, 정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언론 매체를 활용할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연방정부는 이른바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메르켈 총리가 직접 나와 영상 메시지를 전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공개된 영상만 449개다. 사안 관련 인물 인터뷰 형식도 있지만, 최근에는 혼자 메시지를 발표하는 방식이 많다. 연방정부 공보처가 공개하는 영상은 인터뷰 형식이라도 정부가 원하는 질문자를 선정해 원하는 질문을 받을 수 있다. 독일기자협회 측은 “총리와 인터뷰를 하는 건 기자들의 역할”이라며 “연방정부가 정기적으로 영상 메시지를 보내는 건 PR이지 저널리즘이 아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비판 지점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메르켈 총리와 언론,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인다. 메르켈은 연례 기자회견에 참석할 때마다 ‘초대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빠트리지 않는다. 메르켈을 떠나보내는 언론은 각자의 방식으로 메르켈을 기념하고 있다.

독일 대표 주간지 슈피겔(Spiegel) 자매지인 슈피겔비오그라피(Spiegel Biografie)는 지난 8월 메르켈 특집호 <메르켈 시대(Die ra Merkel)>를 발행했다. 슈피겔비오그라피는 “16년 이후,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시대가 막을 내린다”면서 “동쪽에서 이직한 정치인이 이렇게 오래 독일을 다스리고, 영향을 끼치고, 숱한 세계적 위기를 넘어 (독일을) 이끌 거라고는 2005년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슈피겔도 그가 곧 물러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고 회고했다. 슈피겔은 “어떤 매체보다 메르켈을 깊게 다뤄왔다”면서 시기별로 주요 보도를 소개했다. 구동독 지역 대표 주간지인 주퍼일루(Superillu)는 지난 9월 앙겔라 메르켈 특별판을 내면서 “한 동독인이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여성이 됐나”라는 부제를 달았다. 메르켈은 임기 말까지 동독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주퍼일루와 인터뷰하고 접촉을 유지하면서 동독과의 유대를 이어왔다.
포용적 리더십으로 ‘무티’ 인정받아
앙겔라 메르켈은 정계 입문과 동시에 ‘콜의 소녀(Kohls Mdchen)’라고 불렸다. 메르켈을 정치계로 이끌었던 헬무트 콜(Helmut Kohl) 전 총리의 이름을 붙인 별명이었다. 정치인 첫걸음부터 여성성을 부여받은 메르켈은 총리 재임 기간에는 여성성과는 거리를 두려고 했다.
이런 경향은 메르켈이 처음 총리가 된 2005년 연방 선거 때부터 나타난다.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Fritz Kurt Schrder) 당시 총리와 메르켈의 선거운동 보도를 분석한 연구2)에 따르면 메르켈은 “‘여성’이라는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중성화하려고 노력”했다. 선거운동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지 않았고, 여성이 아닌 정치인으로 평가받으려고 했다. 여성 정치인은 대게 교육이나 문화 등 연성 테마를 다룬다는 연구 결과가 있지만, 메르켈은 달랐다. 성별 고정관념이나 클리셰를 이용하지 않는 건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메르켈에게 여성성을 부여해 성별 투쟁 프레임을 만들지 않았다. 여성 지지자가 많았던 슈뢰더 전 총리에게도, 보수적인 남성 중심 정치권에서 자리를 지켜야 할 메르켈 총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성별과 거리를 두는 경향은 메르켈의 재임 기간 내내 이어진다. ‘당신의 페미니스트인가’라는 질문에는 ‘여성운동가들이 있는데 나를 포장하고 싶지 않다’며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비판을 받았다. 메르켈 정부 각부 장관의 여성 비율은 44%3)로 높은 수치로 보이지만 16년 전 전임자인 슈뢰더 정부 당시 42.9%4)와 비교하면 큰 진전이 없다. 여성계가 메르켈의 여성 정책에 대해 비판적 평가를 하는 이유다. 슈피겔비오그라피는 메르켈이 “목사 가정에서 자란 물리학 박사인 그는 성별이 아닌 업무로 인정받고자 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노력’과는 다르게 재임 기간 그의 별명은 ‘무티(Mutti)’였다. 어머니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다. 포용력 강한 리더십을 빗댄 긍정적 단어로 쓰였지만, 역설적인 별명이다. 여성계의 비판을 받을 만큼 여성성과 거리를 두었음에도 메르켈은 ‘소녀’에서 ‘엄마’가 됐다.
‘메르켈하다’는 말도 있었지만 임기 말, 못 다한 이야기 전해
“메르켈하다(merkeln).”
2015년 독일 청소년 신조어로 꼽힌 이 동사의 뜻은 이렇다. ‘중요한 사안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명확한 표현을 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지 않고, 명확한 의사 표현도 하지 않음’, ‘사적이고 감성적인 질문에 최대한의 사실관계로 답하는 것’.
메르켈 총리의 메시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속 시원한 메시지를 원하는 유권자들에게는 답답할 만큼 포용적이었고, 시시비비가 명확하지 않았고, 메시지는 유야무야했다. 비판도 받았지만, 동시에 (바로 ‘무티’ 같은) 거대한 포용력으로 16년간 독일을 성공적으로 이끈 전략이었다. 임기 말인 최근에서야 메르켈답지 않은 메시지가 언론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 번도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여성으로서, 동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한 것이다.
2019년 주간신문 차이트(Zeit)와의 인터뷰5)에서 메르켈은 ‘동독의 절망감’에 공감을 표했다. 그동안 동독인의 총리가 아닌 모든 독일인의 총리를 강조하던 메르켈이었다.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고충(?)도 토로했다. “남성이라면 100일 내내 남색 정장을 입고 다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내가 2주 동안 같은 재킷을 4번 입으면 기사가 난다”고도 했다. 이듬해 독일통일 30주년을 맞아 구동독 지역 언론사와 함께 진행한 인터뷰6)에서는 “동독인으로서 총리가 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소수자적 정체성을 드러낸 이례적인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10월 3일 독일통일 31주년 기념식에서도 ‘동독 출신 총리’로서의 소회를 털어놨다. 동독 시절의 삶과 경력을 ‘필요 없는 짐’으로 묘사한 연구 논문과 ‘태어나지 않고 뒤늦게 배워 익힌 독일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언론 보도를 정확히 인용했다. 서독 중심적 시선으로 동독의 삶과 이력을 무시하고 대상화한 미디어를 비판한 것이다. 메르켈 총리가 독일 내에서 전하는 마지막 연설 무대였다. 16년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기에 메시지의 울림은 더욱 컸다. 16년의 무게를 내려놓는 메르켈의 모습에 많은 이가 박수를 보냈다.
1) 당시 한 변호사가 연방정부 공보청을 대상으로 정보 공개 소송을 제기해 공개된 자료를 출처로 보도했다. Mller-Neuhof, J., <Merkel zieht sich zurck – von den Medien>, Der Tagesspiegel, 2019.10.31., https://www.tagesspiegel.de/politik/nur-noch-22-interviews-im-jahr-merkel-zieht-sich-zurueck-von-den-medien/25175818.html
2) Koch, T., <Immer nur die Frisur? Angela Merkel in den Medien>, ResearchGate, 2007.12,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26332599_Immer_nur_die_Frisur_Angela_Merkel_in_den_Medien
3) Feuerbach, L., Heid, T., & Ripperger, A., <Das weiblichste Kabinett aller Zeiten>, FAZ Online, 2018.3.13, https://www.faz.net/aktuell/politik/inland/bundesregierung-frauenanteil-in-der-neuen-groko-so-hoch-wie-nie-15487240.html
4) <MERKEL HÄLT DIE FRAUENQUOTE>, Hans-Böckler-Stiftung, 2005, https://www.boeckler.de/de/boeckler-impuls-merkel-haelt-die-frauenquote-10674.htm
5) Hensel, J,. <"Parität erscheint mir logisch">, Zeit, 2019.1.23, https://www.zeit.de/2019/05/angela-merkel-bundeskanzlerin-cdu-feminismus-lebensleistung
6) Augustin, H., Birgel, D., Ebel, A., et al, <Merkel: “Finde es schön, dass eine Ostdeutsche Kanzlerin werden konnte”>, RND, 2020.10.3, https://www.rnd.de/politik/merkel-im-interview-zur-wiedervereinigung-finde-es-schon-dass-eine-ostdeutsche-kanzlerin-werden-konnte-BZQJTAZVUFB3XNNGQHSA7KUIGA.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