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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신뢰도 하락과 더불어 기자에 대한 대중의 불신도 심각한 수준이다. 모욕과 괴롭힘에 시달리고 기자로서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끼기 어려운 현실에서 좋은 기사가 생산될 수 있을까. <2021 한국의 언론인 : 제15회 언론인 조사> 결과를 통해 언론인의 현실을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아이템 가운데 하나가 ‘언론(인) 혐오’ 아닐까 싶다. 따로 투자하거나 준비할 것도 없이 유튜브나 팟캐스트, 소셜미디어에서 ‘기레기(기자+쓰레기)’를 욕하면 구독자와 ‘좋아요’가 빠르게 늘어난다. 말 그대로 땅 짚고 헤엄치는 비즈니스다. 정치인과 지식인, 심지어 전직 언론인마저 앞다퉈 이 사업에 뛰어드는 건 그만큼 수지가 맞기 때문일 테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기자만큼 욕하기 쉬운 직업이 있을까. 기자가 욕을 먹어선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기자는 본래 남의 허물을 들추는 직업이니, 누군가 자신의 허물을 탓하더라도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에 바탕을 둔 정당하고 합리적인 비판이 아니라 근거 없는 조롱과 경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댓글과 이메일 ‘폭탄’을 통해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인신공격이 쏟아지는 걸 무조건 견뎌야 하는 직업은 세상에 없다.
기자를 타깃 삼아 무자비한 사적 린치를 가하는 디지털 ‘자경단’도 있다. 기레기는 인간 이하의 존재니까 혼나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특히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좌표’를 찍어 공격을 집중시키는 온라인 트롤링(onlinetrolling)이 심각하다. 가족의 신상을 털어 테러를 벌이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여성 기자들은 더 심각한 위협에 노출돼 있다. 많은 여성 기자가 그 자체로 성폭력에 해당하는 이메일 공격에 지금도 시달린다.
하지만 기자들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online harassment)의 심각성은 사회적으로 너무 과소평가 받고 있다. 언론학자들은 일부의 문제일 뿐이라 말하거나 ‘언론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는 엉뚱한 결론을 내놓곤 한다. 언론사 내부에서조차 ‘기자가 그 정도는 견뎌야 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현장의 기자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하지도 못한 채 상처만 되새길 뿐이다.
기자도 인간이고 노동자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와 노동의 가치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보장되지 않는 조건에서는 좋은 저널리즘은 고사하고 직업인으로서 버텨내기조차 어렵다. 최근 언론계에 기레기와 브렉시트(Brexit)를 절묘히 조합한 기렉시트(기레기를 탈출, 즉 이직한다는 의미)라는 자조적 농담이 유행할 만큼 기자들은 비전과 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중이다.
이런 열악한 조건을 방치한 채 기자들에게 왜 양질의 저널리즘을 구현하지 못하느냐고 호통만 치는 건 염치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저널리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방법도 아니다. 기자가 기자다워지려면 먼저 기자가 인간답게 일할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좋은 저널리즘을 위해서라도 “요즘 기자들이 나약해져서 그렇다”는 식의 안일한 ‘라떼식’ 해법 말고 기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언론인 조사로 살펴본 기자들의 고민
지금 언론인은 행복하지 않다. 기레기라는 모욕이나 괴롭힘 때문만은 아니다. 기자로서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끼며 일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사주와 뉴스룸 간부들, 광고주와 정치권의 압력 때문에 온전히 자유롭게 취재하고 보도할 수 없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뉴스 산업의 위기는 심화하고 언론 신뢰도는 바닥을 쳤다. 좀처럼 미래를 위한 비전을 찾기 어려운 가혹한 현실 앞에서 기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1 한국의 언론인 : 제15회 언론인 조사> 결과는 기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며 어떤 고민 속에 살아가는지를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 <언론인 조사>는 국내 유일의 정례적 언론인 대상 통계조사로서, 1989년부터 언론 현실에 대한 이해와 정책 마련의 기초가 되는 실증적 데이터를 제공해 왔다. 지난해 15회차를 맞은 <언론인 조사>는 2021년 7월부터 10월까지 전국의 신문사·방송사·통신사·인터넷 언론사에 소속된 언론 산업 종사자 2,014명을 대상으로 조사했고, 취재 보도 행태, 직업의식, 근무 환경, 직업윤리와 관련된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언론인들은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고 있을까?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언론인으로서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11점 척도(0점 매우 불만족~10점 매우 만족)로 평가한 결과는 6.30점이었다.[그림 1] 보통(5점)보다 조금 더 만족에 가깝다. 2013년 6.97점보단 낮지만, 2017년 5.99점, 2019년 6.19점에 비하면 소폭 상승했다. 그러나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앙상한 현실이 드러난다.

직업 환경 요인에 대한 만족도를 5점 척도로 물어본 결과, 기자들이 보통 이상으로 만족하는 요인은 ‘업무 자율성’(3.51점)뿐이었다. ‘직업의 안정성’(2.99점), ‘업무 강도’(2.93점), ‘승진 가능성’(2.89점), ‘전문성 계발 기회’(2.78점), ‘보수’(2.74점), ‘후생/복지’(2.62점), ‘직업의 성장 가능성’(2.55점), ‘노후 준비’(2.22점) 등에서 모두 보통 이하였다.[그림 2] 특히 신문사와 인터넷 언론사 기자는 ‘보수’나 ‘직업 안정성’ 측면에서 만족도가 매우 낮았다. ‘직업의 성장 가능성’은 모든 매체 유형의 기자들이 낮게 평가했다.

최근 1~2년간 뉴스룸 내 기자들의 사기는 ‘저하됐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58.5%). 2017년(76.8%), 2019년(62.9%) 조사보다 ‘저하됐다’는 응답 비율이 줄고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사기가 저하됐다는 평가가 줄었다 하더라도 정말 상황이 나아진 결과라 단정하긴 어렵다. 기자들이 만성화된 위기에 익숙해지거나 눈높이가 낮아진 탓일 수도 있다.
5점 척도(1점 ‘매우 저하됐다’~5점 ‘매우 상승했다’)로 뉴스룸의 사기 변화를 평가했을 때도 2.42점을 기록해 보통(3점)에는 미치지 못했다.[그림 3] 뉴스룸 내 사기 저하의 원인으로는 ‘언론인으로서의 비전 부재’(58.0%)가 가장 많았고, ‘낮은 임금과 복지’(51.4%), ‘업무를 통한 성취감 및 만족감 부재’(39.9%), ‘언론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 하락’(35.6%), ‘과중한 업무량과 업무 강도’(32.2%)가 뒤를 이었다(복수응답).
[그림 3] 연도별 편집국·보도국 기자의 사기 변화 추이
과중한 업무량, 열악한 근무 환경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무언가를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기자들은 그 힘든 일을 요구받고 있다. 매일 써야 하는 기사량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데, 기사를 빠르게 처리하면서 교차 검증과 기획·심층 취재도 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만족하기 어려운 수준의 기사를 출고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신문사, 인터넷 언론사, 뉴스통신사 기자들은 일주일에 지면 기사를 평균 13.7건, 온라인용 기사를 10.8건 작성했다.[그림 4] 방송사 기자들은 온라인을 포함해 일주일 평균 14.9건의 기사를 작성했다.[그림 5] 꼼꼼한 취재를 거쳐 제대로 된 기사를 써내기엔 무척 부담스러운 양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지만, 여전히 노동 강도는 만만치 않다.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은 535.0분으로 많이 줄었지만(2013년 638.4분),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에도 신규 인력이 보강되거나 업무량이 줄어들진 않았다는 응답이 많았다.
[그림 4] 일주일 평균 기사 작성 건수(신문사·인터넷 언론사·뉴스통신사)

언론사 내부 시스템에 대한 불만도 컸다. 5점 척도로 평가하도록 한 질문에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3.04점), ‘타 부서와의 협력이 잘 이뤄진다’(2.99점), ‘취재 지원이 잘 된다’(2.95점), ‘정보 공유가 잘 된다’(2.84점), ‘정보가 잘 축적돼 있다’(2.83점) 등 거의 모든 항목에서 각박한 평가를 했다. 취재·보도를 위한 소통과 협업조차 실패하고 있는 뉴스룸의 민낯이다.
지난 1년 동안 취재 보도로 인해 취재원, 취재 대상 또는 독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31.4%가 ‘있다’고 답했다.[그림 6] 30대 이하의 기자들이 56.2%를 차지했다. 괴롭힘의 유형으로는 ‘전화, 문자, 메신저, 이메일 등을 통한 괴롭힘’이 73.1%로 가장 많았고, ‘웹사이트 악성 댓글(비방, 욕설 등)’(53.6%), ‘악의적인 고소, 고발’(25.4%) 등의 순이었다. 49.3%는 언론인에 대한 괴롭힘이 ‘심각하다’고 답했으며 ‘심각하지 않다’는 응답은 14.4%에 불과했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뉴스룸의 후진성도 기자들을 숨 막히게 만드는 요인이다. 언론 전반에 성 평등이 갖춰진 정도를 평가한 결과, 5점 척도에서 2.96점으로 보통(3점) 수준에 다소 못 미쳤다. 흥미로운 점은 여성(2.40점)과 남성(3.22점)의 평가 간에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인사에서의 성 불평등’(2.88점), ‘성차별적인 조직문화’(2.83점), ‘상사, 동료로부터의 성폭력’(2.46점) 등이 중요한 문제로 지적됐다.[표 2]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기자들은 직무 소진을 경험하거나 이직을 고민하게 된다. 5점 척도로 물었을 때 ‘나는 업무로 인해 완전히 탈진되었다고 느낀다’(3.27점), ‘나는 기자로서 하는 일에 점점 회의가 든다’(3.17점)는 항목 모두 보통(3점) 수준을 넘겼다. 응답자의 72.7%는 ‘이직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그림 7] 타 언론사(21.9%)로 옮기려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학·연구직(12.8%), 정부 및 공공기관12.4%), 법조인·회계사 등 전문직(11.9%), 일반기업(9.8%), 창업(8.3%) 등 아예 언론계를 떠나려는 이들이 더 많았다.

언론인의 위기는 언론의 위기다
<2021 한국의 언론인 : 제15회 언론인 조사>의 여러 항목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젊은 기자들의 고통과 불만이다. 대체로 선배 세대보다 후배 세대의 평가가 더 부정적이었다. 20~30대 기자들은 직업 만족도와 뉴스룸 내부 사기 변화, 언론 자유도에 대한 진단 등에서 상대적으로 엄격했다. 뉴스룸 내부 소통과 협업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나 성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도 더 컸다. 정서적 소진과 냉소주의도 젊은 세대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현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뛰어야 할 기자들이 지쳐 있다는 뜻이다. 언론계 내부에서 10년 차 이하 평기자들의 이직 러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 지도 여러 해 됐다. 젊고 유능한 기자들의 이탈은 언론사 조직의 손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취재 인력 감소, 취재원과 노하우의 유실은 결과적으로 저널리즘 전반의 위축을 초래한다. 기자들의 직무 환경과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대책이 필요한 건 ‘언론인의 위기’가 이내 ‘언론의 위기’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변화는 언론사 조직의 적극적 대응이다. 기자들의 삶의 질을 바꾸기 위해선 먼저 언론사가 바뀌어야 한다. 그간 언론사는 기자들의 직무상 고충이나 심적 고통에 관심이 없었다. ‘기자는 강해져야 하므로’ 어떠한 어려움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고 여겼다. 노동력을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로 삼는 업종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무책임한 인사관리였다.
그간 취재·보도 과정에서의 괴롭힘에 대한 언론사 조직 차원의 지원이나 대응이 거의 없었던 이유는 이런 안일한 인사관리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기자 중 67.1%는 ‘무시하고 대처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바꿔 말하면 혼자서 감내했다는 얘기다. ‘동료 또는 선배와 상의하였다’는 36.8%였고, ‘사내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였다’, ‘법적인 조치를 하였다’는 각각 18.5%, 8.1%에 불과했다. 괴롭힘과 관련해 소속 언론사로부터 도움 받은 경우도 20.3%뿐이었다.
앞으로 당분간 기자들에 대한 괴롭힘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언론사 조직이 직무 과정에서 괴롭힘을 당한 기자들에게 법률적·정신적 차원의 체계적 지원을 해주는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온·오프라인에서 괴롭힘 당한 시점에 지혜롭게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마련해 기자들에게 공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언론사 조직이 할 일은 이 밖에도 많다. 직무 소진, 취재 과정에서의 트라우마 등 정신적 고통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뉴스룸 내부 소통 시스템을 수평적으로 개선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제고하는 등 조직 문화 전반의 혁신이 필요하다. 일 많이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는 사라져야 한다. 과중한 노동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인력 충원도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언론사만 바뀐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시민사회의 몫도 있다. 좋은 저널리즘을 위해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기자들의 노력이지만, 시민들도 나름의 역할을 갖는다. <2021 한국의 언론인 : 제15회 언론인 조사> 결과는 기자들이 열악한 조건에서 노동의 의미를 존중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으며, 때로는 인권마저 침해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민사회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 아래 언론인에 대한 비이성적 증오와 저주를 멈추고 건강한 언론 개혁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