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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언론인이 된 후 사적 공간인 SNS에서도 신중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요즘 SNS나 유튜브를 통해 개인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독자들과 소통하는 기자들도 많이 보는데요. 언론인 개인의 SNS 발언도 공적 책임의 영역으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개인적 공간이므로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해도 될까요?
익명의 기자
A.
기자들을 괴롭히는 고민이 대체로 그렇듯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언론인의 의사 표현은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관한 명쾌한 정답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이나 저널리즘의 역할을 보는 시각에 따라 입장이 갈릴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이 글도 언론인 각자가 판단하는 데 참고할 만한 하나의 의견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SNS상 정치적 표현은 최대한 자제해야
SNS는 기자에게 ‘인생의 낭비’일까요? 레거시 미디어의 기자는 유튜브와 무조건 거리를 두는 게 현명할까요? 꼭 그렇진 않을 겁니다. 잘 아시다시피 SNS와 유튜브를 유익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기자들도 많습니다. SNS와 유튜브는 오늘날 대중이 뉴스를 소비하는 주요한 플랫폼입니다. 뉴스 소비자들이 거기에 있다면 뉴스 생산자들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SNS는 기사를 전달하는 보완적 채널만이 아닙니다. SNS를 통해 기자는 머릿속에서만 상상해 왔던 독자·시청자들과 만나 비로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습니다. 기자는 수용자들과 접점을 갖고 소통하면서 그들의 눈높이와 관심사를 알게 되고, 기사의 의도와 의미를 더 친절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제 기자가 기사로만 말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요컨대 기자라 해서 SNS 활동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언론이 불신의 대상이 된 시대에 SNS는 언론인과 수용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지렛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인의 SNS 이용이 순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이 있습니다. 정치적 의견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입니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향하는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가 SNS상에서 지지하는 정당을 드러내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논쟁적 이슈에 대해 찬반을 공개적으로 밝힌다면, 당파적 성격이 강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특정 정파에 편향적인 입장을 드러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본인이 쓴 기사는 말할 것도 없고, 소속 언론사 전체 기사의 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위험성이 높습니다.
일반 시민은 기자가 SNS에 쓴 글을 개인적 의견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자 본인은 사적 공간에 쓴 글로서 ‘개인 의견일 뿐 회사 입장과 무관’하다고 강조하겠지만, 대중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글의 내용과 언론사의 정치적 입장을 연결 짓기 마련입니다. 정치적 양극화와 진영 논리가 지배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런 글은 소속 언론사의 신뢰도에 상처를 낼 수 있습니다.
SNS상의 글쓰기는 업무와 무관한 사생활일 뿐이며 공식적 기사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작성한다고 주장해도 소용없습니다. SNS 글을 본 시민들은 기자의 정치 성향이 기사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쳤거나 앞으로 그럴 거라는 의심을 품게 됩니다. 더욱이 특정 기사나 언론을 나쁘게 보거나 흠집을 낼 ‘마음의 준비’를 마친 이들에게 이런 글은 좋은 빌미를 제공합니다.
기자가 SNS에서 하는 얘기를 많은 이들이 귀담아듣는 걸 순전히 개인의 글솜씨 때문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소속 언론사의 명성과 언론인이라는 직업이 갖는 사회적 권위에 힘입은 덕분이 클 겁니다. 조직과 업계의 후광을 등에 업고 SNS를 이용하면서 결과적으로 소속 언론사와 동료 언론인들의 신뢰에 금을 가게 하는 건 도의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조심해야 할 정치적 의견, 기준은?
기자 개인적으로도 SNS상에서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는 건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습니다. 요즘엔 정치적 입장을 선명하게 밝히는 언론인을 ‘참기자’로 떠받드는 이들도 있긴 합니다. SNS를 잘 활용하면 기자 개개인을 브랜드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언론의 역할과 본분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언론인이라면 잠깐의 환호에 흔들려선 안 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언론인은 정치인이나 시민운동가가 아닙니다. 기자가 대중에게 전달해야 하는 건 자신의 머릿속 주장이 아니라 취재로 밝혀낸 사실(fact)입니다. ‘스타 기자’로서 주목받기 위해 애쓸 시간에 열심히 사실을 수집하고 취재 분야에서 전문성을 갈고 닦는 게 더 중요합니다. 특정 진영에 경도된 기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일부 정보원에 대한 취재에 제약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판사가 SNS에 정치적 의견을 담은 글을 적었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지요. 평소 아무리 공정하게 판결했다 하더라도 이런 일이 세간에 알려지면 이 판사가 진행한 재판의 공정성이 의심받게 됩니다. 그래서 법관은 실제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것 못지않게 공정하게 ‘보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인간인 이상 가치 편향이 없을 수 없지만, 그러한 편향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언행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기자도 판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실제 공정한 보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보이고’ 공정하다는 ‘믿음을 주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언론에 대한 불신이 나날이 확산하는 상황에서는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하거나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기자들이 SNS에서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졌습니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하는 SNS의 속성을 고려해 늘 말의 무게를 생각하며 언론인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해야 할 정치적 의사 표현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언론학자 할린(D. Hallin)의 이론을 SNS에 적용해 보면 됩니다. 할린은 보도의 영역을 세 가지로 구분하며 영역마다 공정성의 기준이 달리 적용된다고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공정성이 엄격하게 요구되는 건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합법적 논쟁(legitimate controversy)의 영역입니다. 언론인들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공유하는 합의(consensus)와 일탈(deviance)의 영역에서는 공정성의 시비로부터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할린의 말대로라면 독도가 한국 땅이고 전쟁을 막아야 하며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는 SNS에서 자유롭게 해도 상관없습니다. 물론 특정 이슈가 합의의 영역에 속하는지, 논쟁의 영역에 속하는지를 두고 판단이 애매한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만, 이 기준을 떠올린다면 웬만한 이슈에 대응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듯합니다.
한국에서도 여러 언론사가 내부적으로 SNS 활용 수칙을 규정해 놓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기자는 많지 않습니다. 정치적 의사 표현을 강력히 제한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소속 기자들에게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BBC, 로이터 등 서구 언론과 비교하면 형식적 차원의 권고에 그치는 것 같습니다. 준칙이 조금 더 엄격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지혜롭고 유익한 SNS 이용을 위하여
언론인에게도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SNS는 온전한 사적 공간이 아닙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메시지가 전파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연성을 갖는 SNS는 공(公)과 사(私)가 교묘히 뒤섞여 있는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공간입니다. 사적 영역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공적 영역의 성격도 갖는 곳이지요.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에게 공적 성격을 갖는 공간에서 신중한 발언을 요구하는 건 결코 과도한 제약이 아닙니다. 기자가 아니더라도 조직에 속한 직업인이라면 이 정도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SNS를 아예 쓰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행하며, 맛집에서, 가족들과 찍은 사진을 올리거나 지인들과 안부를 주고받는 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사연을 보내주신 분은 언론인이 된 뒤 SNS를 이용할 때 ‘압박감’을 느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압박감’이 매우 건강한 긴장감이라 생각합니다. 언론인이 지켜야 할 윤리와 규범은 대체로 모호하고 느슨합니다. 일률적으로 금지하거나 통제하면 부작용이 더 큽니다. 그러므로 개별 언론인들이 항상 긴장감을 유지하며 자신의 행동을 반추하고 성찰하는 예민한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트레스를 피하려 지금 느끼는 압박감을 애써 지워버리지만 않으신다면, SNS를 충분히 지혜롭고 유익하게 활용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