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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유럽 언론과 러시아의 프레임 전쟁과 정보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특히 독일과 러시아의 국영방송은 전쟁 이전부터 갈등하며 전초전을 치렀다. 3월 17일 기준 현재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서는 공식적으로 러시아 국영방송을 접할 수 없다. 러시아에서도 독일의 국영방송을 접할 수 없다. 방송뿐 아니라 온라인 웹사이트 접근까지 차단됐다. 유럽이 먼저 러시아의 선전 방송을 차단하는 결정을 내린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우크라이나 전쟁 둘러싼 미디어 전쟁
3월 2일 유럽연합(EU)은 러시아 국영방송 RT(Russia Today)와 러시아 통신사 스푸트니크(Sputnik)의 유럽 내 송출과 배포를 금지했다. 방송뿐 아니라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전송도 금지되며 라이센스 및 배포 계약 등도 일시 중단됐다. 러시아 정부가 이 채널을 통해 허위·조작 정보를 배포한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는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규정했다.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러시아인과 친러 독립 정부를 보호하고 우크라이나를 탈 나치화하려는 게 명분이다. 러시아는 RT를 포함한 자국 미디어를 통해 이러한 프레임을 계속 퍼뜨리고 있다. 러시아 미디어감독기관은 지난 2월 말 러시아 매체에 러시아 군사작전을 ‘공격’, ‘침공’, ‘선전포고’로 규정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를 지키지 않은 러시아 독립 방송 채널 도쉬트(Doschd)와 라디오 채널 모스크바 에코(Ekho Moskvy)는 폐쇄됐다. RT는 다국어 채널을 통해서 러시아의 군사작전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서방 미디어의 이중잣대를 비판하는 보도 등을 이어갔다.
지난 24일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명백한 러시아의 ‘침공’, ‘침략’으로 규정하고, 제재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유럽과는 입장이 완전히 다른 셈이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장은 “전쟁 시기에는 언어가 중요하다. 우리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에 대한 끔찍한 공격에 관한 대규모 선전과 허위 정보(Disinformation)에 노출돼 있다”면서 “러시아의 나팔수들이 푸틴의 전쟁을 정당화하고 유럽연합을 분열시키기 위해 해로운 거짓말을 퍼뜨리는 것을 더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1) 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셉 보렐(Josep Borrell) EU 외교안보 대표는 “러시아에 의해 조직된 체계적인 정보 조작과 허위 정보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러시아의 공격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이는 유럽연합의 공공질서와 안보에 직접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위협을 주고 있다. 따라서 푸틴의 선전 캠페인에 반대하는 중요한 조치를 취하며, EU에서 러시아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미디어를 차단한다”고 덧붙였다. EU는 동시에 러시아 정부의 독립 언론 탄압을 비판하며 ‘정보의 자유로운 접근은 기본권으로 전 세계적으로 언론의 자유와 다원주의를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T는 EU의 결정 이후 온라인 방송을 중단하고 웹사이트 뉴스 서비스는 계속 운영했지만, 이틀 뒤인 3월 4일 웹사이트 접속까지 전면 차단됐다.

언론 활동 억압 우려 논란도
EU가 러시아 국영방송 접근을 차단하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EU 조치에 대응하는 러시아의 상응 조치가 어떠할지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경없는기자회(RSF) 독일지부는 “러시아 국영방송 RT와 스푸트니크는 푸틴의 선전에 핵심적인 요소이며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의 중요한 부분”이라면서도 EU 결정에는 비판적인 의견을 밝혔다. EU의 차단 조치가 의도하는 효과보다 부정적인 효과가 더욱 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크리스티안 미르(Christian Mihr) 독일지부 대표는 “두 매체가 유럽의 여론 형성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이에 대응해 러시아가 취할 대응 조치는 러시아의 독립 언론을 더욱 어렵게 하고 심지어 독립 언론의 기능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EU의 조치가 러시아를 자극해 자국 내 언론 환경을 더욱 억압할 수 있다는 뜻이다.
EU 조치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은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러시아는 즉각 자국 내 독일 국영방송인 도이체벨레(Deutsche Welle)와 BBC 등 서방 언론 접속을 완전히 차단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3월 4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허위 정보를 보도하는 기자에게 최대 15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러시아의 ‘군사작전’을 ‘전쟁’으로 규정해서는 안 되며 러시아 군사 및 군대에 대한 허위 정보, 러시아 제재를 촉구하는 뉴스도 포함된다. 이러한 법률안이 제정되자 독일 공영방송 ZDF, ARD 기자들은 모스크바 현지 취재를 일시 중단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자국 내 언론 차단에 대한 빌미를 유럽이 만들어 준 셈이다.
독일 일간지 디벨트(Die Welt) 기자인 데니츠 위셀(Deniz Y cel)도 EU의 차단 조치를 비판했다. 스스로 다른 매체를 차단하고 금지하면서 정작 러시아의 언론 탄압을 비판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다. 이러한 조치는 대내외적인 신뢰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우려했다. 위셀은 EU의 미디어 제재가 “가스나 석유, 루블화, 유로 등 지금 당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간과할 수 없는 것, 바로 신뢰성이라는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2) 고 밝혔다. 또한 “왜 시민들은 러시아 관점을 원본 출처로부터 읽고 들을 수 없는가? 그 말은 우리 시민들의 지성과 영혼에 대한 엄청난 불신을 뜻하는 건 아닌가? 많은 이들이 러시아의 선전에 빠져든다고 해도, 자유주의 사회의 힘은 어떤 쓰레기도 견딜 수 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까지 터키 정부의 언론 탄압으로 수감 생활을 했던 기자로, 발언의 무게가 더욱 무거웠다.
러시아 내 활동 제한된 독일 언론
EU와 러시아의 차단 조치에 앞서 독일과 러시아 국영방송 간에는 이미 전초전이 벌어졌다. 지난 2월 1일 독일 미디어청의 허가감독위원회(ZAK)가 RT 독일어 방송 송출을 금지3)하면서다. 방송 허가가 없다는 이유였다.
RT는 지난해 12월 베를린에 지사를 내고 독일어 서비스인 RT DE를 시작했다. RT는 독일이나 유럽에서 방송 허가를 받지 않았으나, 세르비아에서 받은 라이센스가 유럽 전체에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입장은 달랐다. 독일 내에서 독일어로 제작되는 방송은 독일 관청의 방송 허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일의 결정에 러시아는 즉각 반응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모스크바에 있는 독일 국영방송 도이체벨레의 송출을 금지하고 사무실도 폐쇄했다. 기자와 촬영팀, 기술직 등 직원 19명의 언론 활동 승인을 취소했다. 러시아는 도이체벨레 측에 보낸 메일에서 ‘RT DE 송출을 금지한 독일의 결정에 대한 보복 조치’라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독일은 독일 국영방송과 러시아 국영방송은 다르다며 비판했다. 독일기자협회(DJV)는 러시아 국영방송과 도이체벨레를 비교하는 것은 “사과와 배를 비교하는 것”4)이라고 표현했다. 두 방송국 모두 100% 정부 재정(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영방송으로 외국인 시청자를 타깃으로 시작한 채널인 점은 동일하다. 하지만 도이체벨레는 법적 기구인 방송위원회로부터 통제를 받으며, 방송 프로그램의 독립성과 언론 자유가 보장된다. 국가가 통제하는 러시아 선전의 일부인 RT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게 독일의 입장이다. RT는 러시아 매체를 통해 ‘서방과의 정보 전쟁’을 벌인다고 스스로 밝혔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또한 RT가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5)고 말했다.

도이체벨레 방송위원회 위원장인 카를 위스텐(Karl J sten)은 “언론 자유에 대한 믿을 수 없는 공격을 경험한다”면서 “도이체벨레 사무실 폐쇄 및 승인 철회 결정을 즉시 취소할 것”6)을 요구했다. 또한 “RT DE와는 달리 도이체벨레는 정부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도이체벨레는 “러시아 정부의 터무니없는 조치에 전면적으로 반대하며, 발표된 조치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 조치가 공식적으로 전달될 때까지 우리는 모스크바 사무실에서 보도를 이어갈 것이다. 결국 (방송국을) 폐쇄해야 할지라도 우리의 러시아 관련 보도는 제한되지 않을 것이다. 보도는 오히려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갈등은 원래 미디어법적인 사안이었다. 독일에서 방송 허가를 신청하면 되지만, RT DE는 애초에 독일 내 방송허가를 받을 수 없는 방송이었다. 독일 정부와 외국의 국가 기관은 독일에서 방송 허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RT DE가 애초에 독일 방송 허가를 신청하지 않았던 이유다. RT DE는 대신 룩셈부르크에서 방송 허가를 받으려고 했지만 받지 못했다. 이처럼 독일은 미디어법적 결정을 내린 것이지만, 러시아는 정치적 조치로 대응한 것이다.
독일의 정당한 항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도이체벨레의 모스크바 사무실은 결국 운영이 어려워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서방 언론 매체와 언론인들의 활동은 전면 제한됐다. 독일 내에서도 제기됐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매체를 차단했지만 고도화된 디지털 환경에서 완전한 차단은 불가능하다. RT DE는 IP우회나 텔레그램, 제3의 영상 플랫폼 등 우회 경로를
통해서 유럽 내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공식적 경로 없이 이뤄지는 정보 소통은 더욱 폐쇄적이고 편향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정보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 <Ukraine Sanktionen gegen die vom Kreml unterstützte Medien Russia Today und Sputnik>, Europäische Kommission, 2022.3.2, https://ec.europa.eu/commission/presscorner/detail/de/ip_22_1490
2) Deniz Yücel, <Propaganda ist kein Journalismus. Aber gleich verbieten?>, Welt, 2022.3.2, https://www.welt.de/debatte/kommentare/article237266409/Verbot-von-Russia-Today-und-Sputnik-Propaganda-ist-kein-Journalismus.html
Michael Borgers, Stephan Weichert, & Sebastian Wellendorf, <EUVerbot von RT und Sputnik „Wir erleben einen Informationskrieg“>, Deutschlandfunk, 2022.3.3, https://www.deutschlandfunk.de/euverbot-rt-de-debatte-reaktionen-100.html
3) ZAK, <Senden ohne Rundfunkl izenz – ZAK untersagt Veranstaltung und Verbreitung des Fernsehprogramms „RT DE“ in Deutschland>, 2022.2.2, https://www.die-medienanstalten.de/service/pressemitteilungen/meldung?tx_news_pi1%5Bnews%5D=5004&cHash=0c9c8c9e12705fce08da37d65bc4b6cd
4) <RT.DE UND DEUTSCHE WELLE: Äpfel sind keine Birnen>, JVBB, 2022.2.4, https://www.djv-berlin.de/startseite/info/news/aktuelles/details/news-aepfel-sind-keine-birnen
5) Max Fischer, <In case you weren’t clear on Russia Today’s relationship to Moscow, Putin clears it up>, The Washington Post, 2013.6.13,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worldviews/wp/2013/06/13/in-case-you-werent-clear-on-russia-todaysrelationship-to-moscow-putin-clears-it-up/Matthias von Hein, <Why Deutsche Welle is not the same as RT>, Deutsche Welle, 2022.2.4, https://www.dw.com/en/whydeutsche-welle-is-not-the-same-as-rt/a-60666432?fbclid=IwAR2klrW7D7VaPtJneRAZG9iapFYPFpovQT5jp5ar9GvVz0ij2BMHAMthfi4
6) <DW – Rundfunkrat und Verwaltungsrat tagen zum Entzug der Akkreditierung in Russland>, Deutsche Welle, 2022.2.7, https:// www.dw.com/de/dw-rundfunkrat-und-verwaltungsrat-tagenzum-entzug-der-akkreditierung-in-russland/a-606877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