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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불가토큰인 NFT는 미디어계의 꾸준한 이슈다. 최근, 뉴스통신사인 AP통신이 자사의 취재 사진을 NFT로 판매하며 화제가 됐다. 언론의 새로운 수익 모델로 NFT가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사물의 역사적인 증언 가치는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복제의 경우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손을 떠나게 되면 사물의 역사적 증언 가치 또한 흔들리게 된다. 물론 이때 이 증언 가치만 흔들릴 뿐이다. 그러나 이로써 흔들리게 되는 것은 사물의 권위다.”1)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21세기 매체 미학을 예견한 탁월한 작품이다. 사진이나 라디오가 뉴미디어였던 시대에 살았던 벤야민은 디지털 복제의 가능성과 한계를 통찰력 있게 분석하고 있다. 벤야민은 이 글에서 “예술 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다”고 단언한다.
세상은 90여 년 전 벤야민이 예견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뛰어난 예술 작품이나 각종 자료들을 원본이나 다름없는 형태로 옮겨놓은 디지털 복제본을 쉽게 소유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디지털 대량 복제가 손쉽게 이뤄지면서 예술 작품이나 자료들의 진품성은 사라지고 겉모양만 유통되고 있다. 벤야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의적 가치는 사라지고 전시적 가치만 남아 있는 상황이 됐다. 대량 복제된 상품은 원본과 같은 형태로 감상할 수는 있지만, 작품 자체의 아우라나 역사적 권위는 담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뉴스 통신사인 AP통신이 이와 같은 디지털 복제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미 있는 작업을 시작했다. AP통신은 지난 1월 31일 블록체인 기술 업체 슈아(Xooa)와 협력해 ‘NFT 마켓플레이스’를 오픈했다. AP 마켓플레이스2)는 대체불가토큰(NFT)을 이용해 방대한 사진 기사를 판매하는 장터다. 이 장터에서는 AP통신이 인정하는 디지털 진본 사진들을 판매하고 있다.
유일한 디지털 진본이란 가치 부여하는 AP 마켓플레이스
대체불가토큰으로 번역되는 NFT는 특정 자산에 대한 소유권과 거래 내역을 블록체인에 저장하고 기록한 디지털 파일이다. NFT는 고유의 값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위변조 우려도 없어 유일한 디지털 진본 인증을 해 줄 수 있다. 무한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상품에 ‘원본성’을 부여해주는 기술인 셈이다.
AP 마켓플레이스는 매주 월·수·금 오후 12시(미국 동부시간 기준)에 판매 대상 사진을 공지한다. 신규 판매 대상 사진 목록은 AP 마켓플레이스의 드롭스(Drops) 코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각 사진의 가격표에는 암호화폐 이더리움(Ethereum)과 달러 기준 가격이 함께 표시돼 있다. 따라서 이용자들은 암호화폐인 이더리움뿐 아니라 비자, 마스터 카드로도 사진을 구매할 수 있다. 우주, 기후, 전쟁 등 다양한 분야 사진들이 판매되며 2주에 한 번은 퓰리처상을 받은 명품 사진들을 판매 목록에 올려놓을 계획이다.3)
특정 언론사가 자사가 보유한 디지털 사진을 판매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특히 사진 원본이 아니라 디지털 복제본을 판매하는 것은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디지털 사진은 굳이 구매하지 않더라도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NFT 기술 덕분에 디지털 원본 개념을 만들어내면서 새로운 장터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방식만으로는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힘들다. AP 마켓플레이스는 NFT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사진의 원본성을 보장하는 차원을 넘어 ‘역사성’과 ‘현장성’까지 덧붙였다. 촬영 장비와 카메라 설정 같은 정보까지도 제공한다. 판매 대상 사진이 어떤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는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사진을 찍은 기자들이 직접 설명해주는 음성 파일도 함께 붙어 있어 촬영 당시 상황과 작품이 갖는 의미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AP통신의 인증을 받은 유일한 디지털 진본이라는 가치와 함께 각종 부가정보까지 담고 있어 소장 가치는 어느 정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NFT 사진을 구매하더라도 해당 디지털 사진의 저작권은 판매자에게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NFT가 판매되더라도 자산 자체에 대한 저작권까지 이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원작자가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구매자에게 소유권만 넘기는 개념이다. 따라서 NFT를 구매하는 것은 캐릭터 카드를 수집하는 것과 비슷하다. 포켓몬스터 카드를 수집한다고 할 때 특정 캐릭터가 그려진 카드만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지, 실제로 그 캐릭터 자체를 소유한다거나 캐릭터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까지 소유하게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4)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AP통신은 NFT 장터에서 각종 디지털 사진 자료를 구매할 경우 몇 가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사진이나 각종 시각 자료를 자유롭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켓플레이스에서 구매한 사진은 자유롭게 출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개인 웹사이트나 소셜미디어에서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마켓플레이스에서 사진을 구매할 경우 해당 사진을 찍은 AP통신 사진 기자들과 소통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AP 마켓플레이스에서 구매한 NFT 상품을 다른 장터에서 다시 판매할 수도 있다. AP통신은 NFT 사진 2차 거래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메타마켓(Metamarkets)을 비롯해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등 저명 거래소들과도 적극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2차 시장에서 거래될 경우 10% 수수료를 받게 된다. 수수료는 블록체인 기술 협력사인 슈아와 나누게 된다.5) 2차 판매를 할 경우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판매와 동시에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기 때문에 개인 페이지에 올렸던 사진은 모두 내려야만 한다.
AP의 NFT 마켓플레이스가 주목받는 이유
언론사가 NFT 사업에 뛰어든 것은 AP통신이 처음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여러 신문, 방송사들이 역사적 의미가 있는 기사나 방송을 판매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해 8월 ‘이건희의 발자취’란 NFT 상품을 선보였다.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 별세 다음날의 특집 지면, 희귀 인터뷰 자료 등이 담긴 이 상품은 약 300만 원에 판매됐다. 영화 전문잡지 《씨네21》 역시 창간호를 NFT 상품으로 기획 판매했으며, MBC도 창사 60주년을 맞아 NFT 판매 플랫폼을 오픈했다.6)
해외 언론사들도 앞다퉈 NFT 상품을 내놨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3월 PNG 파일로 된 칼럼을 NFT 경매에 내놨다. 판매 대상은 기술 칼럼니스트 케빈루스(Kevin Roose)가 쓴 <블록체인에서 이 칼럼을 구입하시라(Buy this column on the blockchain)>란 칼럼이었다. 이 칼럼은 56만 2,000달러(약 6억 9,000만 원)에 판매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외에 온라인 매체 쿼츠, 시사주간지 타임 등 해외 유력 언론사들도 기념이 될 만한 기사나 편집 상품을 NFT로 구성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이처럼 언론사가 NFT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AP통신의 NFT 마켓플레이스는 그동안 여러 언론사들이 시도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기념이 될 만한 기사나 편집, 혹은 방송 같은 것들을 NFT 상품으로 묶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수집 가치가 있는 기념품 판매 방식에 가까웠다.
반면 AP통신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방대한 사진 DB를 순차적으로 판매 대상으로 내놓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1973년 퓰리처 상 수상작으로 교과서에까지 실렸던 ‘베트남 전쟁의 테러(The Terror of War)’ 같은 역사적인 사진뿐 아니라 소소한 사건 현장을 담아낸 AP통신 기자들의 작품까지 함께 판매한다. 또 2차 판매시장을 활성화해서 AP통신 사진의 유통망을 크게 넓힌 점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이 가능한 건 AP통신의 남다른 장점 덕분이다. AP통신은 그 어떤 언론사보다 현장을 담아낸 사진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역사적인 사건이 있는 곳마다 늘 AP통신의 기자가 현장을 지켜온 덕분이다. 다른 언론사보다 유독 AP통신의 NFT 사업에 관심이 쏠리는 건 이런 사정과 관련이 있다. 기념품이나 일회성 상품에 초점이 맞춰졌던 NFT 사업이 일반적인 상품으로 확대될 수 있을지 볼 수 있는 시금석이나 다름없다.
NFT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AP통신 NFT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점치는 건 다소 이르다. 아직은 파일럿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AP통신은 난민들로 가득 들어찬 보트가 지중해에서 표류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NFT 상품으로 판매하려다가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그 사건 직후 AP통신은 “NFT 마켓플레이스는 매우 초기 단계 파일럿 프로그램이다”고 해명했다.7)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AP통신의 NFT 사업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의미 있는 비즈니스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AP통신 역시 이번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오히려 AP통신의 본령인 저널리즘의 가치를 키우는 쪽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AP통신의 NFT 사업은 언론사의 핵심 비즈니스인 저널리즘의 가치를 높이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시금석이 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선 성소라 등이 《NFT 레볼루션》에서 디지털 복제 시대에 NFT가 갖는 가치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있다.
“복사본이 많이 공유될수록 NFT로 기록된 원본의 가치가 커질 수 있다. 마치 내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 많은 숫자의 ‘좋아요’와 함께 이곳저곳에 리트윗될수록 그 글의 가치가 커지는 것처럼 말이다. NFT로 원본이 인증되고 소유권이 증명될 수 있는 한, 작품의 희소성과 충분성의 관계가 꼭 상호배타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8)
AP통신의 NFT 장터도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NFT 판매를 통해 당장 의미 있는 매출을 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기보다는, AP통신 기자들이 발로 뛰면서 만들어낸 사진과 영상 같은 저널리즘 상품을 좀 더 널리 알리는 데 무게가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NFT로 기록된 디지털 원본이 화제가 되면 될수록 AP통신의 사진 저널리즘에 좀 더 많은 관심이 쏠릴 터이기 때문이다. AP 마켓플레
이스와 2차 장터에서 올린 수익은 사진을 찍은 기자와 AP통신 사진 저널리즘 품질 향상에 사용하겠다는 공언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동안 언론사들의 NFT 실험은 주로 기념이 될 만한 사건을 담은 기록물들을 판매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일이긴 하지만,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기엔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반면 AP통신은 방대한 사진과 영상 자료를 순차적으로 계속 판매한다는 점에서 기존 실험에서 한 발 더 나간 측면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AP 마켓플레이스 실험은 언론사들이 NFT를 활용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시금석이 될 것 같다.
1)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길, 105쪽, 2007.
3) https://apmarket.xooa.com/p/faq
4) https://apmarket.xooa.com/p/faq
5) Clark, M., <The Associate Press is star ting its own NFT marketplace for photojournalism>, TheVerge, 2021. 1. 10, https://www.theverge.com/2022/1/10/22876993/associated-press-apnft-marketplace-xooa-blockchain-photo-journalism-funding
6) 최승영, <NFT 사업, 언론사 새 수익 창구 될 수 있을까>, 기자협회보, 2021. 10. 19,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50320
7) 서유근, <뉴욕타임스 칼럼, 6억3000만원에 팔렸다...NFT가 뭐길래>, 조선일보, 2021. 03. 26,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us/2021/03/26/6UOV5C3UFJATPOYLCJEP7BBUJQ/
8) 성소라 외, 《NFT 레볼루션- 현실과 메타버스를 넘나드는 새로운 경제 생태계의 탄생》, 더퀘스트, 36쪽,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