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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상원의회가 지난 3월 29일 프랑스의 ‘미디어 집중 현상’에 관한 분석과 이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32가지 제언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논의가 시작된 지상파 민영방송사 떼에프앙(TF1)과 엠시스(M6)의 합병부터 비벙디(Vivendi)의 라가르데르(Lagard re) 인수에 이르기까지 급속도로 집중되고 있는 프랑스 미디어 산업과 시장에 대해 프랑스 상원의회가 입장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원의회의 입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디어 집중이 가속화되는 시장 상황에서 미디어 다양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 및 규제 기관의 역할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미디어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논의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미디어 집중에 대한 상원의회 문제 제기가 눈길을 끈다.
미디어 산업 집중의 의미
사실 미디어 산업의 집중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며, 프랑스에만 해당하는 일도 아니다. 규모의 경제가 크게 작용하는 미디어 산업의 특성상,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미 40여 년 전부터 줄기차게 지속돼 온 일이다. 그럼에도 2022년 프랑스 상원의회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굵직한 미디어 그룹 간의 인수, 합병 문제들에 주목하며 이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환기시키고 있다. 이는 미디어 집중 현상이 민주주의 사회의 여론 다양성을 해친다는 가장 근본적인 연유에서 비롯됐지만 최근의 집중 현상이 디지털 기술 혁명, 경제적 위기와 맞물려 그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는 까닭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단순히 프랑스 사회의 여론 다양성 감소라는 국내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외 미디어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 문화 다양성 감소라는 문제와 맞닥뜨리면서 미디어 집중을 막는 것이 능사가 아닌 더욱 복잡한
해결책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상원의회는 보고서에서 ‘디지털 혁명’과 세계적 차원의 경제 위기를 오늘날 미디어 산업집중 현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사람들의 정보와 문화 콘텐츠 접근이 이전에 비해 훨씬 쉬워졌다. 콘텐츠 생산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로 인해 다양한 미디어들이 디지털 시청각 미디어로 수렴되고 거대 미디어 플랫폼으로 독점화되는 상황이다. 디지털 기술은 정보와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거나 제작하지 않더라도 플랫폼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 이로 인해 미디어에 따라 불균형한 수익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불균형은 미디어 소비가 거대 플랫폼으로 수렴되는 현상과 함께 미디어 다양성, 여론의 다양성 감소로 이어진다. 예컨대, 언론사가 아닌 검색엔진이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은 언론사처럼 정보 편집자 역할을 하지만 이들에게 규제나 의무 사항은 부과되지 않는다. 또, 알고리즘을 활용해 개인 맞춤형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은 민주적 토론을 방해하고 불투명한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이용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에 광고 역시 디지털 미디어로 쏠림 현상을 보이면서 전통적 미디어들은 점차 어려움을 겪게 된다.
뉴스 이외의 문화 콘텐츠 역시 넷플릭스나 아마존으로 대변되는 OTT 중심 스트리밍 서비스로 수렴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2010년 이래로 프랑스인의 미디어 소비 방식은 주문형 비디오(VOD)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소비 방식 변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화 콘텐츠의 생산·유통과 밀접하게 관련되며 결과적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면서 제작비 투여와 콘텐츠 질 측면에서 경쟁력 차이가 크다. 또한, 넷플릭스나 아마존 등 소수 OTT 플랫폼의 시장 점유율이 증가하고 집중 현상이 일어나면서 콘텐츠의 다양성은 줄어든다는 문제도 피할 수 없다.

주문형 비디오와 스트리밍 서비스로의 미디어 소비 방식의 변화는 문화 다양성 감소와 함께 해외 기업의 손쉬운 침투, 프랑스 미디어 기업이 해외 거대 플랫폼과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전 세계 정보와 문화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에 이르기까지 작동하던 국경의 장벽을 손쉽게 무너뜨렸다. 실제 넷플릭스가 일 년에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는 비용이 유럽 국가들의 전체 제작 투자비를 뛰어넘는 현실 속에서 프랑스에서는 오래전부터 해외 거대 플랫폼에 맞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업을 성장시킬 투자가 필요하며, 프랑스 미디어 전경에서 다양성, 다원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미디어 기업의 인수, 합병과 같은 결합은 대부분 경제적 이유로 이뤄진다. 규모의 경제가 크게 작동하는 미디어 산업에서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미 프랑스에서는 2000년대 이후 경제적 논리로 미디어 기업들의 수평적, 수직적 결합이 지속됐다. 가령, 프랑스에서 2005년 지상파 디지털 방송(TNT)이 시작되면서 기존에 8개에 머물던 채널 수가 30여 개로 급증했다. 그러나 실제 이 채널들은 6개(TF1, Canal+, M6, Altice Media, NRJ Group, Amaury)의 미디어 그룹이 소유하고 있다. 1,021개 FM 상업 라디오 채널 역시 실질적으로는 4개 미디어 그룹(NRJ Group, M6, Lagard re, Altice Media)의 채널들이다(Snat, 2022). 이러한 집중 현상은 신문, 잡지 시장도 별반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최근 미디어 기업 간의 결합은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전통적 미디어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돼 일어났다는 점에서 과거의 결합과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미디어 생산과 소비의 변화는 겉으로 드러나는 시청각 미디어 채널이나 언론사 수와 상관없이 수평적, 수직적 결합이 지속되면서 소수의 미디어 기업으로 수렴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논의가 시작된 떼에프앙(TF1)과 엠시스(M6)의 합병은 이를 뒷받침한다. 지상파 민영 채널의 합병은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 소비 확산으로 인한 지상파 채널의 경쟁력 약화와 그로 인한 광고 수익 급감이라는 현실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한 미디어 다양성 차원의 예상 결과는 처참하다. 상원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두 지상파 민영 채널의 합병으로 인해 이들이 전체 텔레비전에서 차지하는 시청 점유율은 무려 45%에 이르고, 광고 시장 점유율은 7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상원의회는 경제적 위기가 방송 채널이나 시청각 미디어뿐만 아니라 언론사에도 재정적 어려움을 줘 언론인 수를 줄이고 언론인들이 경제적 압박을 느끼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경제적 이유로 크고 작은 언론사들의 인수, 합병이 이뤄지면서 언론사들은 대개 몸집을 줄여 편입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줄어든 인원만큼 미디어 그룹 내 편집부 간 상호 지원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시너지가 발생하고 수익성은 높아지지만 같은 그룹 내 언론사들의 논조가 일치 또는 유사해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편집부 내 인력 감소로 통신사 기사나 그룹 내 타 언론사 뉴스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 또한 정보의 다원성 및 다양성을 줄이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경제적 논리에 따라 미디어 집중도가 높아지고 이것이 정보나 문화적 다양성 감소에 영향을 주며, 미디어 신뢰도를 낮추는 악순환으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2022년 미디어 신뢰도에 관한 칸타르 여론조사에 따르면 63%의 응답자가 ‘언론인이 정치적 압력에 저항할 수 없다’고 답했고, 59%의 응답자가 ‘언론인이 경제적 압력에 저항할 수 없을 것이다’고 답해, 언론인들의 정치, 경제적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Kantar, 2022).
독립성 보장 통한 미디어 다양성 실현
결국 미디어 산업의 집중화 현상은 정보와 문화의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여론의 다양성 감소와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부정적인 현상일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이러한 문제를 소유 규제를 통해 해결했다. 그러나, 경쟁 구도가 국내에 머물지 않는 오늘날의 상황은 이보다 복잡한 해결책을 요구한다. 즉, 국내 미디어 다양성을 위해서는 소유 규제가 필요한 반면, 구글, 넷플릭스 등으로 대변되는 글로벌 미디어 기업에 대항하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미디어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딜레마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떼에프앙(TF1)과 엠시스(M6)의 합병 논의에서 가장 많이 언급됐던 것 역시 민영 채널 방송사가 합병하면 넷플릭스와 대항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는 합병의 시장 영향성에 대해 평가를 한 후 합병 허가를 결정할 경쟁위원회(L'Autoritde la concurrence)나 시청각미디어규제청(Arcom)의 판단에도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상원의회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에 대한 적절한 제도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동시에 규제를 강화할 수도 완화할 수도 없는 현실을 고려해 각 미디어들이 소속돼 있는 그룹의 영향력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며 새로운 미디어와 전통적 미디어 간에 발생하는 수익을 적절히 배분해 균형을 모색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상원의회의 제안은 무려 32가지나 되는데, 이는 미디어 기업 내의 자율적 노력, 커뮤니케이션 자유와 미디어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규제 기관의 권한 강화, 규제 기관의 역할과 미디어 독립성 보장을 뒷받침하는 법률적 제도의 보완과 적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즉, 경제적 권력으로부터의 미디어의 독립성 강화를 통해 미디어 다양성을 실현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상원의회는 미디어 소유의 다양성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할 때, 미디어 편집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미디어 기업의 자율적 노력을 제안했다. 자율적 노력의 일환으로 하나 이상의 미디어를 소유한 그룹의 경우 이사회 안에 독립적인 이사직을 마련하고 미디어 편집권의 독립성과 이해충돌에 관한 문제를 모니터링하는 기능을 위임할 것을 권고했다. 또, 미디어 기업별로 윤리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역할을 하는 윤리위원회가 될 수 있도록 위원회에 언론인과 실무 제작진을 포함하고, 이들의 활동을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함으로써 그룹 내외적으로 진정한 가시성을 보장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독립적 이사와 윤리위원회의 활동은 시청각미디어규제청과 협력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도록 하였다. 또한, 미디어 그룹 내 여러 미디어 회사들의 이해충돌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고,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프랑스민간기업협회(AFEP, Association française des entreprises prives)와 프랑스기업인연합(MEDEF, Mouvement des Entreprises de France)이 이러한 내용을 문서화하는 방식을 통해 기업지배구조 준칙을 개정하도록 협조할 것을 권고했다. 이는 미디어의 독립성을 감시하고 규제할 수 있는 규제기관의 역할과 권한을 강화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상원의회는 올 초, 시청각 미디어 규제기관으로 새롭게 재편된 시청각미디어규제청이 필요한 경우 제재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규제청이 매년 시청각미디어 기업에 관한 소유와 지분율 등의 정보를 게시할 수 있도록 미디어 기업에 대해 5% 이상의 지분을 직간접적으로 소유한 주주들은 규제청에 해당 내용을 신고할 의무를 부여할 것을 제안했다. 또, 규제청은 4년마다 미디어 집중에 관한 실태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할 것을 권고했다.
규제 기관의 역할과 미디어 독립성 보장을 뒷받침하는 법률적 제도의 보완과 적용은 여러 갈래로 제안이 이뤄졌다. 첫째, 방송법 개혁을 제안했다. 앞서 규제 기관의 역할과 권한 강화는 규제청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는 방송법의 개정이 불가피하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 분야별로 상이하게 적용되는 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같은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는 현재의 미디어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송법 개정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와 관련해 상원의회는 의회 차원의 방송법 개혁을 위한 대토론회 개최를 제안했다. 둘째,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 간의 공존을 통해 미디어 다양성을 모색할 수 있도록 수익 배분에 관한 제도 마련과 적용을 제안했다. 예컨대, 언론사의 경제적 균형과 안정을 위해 저작인접권에 관한 법률을 조속히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역시 시청각미디어규제청이 플랫폼과 언론사 간 수익률 조정 등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또, 스포츠 중계방송 재전송과 관련해 방송 채널과 디지털 플랫폼 간의 저작권 및 수익 문제 균형 회복을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을 권고했다. 셋째, 언론사 독립성을 위한 제도 정비에 관한 내용을 제시했다.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며 편집권의 독립을 독려할 수 있도록 언론사 지원 제도 재정비를 권고하고, 언론인이나 제작진이 정치적, 경제적 압박에 저항할 수 있도록 단체 활동을 더욱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가령, 기자협회(SDJ, Les soci t s desjournalistes) 협회장 교체와 해임이 자의적으로 이뤄지지 않도록, 단체 차원의 동의가 있을 때만 허용한다거나, 주주에 의해 미디어 기업의 편집장 교체가 고려되는 경우 일정 기한 내 편집부의 합리적이고 입증 가능한 정보를 보장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언론인들의 경제적 의존도를 낮출 수 있도록 통신사에서 일하는 언론인들에게 권리와 의무 조항과 관련해 다른 언론사 언론인들과 동일한 권한을 부여할 것을 제안했다. 넷째, 뉴스 및 정보 콘텐츠와 관련해 디지털 미디어의 힘이 강력해지는 것을 견제할 수 있도록 방송사들로 하여금 텔레비전 뉴스에 대한 최소한의 투자를 의무화하고 방송 토론에서 관점과 감성의 다양성 존중을 권고했으며, 공영방송사의 지속가능한 재정을 보장함으로써 공영방송사의 독립성을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미디어 집중 문제 개선 목적으로 미디어 독립성 보장에서 실마리를 찾는 프랑스 상원의회의 제안은 프랑스 미디어 산업과 시장 상황에 맞춘 내용들이란 점에서 우리에게 적용 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프랑스 상원의회의 미디어 다양성 및 독립성 보장을 위한 보고서는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미디어 산업과 시장의 상황, 그리고 미디어 다양성 및 독립성 논의가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전 세계 미디어 시장에서의 경쟁력과 다양성 보장 사이의 균형을 맞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