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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프랑스 대선이 끝나고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이 재임에 성공했다. 이번 대선에서 접전을 벌인 마크롱 대통령과 극우정당 후보 마린 르 펜(Marine Le Pen)이 미디어와 관련해 공통으로 제시한 공약이 TV 수신료 폐지였다. 정치적 성향이 다름에도 이 두 후보가 TV 수신료 폐지를 동일하게 약속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 공영방송을 민영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르펜 후보에게 공영 미디어의 예산을 위해 책정된 세금으로서 TV 수신료 폐지는 당연한 것이다. 이에 비해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의 구매력 보호를 수신료 폐지의 이유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결과는 같지만, 그 이유는 사뭇 달랐다. 이유가 다른 것과 별개로 대선 승리자가 누가 되든 프랑스의 TV 수신료 폐지가 기정사실로 된 것이 더 중요한 일일 것이다. 전망과 다르지 않게 마크롱 대통령의 재임이 결정되면서 프랑스 정부는 지난 5월 11일, TV 수신료 폐지를 전격 발표했다. 이로써 1933년부터 시작된 공영미디어 수신료 제도가 막을 내리게 됐다. 이로써 프랑스의 수신료 폐지는 2028년까지 BBC 수신료 완전 폐지를 목표로 하는 영국보다 앞서 이뤄지게 되었다. 또, 프랑스는 루마니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에 이어 수신료를 폐지한 유럽 국가 중 하나가 됐다.
TV 수신료 폐지 결정
제2기 마크롱 정부의 공영 미디어 수신료 폐지 결정에 따라 2022년도부터 TV 수신기를 보유하고 있는 가정은 연 138유로(약 18만 5,000원)의 TV 수신료 납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국민들로서는 세금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겠지만, 공영 미디어들은 재정적으로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큰 부담을 떠안게 된 것이다. 그동안 공영 미디어 수신료는 공영방송사 프랑스텔레비지옹(France T l visions), 프랑스·독일 공동 TV 채널인 아르떼(Arte-France), 라디오 공영방송사 라디오프랑스(Radio France), 국제방송 프랑스메디아몽드(France Media Monde), 프랑코포니 국제방송 떼베생크몽드(TV5Monde), 국립시청각센터(INA, Institut national de l'audiovisuel)에 배분돼 왔다.
전술했듯이 마크롱 정부의 TV 수신료 폐지는 에너지 가격 및 물가 상승에 따라 국민의 구매력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TV 수신료 폐지와 함께 연료 구매에 대한 리터당 15센트 할인, 저소득층에게 제공되는 식품바우처, 민간 부문 사회보장세 면제, 공무원 연봉 지수 가치 확대 등 다양한 구매력 보호 정책들을 발표했다. 즉, 프랑스에서 TV 수신료 폐지는 일종의 세금 폐지 혜택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프랑스에서 TV 수신료는 시청료 개념이 아니라 매년 주민세(taxe d’habitation)와 함께 부과되는 세금이었다. 2009년 방송법이 개정되면서 그 명칭도 공공시설에 대한 사용료를 의미하는 ‘redevance audiovisuelle’에서 세금을 뜻하는 ‘contribution l’audiovisuel public’으로 변경된 바 있다. 세금이라는 점에서 소득에 따라 수신료 감면 혜택도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는 2023년 완전 폐지를 목표로 2018년부터 소득에 따라 주민세를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있다. 주민세 폐지 역시 TV 수신료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TV 수신료만 징수하기 위해 드는 비용과 노력이 비효율적이라며 TV 수신료 폐지를 주장하는 것에 힘을 실어 주는 근거가 됐다.
수신료 폐지라는 ‘뜨거운 감자’
프랑스의 TV 수신료 폐지는 단시간에 결정된 사안은 아니다. 이미 2019년 당시 공공회계부 장관(Le ministre des Comptes publics)이던 제랄드 다르마냉(G rald Darmanin)이 수신료 폐지를 제안한 바 있다. 당시 방송 정책 주무 부처인 문화부와 방송 규제 기관인 시청각최고위원회(CSA)에서 모두 공영방송의 중요성과 재정 건전성을 내세우며 수신료 폐지를 강하게 반대했다. 그보다 몇 년 앞서 TV 수신의 방식이 다양해진 상황에서 TV 수신기에만 수신료를 부과할 것이 아니라 TV 수신기는 없지만 태블릿, PC 등을 보유한 가정에도 TV 수신료를 부과해야 한다는 정반대의 논쟁이 불거졌다는 점에서 프랑스에서 TV 수신료 부과 문제는 수년간 인상과 폐지를 오가는 ‘뜨거운 감자’였다. 십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공영방송사의 독립성’을 내세우며 공영방송사 재원을 100% 수신료로 충당할 목표로 공영방송사 광고 폐지와 수신료 인상을 결정한 사르코지(Nicolas Sarkozy) 정부의 정책도 있었다. 이 역시 국민들의 세금 인상에 대한 반발, 공영방송사의 광고 완전 폐지 및 수신료 100% 운영의 비현실성 등으로 목표대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이와 같이 프랑스에서 TV 수신료 관련 논의가 널뛰듯 오락가락한 것은 TV 수신료 부과 문제가 다양한 이해관계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프랑스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영방송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 최근 몇 년간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TV 수신료 폐지가 이뤄졌고, 스위스에서는 수신료 폐지가 국민투표에 부쳐졌다가 부결되기도 했다. 최근 영국에서도 수신료 폐지가 결정되는 등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공영 미디어를 위한 수신료 문제는 핫이슈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는 첫째,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기인한다. 점점 TV 수신기를 통해 방송을 이용하는 가정이 줄고 있으며, 전통적 방송 시스템이 아니라 OTT와 같은 다른 플랫폼 이용이 늘고 있다는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은 기존 TV 수신료 정책에 대한 회의(懷疑)를 가져온다. 흥미로운 점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른 TV 수신료 정책의 변화가 양극으로 나뉜다는 점이다. 독일과 같이 TV 수신기 이외의 보유 기기에 대해서도 수신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거나 공영방송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무의해지는 가운데 공영방송 유지를 위해 TV 수신료를 부과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으로 갈리는 것이다.
둘째, 국민의 세금 부담이다. 이번 TV 수신료 폐지를 다수의 국민이 환영하는 까닭도, 2009년 사르코지 정부가 TV 수신료를 점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국민들이 반발했던 이유도 모두 세금 부담 때문이다. 유럽 내에서는 금액이 높은 편이 아닌데도 2019년 조사에서 이미 약 80%의 프랑스 국민이 수신료 폐지 찬성에 손을 들었다(Revault d’Allonnes, 2019.4.6). 또, TV 수신료를 내지 않아도 공영방송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고, 소득별로 차등 징수되는 다른 세금과 달리 모든 가구에 동일 요금으로 일괄 징수된다는 점에서 ‘불공정한 세금’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수신료 폐지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공영방송의 존재에 대해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수신료 폐지에 강하게 반대해 수신료 폐지 문제는 늘 팽팽한 찬반양론에 놓이게 된다. 스위스에서도 지난 2018년 수신료 폐지가 국민투표에 부쳐졌지만 공영방송 수신료 폐지를 반대하는 유권자가 71.6%로 부결된 바 있다(고광남, 2018).
셋째, 정치적 이해관계도 무관하지 않다. TV 수신료 부과 역시 다른 세금 제도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2009년 TV 수신료 인상 정책과 관련해 사르코지 정부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웠지만, 공영방송 광고 폐지 및 수신료 인상의 실질적 이유는 미디어 기업들과 친분이 두터운 대통령의 정치적 결정이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2019년 제랄드 다르마냉 공공회계부 장관의 수신료 폐지 제안에 대해서도 당시 ‘노란 조끼’ 시위로 몸살을 앓던 집권당에서 시위의 핵심 의제였던 고령층 확대사회보호세(contribution sociale g n ralis e) 비율을 높였던 것의 반대급부로 TV 수신료 징수에 주요 대상이 되는 고령층을 달래기 위해 내놓은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이 높았다. 이번 TV 수신료 폐지 역시 재선에 나선 마크롱 대통령의 선심성 공약이라는 지적도 있다. 공영방송 민영화와 함께 TV 수신료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르 펜 후보에게도 TV 수신료 폐지는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없다. 2년
간의 수신료 동결과 2028년까지 점진적 폐지를 발표한 영국 정부의 결정에 대해서도 ‘보수당의 언론 길들이기’, ‘보수당 구하기’와 같은 정치적 동기에 기반한 것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간단하지 않은 공영 미디어 재원 조달
국민을 만족시키는 정치적 결정이든 혹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결과든 TV 수신료 폐지로 당면한 문제는 공영 미디어들의 재원 조달이다. 2022년도부터 TV 수신료가 폐지되면서 프랑스 공영 미디어들은 국가 일반 예산에서 재원을 지원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수신료 100% 운영이라는 목표는 사라지고 국가 재원에 의해 운영되는 공영방송사로 회귀하는 것이다. 경제재정부 장관(Le ministre del' conomie, des Finances et de la Relance)과 공공회계담당 장관(Le ministre d l gu charg des Comptes publics)은 TV 수신료 폐지를 발표하면서 “공영 미디어의 독립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할 것”1)이라고 말하며 국가 예산을 지원받는 공영 미디어의 존재를 당연하게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공영 미디어 재원 조달 그리고 독립성 확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모두 잘 알고 있다. 실제 매년 가구당 138유로가 부과돼 약 32억 유로(약 4조 3,020억 원) 규모를 차지한 공영 미디어 수신료를 당장 국가 일반 예산에서 확보해야 한다. 그 결과 공영 미디어들로서는 매년 일정한 금액으로 지급되던 수신료가 없어져 불안정성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TV 수신료는 세금이지만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공영 미디어에만 지급되는 분담금의 개념도 포함돼 있었다. 따라서 수신료 100% 운영이라는 목표로 2009년 이래로 거의 10년에 걸쳐 정부 재정 지원 ‘0’에 가깝게 줄여 놓은 현재, 오롯이 공영 미디어 기관에 전적으로 배분됐던 32억 유로를 새롭게 확보하는 것은 간단한 일은 아니다.
공영방송사의 반발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TV 수신료 폐지는 공영미디어 재원 조달 문제뿐만 아니라 공영방송의 지위, 방송 미디어의 공영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랑스와 비슷한 시기에 수신료 폐지 논의를 들고 나온 영국에서도 2028년까지 점진적이고 완만한 폐지 방법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단 마크롱 정부의 프랑스에서는 TV 수신료 폐지를 공영방송 무용론과 결부시키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공영방송의 민영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극우 정당과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TV 수신료 폐지를 공영방송의 존폐와 연결 지을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마크롱 정부 대변인 가브리엘 아탈(Gabriel Attal)은 “허위 정보 시대 공영방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Le Monde avec AFP, 2022.3.8).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공영방송사 노조는 수신료 폐지와 관련해 “공영방송의 존재를 위협”하는 원인이 된다며 파업을 예고했다. 이들은 “수신료 폐지는 공영방송사의 재정을 약화하고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며,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광고가 부활하고 상업성이 강화되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많은 이들의 비판점 중 하나가 되고 있다(Mani re, 2022.05.27). 기자 노조 역시 5%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연 138유로의 세금이 줄어드는 것이 구매력에 큰 차이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며, 그에 비해 앞으로 공영방송사는 불안정한 예산 배분을 위해 교육·보건·법률·치안 등 다른 공공 영역과 끊임없이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SNJ cgt, 2022.6.6).
공영방송 노조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반대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 3월 일간지 르몽드(Le Monde)에 성명을 내고 수신료 폐지 공약에 반대하는 입장을 강력히 내세웠다. 공영 미디어 수신료가 프랑스 영화, 다큐멘터리 등 시청각 콘텐츠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투자·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공영 텔레비전 방송사, 라디오 방송사 재정 문제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공영 미디어 수신료 문제와 관련해 찬반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정부의 결정으로 수신료 폐지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리고, 공영방송에 ‘진심’이었던 프랑스가 유럽의 공영 미디어를 위한 수신료 폐지 움직임에 동참하면서 유럽 내 공영 미디어 수신료 논의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사위를 던진 대가로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공영 미디어’가 되기 위해 ‘광고 부활 없는 안정적인 국고 지원’이라는 숙제를 마크롱 정부가 얼마나 잘 해내느냐가 공영 미디어 수신료를 둘러싼 논의의 해법이 될 듯하다.
1) <Suppression de la redevance t l d s 2022>, Le site officiel de l'adminstration française, 2022.5.16, https://www.service-public.fr/particuliers/actualites/A156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