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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서비스법은 거대 플랫폼들에게 ‘관리 책임’을 강하게 부여하는 데 초점을 맞춘 법안이다. EU에서만 적용되지만 세계가 이를 주목하고 있다. EU의 디지털서비스법 합의의 의미와 이것이 세계에 미칠 영향, 향후 전망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민주적인 권리와 법의 지배라는 합법적인 권력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미래에 대한 첫 포괄적인 선언이다.”1)
《감시 자본주의 시대》 저자인 쇼사나 주보프(Shoshana Zuboff)는 유럽연합(EU)이 디지털서비스법(Digital Services Act)을 통과시킨 직후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큰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이 글에서 ‘디지털서비스법’이 디지털 시대에도 ‘대중 자치’ 원칙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선 “지금 당장은 EU에만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겠지만, 전 세계 다른 지역에도 적지 않은 여파를 미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2)
세계적인 석학의 호평을 받은 디지털서비스법은 EU가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 Act)과 함께 야심적으로 준비한 거대 플랫폼 규제 법안이다. 2020년 12월 처음 제안됐으며, 지난 4월 EU의 3대 축인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와 유럽이사회, 그리고 유럽의회가 공식 합의하면서 시행 초읽기에 들어갔다. 디지털서비스법은 함께 제안된 디지털시장법, 2018년부터 시행된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과 함께 EU 디지털 규제 프레임의 기본 축을 형성하게 됐다.
온라인 상거래 시장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려는 입법 목적을 가진 디지털시장법과 달리 디지털서비스법은 거대 플랫폼들에게 ‘관리 책임’을 강하게 부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서비스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법 콘텐츠나 상품에 대해 좀 더 강력한 관리 책임을 묻는 부분이다. 법 적용 대상인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들은 허위 정보나 혐오 발언 등이 올라올 경우 신속하게 제거해야 한다. 아마존 같은 온라인 상거래 플랫폼 사업자도 불법 상품을 바로 제거할 의무를 지게 된다.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 작동 원칙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했다. 이용자들에게 알고리즘의 적용을 받지 않는 콘텐츠 표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도록 했다. 개인정보를 활용한 맞춤형 광고도 일부 제한된다. 특히 미성년자의 개인정보를 활용한 맞춤형 광고를 엄격하게 금지했다. 성인 이용자의 성적 취향이나 종교, 인종 같은 개인의 기본 인권과 관련된 정보를 활용한 맞춤형 광고도 집행하지 못하도록 했다.
EU 넘어 전 세계에 영향 미칠 전망
EU가 디지털서비스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의 횡포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2016년의 극심한 혼란이다. 잘 아는 대로 미국과 유럽 모두 2016년에 엄청난 혼란에 휘말렸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각종 허위 정보가 난무했다. 유럽은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겪었다. 양 대륙 모두 페이스북을 통해 무차별 유포된 ‘페이크뉴스(fake news)’ 때문에 팽팽한 정파 대립에 휘말렸다. 옥스퍼드영어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택했을 정도로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런 충격에 대해 미국보다 유럽이 더 빠르게 반응했다. 허위 정보 유포의 주범으로 꼽힌 페이스북, 구글 같은 미국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는 당위론에 더 큰 힘이 실렸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과 달리 개인정보 보호나 혐오 발언 제재를 더 중요하게 간주하는 문화적 차이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디지털서비스법은 EU에서만 적용된다. EU 지역 내 월간 이용자 4,500만 명 이상인 거대 온라인 플랫폼과 검색 엔진이 규제 대상이다. 4,500만 명은 EU 전체 인구 4억 5,000만 명의 10%에 도달하는 것을 기준으로 도출한 수치다. 사실상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서비스하는 메타를 비롯해 구글, 아마존 같은 미국 거대 IT 기업을 겨냥한 법이다. EU 업체 중에선 음악 스트리밍 전문업체인 스포티파이가 대표적인 규제 대상이다. 디지털서비스법을 위반하게 되면 직전 해 전 세계 매출의 6%에 이르는 거액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가 디지털서비스법을 위반할 경우 최대 70억 유로(약 9조 3,400억 원)에 이르는 벌금 폭탄을 맞게 된다.
하지만 디지털서비스법 제정 여파가 EU 지역 내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이 문제 삼고 있는 여러 쟁점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전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들이기 때문이다. 구글, 메타의 본고장인 미국 상황만 살펴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인터넷 초기부터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선 면책특권을 보장해 왔던 미국은 최근 들어 강력한 책임을 묻는 쪽으로 입법의 무게중심이 바뀌고 있다. 인터넷이란 혁신 산업 육성을 위해 방치했던 많은 부작용을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주보프가 디지털서비스법이 EU뿐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도 이런 상황과 관련이 있다.
디지털서비스법 통과 이후 흥미로운 장면도 연출됐다. 트위터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EU 역내 시장을 담당하고 있는 티에리 브르통(Thierry Breton) 집행위원과 전격 회동한 것이다. 머스크는 트위터를 인수한 뒤 ‘표현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보장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해 왔다. 사실상 디지털서비스법과 정면 배치되는 행보였다. 하지만 머스크와 회동한 직후 브르통 집행위원은 “EU가 제시한 모든 안을 머스크가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3)
광장 커지며 함께 커진 부작용
이런 상황 변화를 좀 더 입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선 시간을 30여 년 전으로 돌려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대중화되자 세계 각국은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다양한 육성 정책을 내놨다. 모처럼 맞이한 ‘열린 광장’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터넷 육성을 위한 파격적인 법안과 정책을 연이어 내놨다.
이런 행보에서 가장 적극적이었던 것은 인터넷 종주국 미국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96년 제정된 통신품위법 230조다. “선한 의도를 갖고 콘텐츠 중재 작업을 하는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선 발행자에 준하는 의무를 부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230조 덕분에 야후를 비롯한 초기 인터넷 사업자들은 제삼자가 올린 콘텐츠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면제받게 됐다.4) 이 조항은 인터넷 산업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뿐 아니다. 그 무렵 미국을 이끌고 있던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7년 ‘지구촌 전자상거래 기본 계획(A framework for global electronic commerce)’을 통해 “전자상거래를 방해하는 기존 법률과 규제는 재검토한 뒤 수정하거나 폐지해야만 한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미국은 오프라인에서는 규제 대상인 행동도 혁신적인 인터넷 비즈니스에서는 상당 부분 허용해줬다.
이런 정책 기조에 힘입어 야후를 필두로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초기 인터넷을 지배한 기업들이 연이어 등장할 수 있었다. 조금씩 덩치를 키운 인터넷 플랫폼은 어느 순간 신문이나 방송 같은 전통 미디어를 압도하는 영향력을 갖게 됐다. 하지만 광장이 커지면서 부작용도 함께 커졌다.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허위 정보나 혐오 발언이 무차별 유포됐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직접 민주주의의 장점보다는 사회 갈등을 초래하는 부작용이 훨씬 크다는 공감대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20년 전 스타트업이던 구글, 아마존 같은 기업들은 인터넷 광고 및 상거래 시장을 독점하면서 전통 산업 시대 어느 기업보다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합당한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런 불만이 확대되면서 거대 인터넷 기업들의 보호막 역할을 했던 통신품위법 230조 개정 움직임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마크 워너(Mark Warner), 매지 히로노(Mazie Hirono), 에이미 클로버샤(Amy Klobuchar) 등 민주당 상원의원 세 명이 추진하고 있는 세이프테크법(SAFE TECH Act)이다. 이 법은 통신품위법 230조가 보장하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의 면책특권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적절한 정보 교환에 대해선 플랫폼 사업자들이 상당 수준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세이프테크법의 골자다. EU 디지털서비스법만큼 강력한 수준은 아니지만, 거대 플랫폼을 단순한 정보 중개자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함께 추진되고 있는 ‘미국 혁신 및 선택 온라인법’과 ‘플랫폼독점종식법’ 역시 디지털서비스법이나 디지털시장법 같은 EU의 법들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미국 혁신 및 선택 온라인법은 플랫폼 사업자들이 해당 플랫폼 내에서 자신들의 상품이나 앱을 우대하는 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반면 플랫폼독점종식법은 경쟁 판매업자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거대 플랫폼 사업자를 향한 규제 칼날
물론 EU가 디지털서비스법과 디지털시장법을 연이어 제정한 것은 미국 거대 플랫폼 사업자를 견제하려는 ‘이기적인 의도’가 작용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EU는 2000년대 중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운영체제 독점 행위를 강력 제재한 것을 비롯해 구글, 아마존, 애플, 메타 같은 미국 거대 IT 기업들을 견제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아 왔다. 전 세계 IT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 기업에 대한 경계심이 그 어느 곳보다 강한 편이다.
하지만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 독점 횡포는 미국과 유럽의 갈등이란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됐다. 미국의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들은 이미 개별 국가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은 갈수록 더 심해질 가능성이 많다.
빅테크들의 본고장인 미국조차 거대 플랫폼 규제에 많은 공을 들일 정도로 구글, 메타, 아마존의 엄청난 영향력은 전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지금보다 좀 더 강한 책임성을 부여하고, 개인정보를 활용한 맞춤형 광고나 알고리즘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많은 나라가 공감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처럼 EU의 디지털서비스법은 그동안 개별 국가들이 문제의식은 갖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던 것을 먼저 치고 나갔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EU가 디지털서비스법을 제정하면서 전면에 내세운 두 가지 원칙에 대해선 누구나 공감할 터이기 때문이다.
첫째, 오프라인에서의 불법 행위는 온라인에서도 불법이다. 둘째,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더 큰 책임을 져야만 한다.
EU의 디지털서비스법은 2024년 1월부터는 본격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구글, 메타, 아마존 같은 사업자들은 허위·유해 정보 관리 체제를 구축하고 개인정보를 활용한 맞춤형 광고를 재정비해야 한다. 물론 유럽 시장만 특별 대우하는 방식으로 피해갈 수는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와 의회도 비슷한 규제 칼날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서비스법이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비즈니스 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많다.
1) Zuboff, S., <The EU has fired the starting gun in the fightback against Big Tech>, Financial Times, 2022.5.3, https://www.ft.com/content/31f49915-0f85-48b0-bf81-131960318967
2) Vick, K., <Europe is saving democracy from Big Tech, says the author of Surveillance Capitalism>, Time, 2022.5.11, https://time.com/6174614/shoshana-zuboff-twitter-surveillance-capitalism/
3) Fung, B. <Elon Musk says he is ‘exactly aligned’ with Europe’s sweeping new rules for social media plat forms>, CNN, 2022.5.10, https://edition.cnn.com/2022/05/09/tech/elonmusk-twitter-europe-breton-dsa/index.html
4) 김익현, <힘 실리는 ‘빅테크 견제법’ 면책특권 줄이고 규제는 대폭 강화>, 《신문과방송》 2021년 12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