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호주에서는 지금 거대 미디어 기업 뉴스코퍼레이션(News Corporation)의 라클란 머독(Lachlan Murdoch)과 인터넷 신문 크라이키(Crikey)의 명예훼손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6월 29일 크라이키는 <트럼프는 불안정한 반역자이고 머독은 불기소된 그의 공모자(Trump is a confirmed unhinged traitor. And Murdoch is his unindicted co-conspirator)>라는 제목의 기사1)를 게재했는데 이 기사는 미국 폭스코퍼레이션(Fox Corporation)을 소유한 머독이 강경 우익 성향의 폭스뉴스를 이용해 2021년 1월 발생한 미 의사당 난입 및 폭동 사건을 선동·조장했다고 주장했다. 기사가 나간 뒤,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의 아들이자 뉴스코퍼레이션의 공동 회장인 라클란 머독은 해당 기사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서한을 수차례 크라이키에 발송했으나 크라이키는 이러한 머독의 요구를 거절하며 전면전에 나섰다. 지난 8월 23일 라클란 머독의 변호사는 크라이키 소유주인 프라이빗미디어(Private Media)를 상대로 호주 연방법원에 명예훼손 소장을 제출했으며, 지난 10월 11일 명예훼손 공판을 위한 예비 심리가 열렸다.
머독 vs 크라이키
라클란 머독 측은 크라이키의 기사가 머독이 불법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공모해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었으며, 미 의사당 난입을 선동했다는 증거 없는 혐의를 제기함으로써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크라이키에 수차례 사과와 기사 철회를 요구했지만 크라이키는 이러한 머독의 주장을 반박하며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공개서한2)을 자사 홈페이지에 게시해 머독의 요구를 거부하고, 법정에서 표현의 자유와 공익 저널리즘을 위해 다투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또한, 지난 두 달 동안 오간 서신 내용을 공개했으며3) 머독의 미디어 장악과 언론 자유 위협에 관한 연재 기사를 내보내며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크라이키를 소유한 프라이빗미디어의 에릭 비처(Eric Beecher) 회장은 ‘영장을 기다린다’라는 제목의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공개서한을 8월 22일 자 뉴욕타임스에 싣기도 했다.
개정 명예훼손법 첫 시험대 올라
이번 제소는 2021년 개정된 호주 명예훼손법의 첫 주요 테스트 사례가 될 전망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21년 호주의 네 개 주4)는 기존의 명예훼손법 개정안(Defamation Amendment Bill 2021)을 통과시키고 시행에 들어갔는데, 보완된 주요 개정 조항은 영국의 명예훼손법(Defamation Act 2013)을 모델로 하고 있다. 호주는 이번 법 개정에서 영국의 명예훼손법 제4조 공익방어(public interest defence)에 관한 조항을 도입했는데, 이 조항은 명예훼손 소송에서 △불만 대상 진술이 공익 사항에 관한 내용이며 △내용이 공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피고가 합리적으로 믿었음이 입증되면 피고를 위한 항변이 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는 언론인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조항으로, 명예훼손을 둘러싼 문제로 불거지는 고비용 장기 소송을 사전에 막는 장치가 마련된 셈이다.
호주의 명예훼손법은 매우 엄격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언론 기관과 소셜미디어 플랫폼 기업을 대상으로 제소된 명예훼손 소송 대부분의 경우 소송을 제기한 측의 손을 들어줬다. 언론 자유 보장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법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호주에서 명예훼손법이 공공 저널리즘의 역할 수행에 걸림돌이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최근 법 개정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었다. 기존의 명예훼손법에서 피고는 자기 행위의 합리성(reasonable)을 입증해야 면책이 된다. 하지만 언론 기관이 법원이 만족할 만한 보도의 합리성을 입증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5) 공공이익 사항(an issue of public interest)이라는 항목이 추가됨에 따라 공익방어(public interest defence)에 대한 조항이 보강됐는데, 이번 머독의 명예훼손 소송에서 ‘공익방어’ 논리가 어떻게 통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에서 머독 계열 미디어의 역할이 공익 이슈인가는 중요한 쟁점이다. 마이클 더글라스(Michael Douglas)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 법학과 교수는 이번 사안을 공익 이슈로 보기에 충분하며, 개정된 법안이 개정 목적에 맞게 언론인의 보호 장치로서 역할을 할지 평가할 수 있는 적절한 사례라고 언급했다.6) 소송을 앞두고, 크라이키는 이 사안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내용이며 알 권리라는 점을 내세워 여론에 호소하는 전략을 펼쳤다. 한편, 10월 11일 열린 공판에서 머독의 변호인 측은 개정된 공공이익 방어 조항이 온라인 출판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으며, 기사를 작성한 버나드 킨(Bernard Keane)과 피터 프레이(Peter Fray) 크라이키 편집장이 악의를 갖고 머독에게 해를 입히기 위해 기사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개정된 명예훼손법은 영국의 명예훼손법 제1조 중대한 손해(Serious harm)에 관한 조항을 추가했는데, 이 조항으로 인해 머독 측 변호인은 크라이키의 기사가 머독의 명예에 중대한 손해를 야기했거나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크라이키는 해당 기사와 유사한 견해를 담은 기사들이 미국에서는 사실상 매일 작성되고 있지만 머독이 미국에서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크라이키…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
크라이키는 호주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이자 활동가인 스티븐 메인(Stephen Mayne)이 설립한 인터넷 신문사다. 2005년 프라이빗미디어가 크라이키를 매수했다. 매출 십조 원대의 거대 미디어 기업과 싸우는 크라이키의 연 매출은 약 180억 원 정도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언론에서는 크라이키를 작은 독립 신문사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이러한 프레이밍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호주의 독립 언론사인 인디펜던트오스트레일리아(Independent Australia)는 크라이키는 독립 언론사나 소규모 언론사가 아니며, 크라이키를 소유한 프라이빗미디어는 호주 페어펙스 미디어(Fairfax Media) 재벌가의 억만장자 자손들과 아일랜드계 미디어 기업들의 자손들이 주주로 있는 기업임을 강조했다.7) 또한 이번 소송 건으로 크라이키는 불과 며칠 만에 3,500명의 새 구독자를 확보했으며, 현재 2만 5,000여 명으로 늘어났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8) 한편 크라이키는 머독의 고소로 법정 싸움이 불가피하게 됨에 따라 이에 따른 비용 마련을 위해 8월 26일 크라우드펀딩 온라인 플랫폼 고펀드미(gofundme)에 소송 대응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 운동을 열었는데, 하루 사이에 3,265명이 참여해 28만 호주달러(약 2억 5,000만 원)가 모였다. 소송에 필요한 비용 300만 호주달러(약 26억 8,000만 원) 모금을 목표로 하는데, 현재 50만 7,000호주달러(약 4억 4,000만 원)가 모였다.
머독의 이번 크라이키 제소는 호주 정치인들의 공개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호주 전 총리 맬컴 턴불(Malcolm Bligh Turnbull)과 케빈 러드(Kevin Michael Rudd)는 강경한 어조로 머독의 크라이키 제소를 비난했으며 크라이키의 모금 운동에 5,000호주달러(약 480만 원)를 기부하며 적극적인 공개 지지에 나섰다. 케빈 러드 전 총리는 2020년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에 대한 반독점 특별조사를 촉구하는 온라인 국민청원을 주도했다. 맬컴 턴불 전 총리는 지난 8월 미국 내셔널퍼블릭라디오(NPR, National Public Radio) 대담에서 루퍼트 머독은 폭스뉴스의 영향력을 이용해 오늘날 누구보다도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언급하며, “머독이 크라이키를 제소한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맹비난했다.9)
머독은 현재 가중적 손해배상과 해당 기사 게재 금지 조치를 신청해놓은 상태다. 9일 동안 진행될 명예훼손 소송 재판은 내년 3월 말에 시작될 예정이다. 마이클 더글라스 교수는 호주 방송 SBS와의 인터뷰에서 머독이 이번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손해 배상액은 머독의 변호사 수임료보다 적을 것이기 때문에 수지가 안 맞는 일(the game has not been worth the candle)이라고 언급했다.10) 유사한 기사들이 넘쳐나는 미국에서는 단 한 건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머독이 호주에서 유일하게 인터넷 신문 크라이키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호주의 명예훼손법이 언론인을 위한 보호 장치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지,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과 크라이키는 이번 사안으로 호주의 언론계에서 어떠한 입지를 가지게 될지 내년 3월 진행될 재판 과정에 상당한 이목이 쏠릴 것이다.
1) Keane, B., <Trump is a confirmed unhinged traitor. And Murdoch is his unindicted co-conspirator>, Crikey, 2022.6.29, https://www.crikey.com.au/2022/06/29/january-six-hearingdonald-trump-comfirmed-unhinged-traitor/
2) Beecher, E., <Standing up for the free press: here’s what abuse of media power looks like in Australia>, Crikey, 2022.8.22, https://www.crikey.com.au/2022/08/22/lachlan-murdochletters-crikey-why/
3) <The Lachlan Murdoch letters>, Crikey, https://www.crikey.com.au/topic/lachlan-murdoch-letters/
4) 빅토리아, 뉴사우스웨일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
5) Clift, B., <Why defamation suits in Australia are so ubiquitous - and di f f icul t to defend for media organisations>, The Conversation, 2021.3.15, https://theconversation.com/whydefamation-suits-in-australia-are-so-ubiquitous-and-difficult-todefend-for-media-organisations-157143
6) Whitbourn, M. & Samios, Z., <Murdoch v Crikey: How a mere 804 words became a test case that could run into the millions>, The Sydney Morning Herald, 2022.8.27, https://www.smh.com.au/business/companies/murdoch-v-crikey-how-a-mere-804-words-became-a-test-case-that-could-run-into-the-millions-20220824-p5bccs.html
7) Donovan, D., <The truth about Cr ikey’s crowdfunding campaign>, Independent Australia, 2022.9.1, ht tps://independentaustralia.net/business/business-display/the-truthabout-crikeys-crowdfunding-campaign,16720
8) Austin, A. & West, M.,<A winner by wallet maybe, but Lachlan Murdoch has put Crikey on the world stage>, Michael West Media, 2022.9.9, https://michaelwest.com.au/defamationlachlan-murdoch-puts-crikey-on-the-world-stage/
9) 고직순, <[시론]호주 언론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한호일보, 2022.8.25, http://www.hanhodaily.com/news/articleView.html?idxno=71880
10) Orr, A., <Why Lachlan Murdoch is taking on Crikey, and how the case will test Australia's updated defamation laws>, SBS News, 2022.8.28, https://www.sbs.com.au/news/article/whylachlan-murdoch-is-taking-on-crikey-and-how-the-case-willtest-australias-updated-defamation-laws/pjens2hb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