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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미디어 현장] 호주_ 국가 인공지능 계획 발표
글로벌 미디어 현장 | 등록일 : 2026-02-27

최근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시행에 들어간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하 「인공지능기본법」)은 호주에서도 적지 않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 1월 23일 호주 공영방송 ABC는 한국의 인공지능 규제 도입을 상세히 소개하며, 특히 고영향(high-impact) 인공지능 시스템에 대한 인간의 감독, 체계적 위험 관리, 감사 의무를 법률 차원에서 명문화한 점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이러한 보도는 해외 정책 소개 이상으로 현재 호주에서 진행 중인 인공지능 규제 방향과의 대비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호주 정부가 의료·복지 등 일부 고위험(high-risk) 분야에 한해 자율 규제 성격의 가이드라인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주요 정책 쟁점으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1)에서, 한국의 전면적이고 법제화된 접근은 중요한 비교 기준으로 소개되고 있다.

 

한국과 대비되는 호주의 선택

 

지금 호주에서는 ‘왜 우리는 단독 인공지능 기본법을 갖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 규제를 어디까지 법제화해야 하는가, 그리고 혁신과 안전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논의로 확장되고 있다.2) 현재 호주는 인공지능을 규제하는 기본법을 두고 있지 않다. 2025년 말, 호주 정부는 기존에 논의되던 인공지능 전용 입법과 강제적 규제 도입 계획에서 한발 물러나, 이른바 ‘기술 중립적(technology-neutral)’인 접근을 공식화했다.3) 이는 AI를 특정 기술로 분리해 규제하기보다는, 개인정보 보호법, 소비자법, 차별금지법, 저작권법 등 기존 법체계를 인공지능에 적용·보완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관리하겠다는 전략이다.4)

 

이러한 방향 전환은 한국이나 유럽연합(EU)처럼 중앙집중적이고 포괄적인 인공지능 법률을 도입한 국가들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한국이 ‘고영향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법적 의무를 명확히 한 반면, 호주는 단일 법 대신 기존에 존재하던 법·제도의 틀을 유지한 채 이를 점진적으로 보완하는 방식으로 규제 체계를 설계한 것이다. 이는 새로운 규범을 일괄적으로 도입하기보다 기존 제도를 활용해 위험을 관리하려는 신중한 접근이지만, 동시에 인공지능 특유의 위험과 책임 문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포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국가 인공지능 계획과 ‘자율적 규제’ 전략


호주는 2025년 12월 2일 ‘국가 인공지능 계획(National AI Plan)’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2030년까지 세계적 수준의 인공지능 산업을 구축하겠다는 범정부 로드맵으로, 인공지능을 규제의 대상보다는 경제 성장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로 규정한다. 호주 정부의 인공지능 계획은 크게 △인프라와 투자 확대, △인공지능 기술 혜택의 사회적 확산, △기존 법체계를 활용한 안전 확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 에너지·통신 인프라 고도화, 공공 부문의 인공지능 기술 활용 확대 등 비교적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한다. 반면, 인공지능 기술 도입으로 인한 위험과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새로운 강제 규범보다는 자율적 가이드라인과 사후적 법 적용에 무게를 둔다. 2025년 호주 정부는 기존에 논의됐던 「자율적 인공지능 안전 표준(Voluntary AI Safety Standard)」의 10대 ‘표준’과 8가지 AI 윤리 원칙을 간소화한 「인공지능 도입 가이드라인(Guidance for AI Adoption)」을 발표했다.5) 여섯 가지 핵심 실천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인공지능 시스템에 대해 승인, 운영,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구체적인 역할을 정의하고, 명확한 최고 책임자를 지정한다. 둘째, 배포 이전에 이해관계자 영향 평가를 실시해 개인정보 보호, 공정성, 안전성에 대한 잠재적 위험을 식별한다. 셋째, 인공지능을 중대한 기업 위험 요소로 간주하고, 기존의 기업 위험 관리 체계에 통합하며, 위험 수준에 따라 구체적인 통제 조치를 적용한다. 넷째, 이해관계자에게 인공지능 활용 사실을 공개해 투명성을 유지하고, 시스템의 목적과 사용 데이터 출처를 문서화한 내부 인공지능 시스템 등록부를 운영한다. 다섯째,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하기 전에 정확성과 편향 여부를 철저히 테스트하고, 성능 변화나 문제를 감지하기 위한 지속적 모니터링 체계를 마련한다. 여섯째,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통제(human-in-the-loop)를 보장하고, 직원이 인공지능 의사결정을 재검토하거나 무효화할 수 있도록 권한과 교육 기회를 마련한다.

 

국가의 자율 규제 방향 전환에 대한 엇갈린 반응


여덟 가지 윤리 원칙에서 10대 표준과 6가지 핵심 실천 사항으로 이어지는 호주의 인공지능 거버넌스 체계 변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실무 중심의 진화로 보인다. 추상적 가치 선언에서 출발해 안전 기준을 거쳐, 기업이 실제로 따라야 할 운영 지침으로 정리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환을 두고 각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기존의 윤리 원칙은 방향을 제시했지만 실행력을 담보하기 어려웠고, 10대 가드레일 역시 자율 기준에 머물렀다. 이에 비해 6가지 핵심 실천 사항은 책임자 지정, 위험 관리 체계 통합, 내부 등록부 운영 등 조직 차원의 구체적 조치를 요구함으로써 기업의 행동 변화를 유도한다. 즉, 규제 대신 거버넌스를 통해 산업 현장의 적응력을 높이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반면 이번 변화가 규제의 실질적 약화를 의미한다는 지적도 있다. 6가지 실천 사항이 기업 운영 매뉴얼로 축소되면서, 국가 차원의 책임 규범이나 법적 의무를 강화하는 대신 기업 내부 관리 체계에 상당 부분을 맡기는 방향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특히 강제력이 없는 권고 지침에 의존할 경우, 규제의 실질적 효과는 시장 자율과 기업의 자발적 준수 의지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실행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으며, 고위험 인공지능 활용 영역에서의 피해 발생 시 책임 귀속과 구제 절차가 불명확하다는 구조적 문제를 남긴다. ‘책임 있는 인공지능’이라는 담론은 유지되지만, 그것을 강제할 제도적 장치는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러한 맥락에서 호주가 한국의 ‘고영향 인공지능’ 규율 방식에 주목하는 배경이 설명된다. 한국은 고위험 영역에서 인간의 감독, 위험 관리, 기록 보존 및 감사 의무를 법률 차원에서 명문화함으로써 기업의 내부 자율을 넘어선 최소한의 공적 책임선을 설정한 반면, 호주는 동일한 위험 기반 사고를 공유하면서도 이를 법적 의무보다는 행정 지침과 자율 준수 구조 속에 배치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방향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가디언 오스트레일리아는 2025년 12월 호주 정부의 디지털 규제 접근은 ‘모순적’이라 평가한 기고문을 실은 바 있다.6) 기고문은 정부가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제한하면서도, 동시에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인공지능 기술의 확산에는 관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의 위험성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인공지능 전반에 대해서는 경제적 기회 담론이 우선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 역시 현재의 호주 국가 인공지능 계획이 구체적 기준과 책임 구조가 부족하다는 점을 우려한다. 생성형 인공지능, 딥페이크, 합성 데이터, 자동화된 의사결정 등은 기존 법체계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영역임에도, 명확한 법적 경계가 설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한 정책적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2026년 초 2,990만 호주달러(약 306억 5,766만 원)의 예산으로 출범한 인공지능 안전연구소(AI Safety Institute)의 구조적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이 기관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시험하고 위험을 평가하며, 규제 공백 분석(regulatory gap analysis) 방법론을 활용해 필요한 제도 개선 사항을 권고할 예정이다.7) 뿐만 아니라 호주는 미국, 영국, 캐나다, 한국, 일본 등과 함께 국제 인공지능안전연구소 네트워크(International Network of AI Safety Institutes)에 참여함으로써, 글로벌 규제 논의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하지만 시험·평가·권고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직접적인 집행 권한이나 제재 권한은 없다. 이는 유럽연합 인공지능법(EU AI Act)처럼 사전적 의무와 벌칙을 명시한 체계와 대비된다. 아울러 규제 공백 분석과 후속 제도 개선은 수년이 걸릴 수 있으며, 즉각적이고 의무적인 안전장치가 아니라 사후적 보완에 의존하는 구조는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위험이 있다. 결국 사전적으로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는 체계가 아니라, 피해 발생 이후 규제 기관이 위험을 입증하는 구조로 작동할 경우, 실질적 보호 효과가 약해질 수 있다는 한계 때문에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의 인공지능 정체성 부재

 

로위 연구소(Lowy Institute)의 크리스티나 위레무-브룩(Christina Wiremu-Brook)8)은 호주가 현재 일관된 인공지능전략을 갖추기보다는, 개별 사안에 따라 대응하는 ‘사후적이고 단편적인 패치워크식 접근’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국가 인공지능 계획은 인프라 투자와 기술 도입을 강조하면서도, 호주가 어떤 인공지능 국가가 되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정체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단순히 위험을 관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위험 완화와 선제적 전략을 균형 있게 결합한 ‘인공지능 정체성(AI Identity)’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광업이나 농업처럼 호주가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에서 특화된 인공지능 활용 모델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규범과 거버넌스를 제시하는 리더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전략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인공지능을 둘러싼 정책적 논의가 국가적 방향성과 규범적 선택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인공지능기본법」은 호주에 단순한 모범 사례라기보다, 다른 선택지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비교 기준으로의 역할을 한다. 한국이 위험 기반 규제와 산업 육성을 동시에 제도화했다면, 호주는 여전히 규범을 ‘계획’과 ‘가이드’의 영역에 머물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인공지능기본법」은 호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호주 인공지능 규제 논쟁의 핵심은 법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신뢰를 제도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있다. 계획을 넘어 책임, 기준, 집행력을 갖춘 거버넌스로 나아갈 수 있을지가 향후 정책 논의의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1) , Australian Government, Department of Industry, Science and Resources, https://consult.industry.gov.au/ai-mandatory-guardrails

2) Russ-Smith, J., Motsi-Omoijiade, I., & Lazarus, M. D., , The conversation, 2025.12.15, https://theconversation.com/australias-national-plan-says-existing-laws-are-enough-to-regulateai-this-is-false-hope-271725.Dendrinos, T., , ABC, 2026.1.30, https://www.abc.net.au/listen/programs/am/is-ai-regulation-required-in-australia-/106285996

3) , Australian Government Department of Industry, Science and Resources, 2025, https://www.industry.gov.au/sites/default/files/2025-12/national-ai-plan.pdf

4) Russ-Smith, J., Motsi-Omoijiade, I., & Lazarus, M. D., , The conversation, 2025.12.15, https://theconversation.com/australias-national-plan-says-existing-laws-are-enough-to-regulateai-this-is-false-hope-271725

5) , Australin Goverment, Department of Industry, Science and Resources, 2019.11.7(updated 2025.12.2), https://www.industry.gov.au/publications/australias-ai-ethics-principles#ai-ethics-principles-at-a-glance

6) Lewis, P., , The Guardian, 2025.12.10, https://www.theguardian.com/australia-news/commentisfree/2025/dec/10/albanese-australia-social-media-ban-childrencontrast-national-ai-plan

7) , Australin Goverment, Department of Industry, Science and Resources, 2025.12.25, https://www.industry.gov.au/news/australia-establish-new-institute-strengthen-ai-safety

8) Wiremu-Brook, C., , Financial Review, 2025.12.7, https://www.afr.com/technology/we-need-a-real-ai-strategy-that-starts-with-an-ai-identity-20251204-p5nl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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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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