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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둘, 하나, 해피 뉴 이어! 축하합니다, 여러분. 2023년이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나운서의 우렁찬 멘트와 함께 무대에 서 있던 모든 출연진들이 카메라를 향해서 일제히 손을 흔들기 시작하면서 프로그램이 종료됐다. 참가자들의 손짓은 2022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성대하게 막을 내린 프로그램과 달리, 언론들의 평가는 비판적인 내용 일색이었다.
<홍백가합전>을 보도하는 기사들에는 “시청률 역대 워스트 2”, “참패” 등과 같은 제목이 붙었다. 이런 비판은 <홍백가합전>에 역대 최다 한국 아이돌 그룹이 출연한 것에 집중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홍백가합전> 엔딩에서 카메라를 향해서 손을 흔들고 있는 출연자 중 무려 35명이 K-POP 그룹이거나, 한국 연예 기획사와의 합작으로 탄생한 일본인 그룹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이 일본인들의 눈에는 좋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SNS에는 ‘일본 방송에 웬 한국인 잔치냐’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처음 출연한 10개 그룹 중 4개 그룹이 한국계고, 이 중에는 일본에 데뷔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았거나 아직 일본에 정식 데뷔도 하지 않았는데 출연자로 선정된 아이돌 그룹이 있었기 때문이다.
NHK <홍백가합전>으로 말하자면 7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일본의 국민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한해를 마무리하는 전통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이를 ‘<홍백가합전> 보고 하츠모우데1) 가기’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지난 70년간 일본 국민은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한 해의 종지부를 찍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왔다.
국민적인 프로그램답게 한때는 시청률이 81.4%를 기록할 정도로 국민 대부분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로 했다.2) 일본 연예계에서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했다는 것은 출연자가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징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이라면 <홍백가합전> 출연 정보를 자신의 프로필에 자랑스럽게 기재하고 있다. 이런 국민적인 방송에 K-POP 그룹들이 가장 많이 출연하게 된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이런 변화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70년 이어져 온 ‘노포 프로그램’
NHK <홍백가합전>은 1951년 라디오 프로그램(NHK <홍백가요전>)으로 시작된 대표적 장수 프로그램 중 하나다.3) 초창기에는 정월(正月) 특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는데, TV 방송이 시작된 4회부터는 TV와 라디오에서 동시 중계됐다.4) 당초 방청 희망자가 너무 많아서 대형극장을 물색했지만, 공연장이 비어있는 기간이 연말뿐이었던 것이 오늘까지 연말 편성이 이어지게 된 이유다. 23회까지는 방송 장소가 고정되지 않고, 동경 시내의 비어있는 극장을 전전하면서 방송을 했으나, 24회부터는 그해 완공된 ‘NHK홀’로 장소가 고정됐다. 출연진들은 한 해의 가요계를 상징하는 가수들로 구성하는 것이 관례여서 음악적으로 시대상을 반영하는 역사적인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헤이세이시대5)에 들어서는 2부 구성으로 편성이 개편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22년 NHK <홍백가합전> 제2부의 ‘세대 시청률(관동지역 한정)’은 35.3%로 역대 워스트 2위를 기록했다.[그림] 34.3%로 역대 최저 시청률을 기록한 2021년도에 비해서 1%p상승했지만 급반등은 하지 못했다. 2000년 이후의 시청률 변화를 살펴보면, 2000년의 48.4%를 정점으로 시청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홍백가합전>의 시청률과 그 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시청률 하락에도 불구하고 <홍백가합전>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관심도를 알 수 있다. 지난해의 경우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프로그램은 2022 카타르 월드컵 일본-코스타리카전으로 42.9%였다. 2001년에는 도쿄 올림픽이 56.4%로 가장 높았고, 2000년에는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가 32.7%를 기록했다. 2009년에는 럭비 월드컵 일본-남아프리카전이 41.6%를 기록했다. 다른 해들도 월드컵 일본전, 역전 마라톤 중계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2022년 <홍백가합전>의 시청률은 2021년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지만, 낮은 시청률이라고 비판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같은 시간대에 편성된 민간방송의 시청률이 10%대였기 때문이다.6) 민방의 시청률과 비교한다면 압도적으로 높은 시청률이다.
K-POP과 <홍백가합전>의 관계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한 K-POP 아이돌 그룹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한류 붐에도 불구하고 NHK <홍백가합전>은 한국 아이돌을 출연시키는 데 인색했다는 점이다. 2004년에 류(RYU)와 이정현이 출연한 것은 한국 드라마의 인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홍백가합전>에 K-POP 아이돌 그룹이 출연하는 것은 한일관계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류 붐과 함께 2002년 이후 매년 이어져 오던 K-POP 그룹 출연이 2011년 이후 5년 동안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시기는 한일 관계가 악화된 시기와 중첩된다.
따라서 NHK <홍백가합전>은 2011년 이후 한일 관계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지표 역할을 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된 2012년에는 NHK가 <홍백가합전>에 ‘한국 가수를 출연시키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할 정도였다. 2012년에는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한 팀도 출연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2011년도에 큰 인기를 얻었던 소녀시대, 카라 등의 인기가 이어지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본의 닛칸스포츠(일간스포츠)지는 “독도의 영유권 문제로 국민감정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치가들을 중심으로 반한류 정서가 만들어지자, 한국 배우가 주연한 드라마의 방송이 취소되기도 했다.
2022년 NHK <홍백가합전>에 K-POP 그룹이 출연한 것은 3년 만이다. 르세라핌과 아이브는 처음으로 출연했다. 트와이스는 3년 만에 4번째 출연이다. JYP엔터테인먼트와 소니뮤직의 합동 오디션으로 선발된 니쥬는 3년 연속 출연했다. 제이오원은 일본 요시모토흥업과 한국 CJ ENM의 합병회사에 소속돼있다. 2011년에 3개 그룹이 출연한 이래로 5개 그룹이 출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르세라핌은 2022년 5월에 데뷔한 신생 그룹이고, 아이브도 2021년 12월에 데뷔하는 등 두 그룹은 데뷔 1년도 되지 않아서 <홍백가합전>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방송과 온라인의 서로 다른 반응
<홍백가합전> 출연자가 발표되자 SNS에서는 “#홍백전안본다”는 해시태그가 등장했는데, 많은 내용이 한국 아이돌 그룹의 최다 출연에 대한 불만이다. “일본인의 수신료로 한국 아이돌 출연 시키냐!”, “한국계 5그룹 출연은 비정상이다”, “일본의 공공방송에서 연말의 국민적 방송에 한류 스타 밀어주기는 넌센스다”, “알지도 못하는 한국 아이돌 보려고 수신료 낸 게 아니다. <홍백가합전> 나오려고 열심히 하는 일본 가수도 많이 있지 않느냐!”, “부산에서는 시청료도 내지 않고 공짜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인을 위한 출연자 선정이 아니다” 등의 반응이다.
이런 비판은 시청률이 역대 두 번째로 낮았다는 것과도 연결된다. <홍백가합전>의 가수별 시청률을 살펴보면 1위부터 10위까지가 일본인 가수들로, K-POP 아이돌 그룹은 포함돼 있지 않다. 반면 유튜브 재생 횟수[표 2]를 보면 트와이스와 르세라핌이 10위권에 들어가 있다. 게다가 지상파 시청률 10위의 가수들과 유튜브 재생 횟수 상위 10위권 중에서 겹치는 출연자들이 한 명도 없다.
유튜브 재생 횟수로 보면, K-POP에서는 트와이스가 가장 강세를 보여 전체 순위 2위에 올랐다. 르세라핌은 데뷔한 지 1년 미만이지만 동영상 재생 횟수 134만 회를 기록했다. 아이브는 트위터에서 ‘좋아요’가 2만 회를 넘겼지만, 유튜브에서의 재생 횟수는 타그룹에 비해서 높지 않았다.
트와이스와 니쥬는 일본인들에게도 이미 알려진 그룹들이지만, 나머지 3개 그룹은 첫 출연이거나(아이브, 르세라핌) 데뷔한 지 3년 미만인(제이오원) 그룹이다. 르세라핌은 일본어 가사의 노래도 발표하지 않은 단계에서 출연자로 선정돼 시청자들로부터 비판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그룹은 빌보드 재팬 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는 그룹들이다. 빌보드차트는 음반 판매에 더해서 음원 다운로드나 스트리밍 서비스의 재생수도 포함해 평가하고 있다. 방송을 통해서 음악을 접하는 세대에게는 이 그룹들이 무명으로 비쳤을 수 있다. 일본 젊은 세대의 트렌드를 조사하고 있는 회사의 보고서에 의하면,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아티스트 중 상위 3팀이 한국 아이돌 그룹이다.7) 그중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이번에 <홍백가합전>에 출연한 아이브였다. 젊은 층에서는 일본에서 데뷔하기 전에도 한국 아이돌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브의 일본 데뷔는 2022년 10월이었지만, 한국에서는 1년 전인 2021년에 데뷔했고 신곡 재생 수가 1억 회를 돌파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그룹이다. 젊은 세대의 눈에서 본다면, 아이브가 <홍백가합전>에 출연하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번 <홍백가합전> 출연 이후 제이오원, 아이브, 르세라핌에 대한 구글 검색량이 일본에서 급증했다. 지금까지 한일관계를 이유로 K-POP 아이돌을 출연시키는 것을 주저했던 NHK도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NHK가 한국과 관련있는 다섯그룹을 이런 이유만으로 홍백전에 출연시키는 판단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23년은 일본에서의 K-POP 인기가 인터넷에서 지상파 방송까지 확대되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1) 한자로는 ‘初詣’라고 표기한다. 새해가 밝았을 때 신사나 절을 참배해서 지난해에 대한 감사와 함께 새해의 소원을 비는 문화다. 많은 사람이 참배가 끝난 후에 오미쿠지라는 것을 뽑아서 한 해의 운세를 알아보기도 한다. 1월 1일에는 일본 전국의 유명한 사찰이나 신사에 하츠모우데를 하기 위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2) 요미우리신문 온라인 2023년 1월 5일 자.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 참조. https://www.yomiuri.co.jp/culture/tv/20230104-OYT1T50071/2/
3) 1회는 1951년 1월 2일, 2회는 1952년 1월 3일에 방송됐다.
4) NHK에는 방송국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10대 장수 프로그램이 있다. 그중에서 NHK <홍백가합전>은 4번째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장 긴 역사를 가진 프로그램은 NHK <노도지만>(KBS1의 <전국노래자랑>과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1946년부터 시작됐고 TV 방송은 1953년 3월부터 시작됐다. 두 번째는 스모 중계로 1953년 5월부터 방송됐다. 세 번째는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 대회 중계로 1953년 8월부터 방영됐다.
5) 1989년부터 2019년까지의 시대를 지칭한다.
6) 비디오리서치 자료에 의하면, 텔레비전 아사히의 연말 프로그램 시청률은 11.2%, 후지 텔레비전은 13.2%를 기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