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 상세
[미디어월드와이드] 영국
미디어월드와이드 | 등록일 : 2023-03-31

최근 영국에서는 작고한 작가 로알드 달(Roald Dahl)1)과 그의 작품들이 새삼 화제다. 출판사가 최근의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작 일부를 편집해 출판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들어 BBC, 가디언 등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일제히 이에 대한 보도를 하기 시작했고, 카밀라 왕비(Camillla, the Queen Consort)가 공식석상에서 이에 반대한다고 발언2)하는가 하면 리시 수낵(Rishi Sunak) 총리 또한 그의 공식 대변인을 통해 “문학작품이 보존되고 변형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3)

 

영국인이 다른 나라 국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책을 많이 읽고 좋아한다고 하지만,4) 이렇게 한 작가에 대한 기사가 연일 국민적 관심을 받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만큼 로알드 달은 현대 영국 문학, 특히 아동문학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다. 사실 그는 한국에서도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5)과 《마틸다(Matilda)》 등 여러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1990년 그가 74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BBC와 가디언 등 영국의 주요 언론은 일제히 “영국 문학의 큰 손실”이라 표현하며 애도한 바 있다.6)


로알드 달의 작품 세계

 

로알드 달은 1916년생으로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나 노르웨이인 부모로부터 북유럽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7) 실제로 그의 작품 속에는 노르웨이인 할머니나 북유럽의 신화적 요소들(예를 들어 트롤)이 종종 등장한다.8) 그는 영국의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작문과 운동 등에 두각을 나타냈으나, 기숙사형 사립학교 특유의 엄격한 교칙과 학우들의 괴롭힘으로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자술했다.9) 이후 성인이 된 로알드 달은 제2차 세계대전에 공군으로 참전하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 시기 그의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들이 주요 일간지와 잡지 등에 실리면서 유명세를 얻다가, 월트디즈니사의 주문으로 처음 아동을 독자로 한 작품인 《그렘린(The Gremlins)》을 출판했다.10) 원래 월트디즈니사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을 목적으로 주문했던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등의 이유로 연기되다가 끝내 영화화되지 못했다.11)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원작에 주인공이 너무 많고 이야기가 복잡해 한 편의 영화로 만들기 곤란했던 점과 월트디즈니와 로알드 달의 창작적 견해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12)

 

현재 로알드 달의 작품은 전 세계 6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2억 5,000부가 넘게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13) 그가 아동 문학계에 미친 영향은 가히 측정하기 힘들 정도고, 특유의 블랙코미디 및 풍자적 표현 덕분에 비단 아동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그의 작품은 상상력이 넘치는 세계관, 기묘한 캐릭터와 블랙유머로 유명한데, 평론가들은 그가 가난, 학대, 차별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를 가볍게 건드리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평가했다.14) 


작품에 대한 논란

 

로알드 달의 작품이 논란이 된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의 작품에 대해 가장 자주 언급되는 비판 중 하나는 내용이나 묘사가 매우 폭력적이고 불안정한 면이 있으며 일부 캐릭터가 인종 및 성차별적이라는 점이다.15) 예를 들면, 《찰리과 초콜릿 공장》에 등장하는 성실한 작은 사람들인 ‘움파룸파(Oompa-Loompa)’는 아프리카의 가장 깊고 어두운 정글(the very deepest and darkest part of the African jungle)에서 온 동물 가죽(animal skins of some kind)을 입고 다니는 종족으로 묘사된다. 이는 아프리카나 흑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 고정관념으로 비판받아왔다.16) 또한, 《마녀를 잡아라(The Witches)》에서는 등장인물인 마녀들에 대해 악마 같고, 못생겼으며, 괴상한 덩치를 가진 것으로 묘사했는데, 어떤 평론가들은 이에 대해 여성차별적이며,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내 친구 꼬마 거인(The BFG)》에서는 특정 등장인물을 표현할 때 ‘야만인’과 ‘식인종’ 등의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역시 원주민들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 관념을 강화한다는 점에 있어서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리고 《창문닦이 삼총사(The Giraffe and the Pelly and Me)》에서는 특정 등장인물이 ‘소인종(pygmies)’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신장이 작은 인종에 대한 모욕적인 표현이며 문화 다양성에 둔감한 표현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17)


사실 이러한 비평은 2000년대 이후 재조명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1990년에 사망한 로알드 달 자신은 작품에 대한 비판에 직접적인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작가는 생전에도 특정 문제에 관해 논란을 일으키는 발언을 한 적이 많았다. 예를 들면, 유대인을 향해 차별적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이와 관련해 자신은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대우를 비판했을 뿐, 유대인 개개인에게 유감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18) 

 

그런데 이 작가와 작품에 대한 논란은 2017년 유족이 공개 사과를 하면서 파장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유족은 생전 로알드 달의 유대인과 소수인종에 대한 표현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이 사과문에서 유족은, 작가의 발언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여성과 장애인에게 “부적절하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이 때문에 상처 입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런 편견적 발언들은 우리도 이해하기 힘들고, 다음 세대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훌륭한) 작품의 핵심적 가치와도 상반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이러한 주장이 논란이 된 것은 유족이 원작에서 문제가 되는 표현과 내용을 수정하겠다고 밝히면서였다. 유족이 인종차별과 학교 폭력, 따돌림 피해자를 돕는 시민단체들과 협력해 공감 가능한 표현으로 편집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러한 유족의 성명에 대해 출판사 측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다가, 2020년 미국판을 편집하면서 일부 문제가 된 단어들을 수정했다.19)


작가 사후 편집의 쟁점


영국에서 출판된 작품을 미국에서 출판할 경우,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표현과 문화 차이로 인해 종종 편집을 하기 때문에20) 이를 관행적인 번역 방식으로 보는 경향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중요 문학작품을 검열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시작한 것이다.

 

이 시점부터 쟁점은 작가의 표현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문제에서 벗어나, 출판사나 유족 등 저작권 상속자가 작가 사후에 작품 편집을 할 수 있는가로 옮겨갔다. 다시 말하면, 작품 속의 문제적 표현보다 그것의 검열에 대한 찬반이 더 큰 쟁점이 된 것이다. 법적으로 영국에서 작가 사후 원작을 편집할 수 있는 권한은 저작권자, 출판과 배포에 관련된 이해당사자들에게 있다. 때문에 이해당사자들만 찬성한다면, 작가가 생전에 이 문제에 대한 특별한 반대의견을 출판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은 이상,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이다. 만약 작품이 저작권법상의 보호를 받고 있다면, 출판사는 저작권자, 일반적으로는 고인의 유산을 상속한 유족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여론상으로 볼 때, 찬성하는 측에서는 이와 같은 사후 편집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미성년자가 독자층인 아동문학에서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고, 차별주의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문제가 되는 단어들의 사용을 지양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작가의 동의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편집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아동들도 훌륭한 문학작품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편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 측에서는 로알드 달의 작품들에 표현된 문제적 단어들 또한 역사적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이며 그 시대의 문화적인 흔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원작의 단어들을 보존하는 것이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작품에 대한 해석은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21) 때문에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서 일부는 한때 명작으로 읽혔다 할지라도,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책들은 사라지는 것이 맞고, 어린이들은 새 시대의 가치관에 맞는 더 나은 작품을 접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미 출판 및 유통돼 가정 및 학교 혹은 도서관 등에서 보관 중인 작품들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출판사에서 편집본 발행을 발표한 이후로 비판 여론이 더 거센 것을 볼 수 있는데, 주로 작가들을 중심으로 악의적인 검열에 대한 경각심에 날을 세우고 있다. 예를 들어 출판사 측을 비판한 이들 중에는 부커상(The Booker Prize) 수상자기도 한 살만 러시디(Salman Rushdie)가 포함돼 있는데, 그는 출판사의 편집 행위가 명백한 검열이며, 출판사와 유족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작가 7,000여 명이 회원으로 있는 미국 펜 아메리카(PEN America)의 회장 수잔 노즐(Suzanne Nossel)은 작가의 동의 없는 편집이 악의적인 동기로 행해질 때의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22)


출판사의 유턴

 

논란이 거세지자 결국 출판사는 로알드 달의 작품들을 수정 없이 원래대로 출판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독자들이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과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을 담은 서문을 추가할 예정이다.23) 이러한 결정은 영국 대중과 작가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모양새다. 애초 편집본 발행을 발표했을 때, 출판사인 퍼핀(Puffin)사는 이 훌륭한 작품들이 현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기를(the books can continue to be ‘enjoyed’ by all today)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작품이 사랑받을 수 있도록 편집을 강행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보다는 ‘팔릴’ 수 있게 하기 위한 작업이었다는 해석이 자연스럽다. 실제 작가의 유족은 2021년 로알드 달의 지적재산권을 약 7,600억 원에 넷플릭스에 판매했으며, 자산과 경영에 관한 문제에는 여러 주주와 이해당사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양새다.24)


결국 출판사 측이 편집본을 파기하고 다시 원작으로 출판을 지속하기로 한 결정은, 표면적으로는 작가의 권리 및 원작을 보호하고자 하는 힘의 승리라고 하지만, 사실 자본주의의 논리에 출판사와 이해당사자들이 잠시 고개를 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건과 별개로 최근 유명한 영화 시리즈의 원작인 소설 《제임스 본드(James Bond)》의 지적 재산권을 가지고 있는 이안 플레이밍 출판사(Ian Fleming Publications Ltd) 또한 소설의 원작에 나타난 문제적 표현을 고치겠다고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제임스 본드가 악당으로 등장하는 흑인들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25) 올해 4월 원작 소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의 초판 70주년을 맞아 기획한 행사라고 하니, 정치적 중립성을 가지는 표현에 대한 논란이나 작가의 의사와 상관없는 편집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 영국식 발음으로는 ‘루알 달’에 가깝지만 이 글에서는 한국에서 알려진 대로 ‘로알드 달’로 표기한다.

2) 카밀라 왕비는 그의 공식 독서모임의 2주년 행사에서 “(작가로서의) 소명을 다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제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Khomami, N., <Camilla tells authors to ‘remain true to calling’ amid Roald Dahl row>, The Guardian, 2023.2.23, https://www.theguardian.com/uk-news/2023/feb/23/camilla-roald-dahl-books-row

3) Kevin Rawl inson Mabel Banf ield-Nwachi & Shaffi, S., <Rishi Sunak joins criticism of changes to Roald Dahl books>, The Guardian, 2023.2.20, https://www. theguar d ian.com/books/2023/feb/20/roald-dahl-booksediting-philip-pullman

4) <Adult Literacy in the UK 2021>, National Literacy Trust, 2021, https://literacytrust.org.uk/parents-and-families/adultliteracy/

5) Dahl, R., 《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Puffin Books, 2016.

6) William H. Honan, <Roald Dahl, Writer, Dies at 74; Wrote Darkly Humorous Books for Children>, The New York Times, 1990.11.24, ht tps: //www.nytimes.com/1990/11/24/obituaries/roald-dahl-writer-74-is-dead-bestsellers-enchanted-children.html

7) https://www.roalddahl.com/museum/education/roald-dahl-heritage

8) 예를 들면, Dahl, R., 《The witches》, Random House, 2010.

9) Dahl, R., 《Boy: Tales of Childhood. Jonathan Cape》, 1984.

10) Dahl, R., 《The Gremlins》, Penguin UK, 2006.

11) Milnes, R., <“The Gremlins” and a Tale of Two Storytellers>, The Walt Disney Family Museum, 2011.8.19, https://www.waltdisney.org/blog/gremlinsand-tale-two-storytellers

12) Sturrock, D., 《Story teller: The authorized biography of Roald Dahl》, Simon&Schuster, 2010.

13) <Roald Dahl>, Biography.com, A&E Television Networks, 2020.4.15.

14) Treglown, J., 《Roald Dahl: A biography》, Open Road Media, 2016. West, M., 《Roald Dahl: The critical heritage》. Routledge, 2005. Lurie, A., 《Boys and girls forever: Children's classics from Cinderella to Harry Potter》, Penguin Books, 1992.

15) Anderson, H., <The dark side of Roald Dahl>, BBC, 2016.9.13, https://www.bbc.com/culture/ar ticle/20160912-thedark-side-of-roald-dahl

16) “Roald Dahl 's Racist Language is an Uncomfor table Blemish on His Otherwise Brilliant Work.” The Guardian, 2017.9.6.

17) West-Knights, I., <The BFG isn’t BFD>, Slate, 2023, https://slate.com/culture/2023/02/roald-dahl-censorshipbook-editing-controversy.html

Anderson, H., <The dark side of Roald Dahl>, BBC, 2016.9.13, https://www.bbc.com/culture/ar ticle/20160912-thedark-side-of-roald-dahl

18) Gol d, D., “Roald Dahl and the scandalous antisemitism that lingers in his work”, The Guardian, 2018.9.22, Hirsh, D., “Roald Dahl and the Jews: a review of anti-Semitism in the Englishspeaking world”, Fathom Journal, 2018.

19) “A statement from Puffin regarding the work of Roald Dahl”, Puffin, 2020.12.6.

20) McNally, R. <Book clinic: why are some titles changed from country to country?>, The Guardian, 2018.2.11, https://www.theguar d ian.com/books/2018/feb/11/book-clinic-titlechanges-harry-potter-rebecca-mcnally

21) Associated Press, <Roald Dahl rewrites: edited language in books criticised as ‘absurd censorship’>, The Guardian, 2023.2.20,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23/feb/20/roald-dahl-books-rewrites-criticism-language-altered 

22) Associated Press <Roald Dahl rewrites: edited language in books criticised as ‘absurd censorship’>, The Guardian, 2023.2.20,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23/feb/20/roald-dahlbooks-rewrites-criticism-languagealtered

23) Shaffi, S. & Knight, L., <Roald Dahl publisher announces unaltered 16-book c lass ics collection>, The Guardian, 2023.2.24,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23/feb/24/roald-dahl-publ isher-announcesunaltered-16-book-classics-collection

24) The Roald Dahl Estate's official website, https://www.roalddahl.com/

25) Shaf fi, S., <James Bond novels to be reissued with racial references removed>, The Guardian, 2023.2.27, https://www. theguar d ian.com/books/2023/ feb/27/ james-bondnovels-to-be-reissued-with-racialreferences-removed

저자의 다른 미디어
  • 필자 : 엄새린
  • 소속 :
  • 직함 :
  • 발행 : 2023-03-31
  • 조회수 : 15
  • 키워드 :
블로그 공유 트위터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