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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영국 미디어에서는 편집자의 선택이 사회적 논란을 가져온 두 가지 사건이 벌어졌다.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의 ‘최초 여성’ 캔터베리 대주교(Archbishop of Canterbury) 임명 보도와, 패션 잡지의 단체 사진 편집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건들은 서로 다른 매체와 형식이었지만, 공통적으로 ‘편집적 지우기(editorial erasure)’가 어떻게 권위와 대표성을 재구성하는지를 드러냈다.
전자는 인물의 직무나 책임보다 성별을 전면에 드러내 역사적 사건을 ‘예외적 사건’으로 프레이밍한 사례였고, 후자는 플랫폼 최적화라는 이유로 이미지 편집을 통해 의미를 구성하는 재현의 정치학을 보여준 사례였다. 두 사건은 특정 주체가 ‘포함되되 주변화되는’ 방식으로 반복 경험될 때 논쟁이 구조적 문제로 확장됨을 시사한다. 이 글에서는 언어 및 시각적 지우기가 상징적 말살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정리하고, 영국의 자율 규제와 방송 규범 체계 속에서 실무적 개선 지점을 제안하고자 한다.
최초의 여성 대주교 탄생, 기사는 ‘여성’에 주목해
2025년 10월 3일, 영국 성공회는 사라 멀앨리(Dame Sarah Mullally)를 제106대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로이터는 이를 최초의 여성 대주교 탄생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전하며, 일부 보수 성향의 반대와 긴장 국면도 함께 언급했다.1) 2) 또한 영국 정부 역시 같은 날 임명 관련 공지를 게시해, 해당 직위가 갖는 국가적 상징성을 재확인했다.3)
그런데 여성 대주교의 임명 자체에 있어서는 호의적인 반응이 있었던 반면 이를 보도하는 기사가 나간 후 논란이 생겼다. 일부 기사에서 당사자의 이름이 즉시 제시되기보다 여성(woman)이라는 일반명사가 먼저 등장하고, ‘여성 최초’라는 사실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예컨대 스카이뉴스(Sky News)는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캔터베리 대주교가 되다(Woman named as new Archbishop of Canterbury in historic first)”라고 보도했다.4) 심지어 기사 내에서는 새로운 주교의 이름보다 그녀의 남편인 이먼 멀앨리(Eamonn Mullally)를 먼저 언급하기까지 했다. 사라 멀앨리는 간호사 출신으로 NHS(National Health Service)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간호 및 조산 분야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훈장(DBE, Dame Command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수훈한 인물이다. 그리하여 성공회의 최고 지도자가 된 인물을 보도하며, 그의 직무나 전문성보다 여성이라는 사실이나 남편의 정보가 먼저 전달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5)
이 문제는 표현의 취향이 아니라 프레이밍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로버트 매튜 엔트만(Robert M. Entman) 조지워싱턴대 교수에 따르면 프레임은 무엇을 선택·강조할지를 결정해 수용자의 해석을 구조화한다.6) 즉, 헤드라인에서 ‘이름과 직위’ 대신 ‘성별 범주’를 먼저 제시하는 관행은, 여성 지도자를 ‘표준적 권위의 주체’가 아니라 ‘예외적 사건’으로 재구성할 가능성을 높인다. 페미니스트 미디어 연구는 이러한 ‘첫 여성’ 담론이 축하와 제약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음을 지적해 왔다.7) ‘유리천장을 깼다’는 서사 자체는 중요하지만, 그 서사가 관행화될 때 여성은 종종 능력·정책·책임의 행위자라기보다 성별의 상징으로 소비되기 쉽다.
더구나 캔터베리 대주교는 단순한 상징직이 아니다. 국가적 공공성, 종교적 권위, 사회적 갈등 조정과 같은 영역에서 발언권을 갖는다. 따라서 보도가 인물의 권위를 언어적으로 주변화하는 순간, 공론장에서 책임성과 정당성의 조건도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2026년 초 가디언(The Guardian)은 해당 임명을 둘러싼 비판과 피해자 관점의 문제 제기를 보도하며, 대주교직이 수행해야 하는 공적 책임(특히 안전보장 논쟁)을 환기했다.8) 이런 맥락에서 임명 소식을 다루는 방식은 사소한 문장 선택을 넘어, 권력·책임·정당성의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는 핵심 장치다.
사진 밖으로 사라진 로제? 크롭이 만든 ‘부재’의 의미
두 번째 사건은 전형적인 플랫폼 시대의 미디어 논쟁이다. 영국 패션지 《엘르(ELLE UK)》가 파리 패션위크 기간 생로랑 쇼 관련 단체 사진을 게시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이때 원본 단체 사진에 포함됐다고 알려진 블랙핑크 멤버 로제(Rosé)가 소셜미디어 게시물에서 의도적으로 편집된 듯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논쟁은 곧바로 온라인으로 확산됐고, 일부는 이를 서구 패션 미디어 장에서 아시아 여성 셀러브리티가 겪어온 조건부 가시성의 문제로 해석했다.9) 10)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의도의 단정이 아니라, 플랫폼 출판의 루틴이 생산하는 예측 가능한 위험이다. 오늘날 이미지 편집은 기사 본문처럼 ‘편집 데스크의 정교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썸네일, 비율, 피드 최적화를 위한 신속한 크롭(crop)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회학자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이 강조하듯, 재현(representation)은 선택, 분류, 배치의 체계이며, 이미지는 단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구성’한다.11)
따라서 크롭은 기술적 절차가 아니라 의미 생산 행위다. 누가 중앙에 위치하고, 누가 프레임 밖으로 밀려나는지는 사회적으로 누가 중요한가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이 사건이 특히 민감하게 수용된 이유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 관점에서도 설명 가능하다. 법학자 킴벌리 크렌쇼(Kimberle Crenshaw)는 인종과 성별 같은 축이 결합된 형태로 차별과 배제의 경험을 만든다고 주장한다.12) 글로벌 문화 산업에서 아시아 여성은 가시성과 상품화가 동시에 진행되지만, 주류 제도(서구 패션 미디어 혹은 브랜드)의 상징적 게이트키핑 속에서 배제 가능성도 상시적으로 내재한다. 즉, 화면 크기 때문에 사진 일부를 잘랐다는 《엘르》 측의 설명이 사실일 수 있음에도, 그 결과가 특정 집단에 반복적으로 불리하게 작동해 왔다는 집단 기억이 존재할 때, 논쟁은 단일 사건을 넘어 구조적 문제로 확장된다.
편집적 지우기와 상징적 말살
이 두 사건은 편집적 지우기(editorial erasure)가 개입됐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첫 사건은 언어적 지우기가 개입됐으며, 두 번째는 편집자에 의한 시각적 지우기였다. 언어적 지우기는 헤드라인 문법과 호명 순서가 권위를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시각적 지우기는 프레임 경계가 존재 자체를 삭제하거나 주변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는 사회학자 게이 터크만(Gaye Tuchman)이 제시한 상징적 말살(symbolic annihilation) 논의와 맞닿는다.13) 말살은 반드시 완전한 부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소화(trivialisation), 주변화(marginalisation), 조건부 포함(conditional inclusion) 또한 상징적 말살의 방식이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이 등장했는가보다 어떤 방식으로 등장했는가(혹은 어떤 방식으로 지워졌는가)가 중요하다. 여성성의 강조는 이름과 직무의 실체를 흐리게 했고, 크로핑은 인물을 프레임 밖으로 밀어냈다. 형식은 다르지만 결과는 유사하다. 특정 주체의 권위와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편집 디자인은 편집 윤리”라는 인식 전환 필요
영국의 미디어 거버넌스는 단일 규제기관이 모두를 통제하는 모델이 아니다. 매체 유형별로 규범이 분절돼 있으며, 사건 성격에 따라 실질적 책임 메커니즘이 달라진다.
첫째, 출판(신문·잡지·온라인 기사)의 많은 영역은 IPSO(Independent Press Standards Organisation)의 편집자 실무 준칙(Editors’ Code of Practice)이라는 자율규제 체계하에 있다.14) 15) 관련 조항은 정확성(Clause 1, Accuracy)과 차별금지(Clause 12, Discrimination)다. 정확성 조항에서는 본문뿐 아니라 이미지와 헤드라인까지 포함해 오도나 왜곡을 피할 주의 의무, 중대한 오류의 신속한 정정 의무를 요구한다. 차별 금지 조항은 보호 특성에 대한 경멸적·편견적 언급을 금지하며, 불필요한(irrelevant) 방식으로 보호 특성을 부각하지 않도록 요구한다.
또한 허스트(Hearst UK)의 연례 성명에는 《엘르》를 포함한 브랜드들이 언급돼, 《엘르》가 이러한 규범 환경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16) 다만 IPSO는 대표성 논란을 전부 판단하는 기관이 아니라, 조항 위반 여부와 관련된 구체적 쟁점이 있을 때 작동하는 절차다.
둘째, 방송은 오프콤(Ofcom)의 방송 준칙(Broadcasting Code) 적용을 받는다. 여기서 뉴스 관련 규범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핵심은 제5절 적정한 공정성 및 적정한 정확성(Section Five: Due impartiality and due accuracy)이다.17) 물론 제2절 해악과 불쾌감도 공적 기준의 일부이지만, 뉴스·시사 보도에 관한 정확성을 말할 때는 제5절을 중심으로 제시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다만 이번 대주교 사건 논쟁은 방송의 내용 자체보다 온라인 기사 헤드라인과 서술 프레이밍에 비판이 집중된 측면이 있어, 실질적 책임은 규정 적용뿐 아니라 매체 내부의 편집 정책과 정정 관행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셋째, 광고 규정은 ASA(Advertising Standards Authority)가 캡코드(CAP Code) 기준으로 관리하며, 유해한 젠더 고정관념에 관한 가이던스를 포함한다.18) 19) 그러나 이는 광고(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 한해 적용되며, 일반적인 편집 기사에는 직접 적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가이던스는 “대표성이 해악(harm)과 연결될 수 있다”라는 규범적 전환을 보여주는 비교 지점으로 유용하다.
마지막으로 2010년 「평등법(Equality Act 2010)」은 성과 인종 등을 보호 특성으로 규정해 영국 사회의 차별 금지 원칙을 제도화하지만, 일반적으로 언론의 편집 프레이밍을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기사 작성 규칙’은 아니다.20) 다만 이 법과 영국 평등 및 인권위원회(EHRC)의 안내는 공중이 대표성 논란을 윤리 및 권리의 언어로 해석하는 사회적 배경을 제공한다.21)
두 사건이 미디어 실무자에게 주는 함의는 단순하다. 오늘날 편집 윤리는 사실 확인이나 균형성만이 아니라, 형식의 영역(헤드라인 템플릿, 네이밍 규칙, 사진 크롭과 썸네일, 플랫폼 포맷)에서도 구현된다. 따라서 가장 현실적인 대응은 개인의 의도를 심문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세스상의 위험을 줄이는 제도적 설계다. 이름을 뒤로 미루는 헤드라인 문법과, 신속한 크롭 및 썸네일 편집은 각각 언어와 이미지의 차원에서 특정 주체의 전문성, 책임,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상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때 필요한 대응은 개별 편집자의 해명 경쟁이 아니라, 네이밍 규칙, 템플릿, 사진 편집 체크리스트 등 플랫폼에서의 루틴을 윤리의 대상으로 재설계하는 일이다. 결국 “편집 디자인은 편집 윤리”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며, 이는 신문 및 방송이 공론장에서 누구를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에 대한 책임을 구체적 프로세스로 환원하는 실천적 출발점이 될 것이다.
1) Muvija M., <Church of England names first female Archbishop of Canterbury>, Reuters, 2025.10.3, https://www.reuters.com/world/uk/uk-names-mullally-first-female-archbishop-lead-church-england-2025-10-03
2) <Anglican grouping GAFCON objects to female Archbishop of Canterbury>, Reuters, 2025.10.3, https://www.reuters.com/world/anglican-grouping-gafcon-objects-female-archbishop-canterbury-2025-10-03/
3) <Appointment of the Archbishop of Canterbury: 3 October 2025>, UK Government, 2025.10.3, https://www.gov.uk/government/news/appointment-of-the-archbishop-of-canterbury-3-october-2025
4) <Woman named as new Archbishop of Canterbury in historic first>, Sky News, 2025.10.3, https://news.sky.com/story/womannamed-as-new-archbishop-of-canterbury-in-historic-first-13443328
5) Nasr, R., <‘Not Her Husband’s Achievement’: Sky News slammed for gendered coverage of first female Archbishop of Canterbury>, Women’s Agenda, 2025.10.8, https://womensagenda.com.au/latest/from-archbishop-to-afterthought-in-gendered-headlines-apersistent-bias-in-2025
6) Entman, R.M.(1993), <Framing: Toward clarification of a fractured paradigm>, Journal of Communication, 43(4), pp.51–58
7) Gill, R.(2007), 《Gender and the media》, Polity
8) Weaver, M., <New archbishop of Canterbury not fit for job, says alleged church abuse victim>, The Guardian, 2026.1.8, https://www.theguardian.com/uk-news/2026/jan/08/sarah-mullally-incoming-archbishop-of-canterbury-complaint-dismissed-allegation
9) HYEON YE-SEUL, <Elle UK apologizes for cropping Blackpink’s Rosé from group photo>, Korea JoongAng Daily, 2025.10.3, https://koreajoongangdaily.joins.com/news/2025-10-03/entertainment/kpop/Elle-UK-apologizes-for-cropping-Blackpinks-Ros-from-groupphoto/2414432
10) <Elle UK apologises for cropping Blackpink’s Rose from group photo at Paris Fashion Week>, The Straits Times, 2025.10.2, https://www.straitstimes.com/elle-uk-faces-backlash-for-cropping-blackpinks-rose-from-group-photo
11) Hall, S.(ed.)(1997), 《Representation: Cultural representations and signifying practices》, Sage Publications & Open University
12) Crenshaw, K.(1989), <Demarginalizing the intersection of race and sex: A Black Feminist Critique of Antidiscrimination Doctrine,
Feminist Theory and Antiracist Politics>, University of Chicago Legal Forum, 1989(1), pp.139–167
13) Tuchman, G.(1978), <The symbolic annihilation of women by the mass media>, 《Hearth and Home: Images of Women in the Mass Media》, Oxford University Press
14) <The Editors’ Code of Practice>, Clause 1(Accuracy), IPSO
15) <The Editors’ Code of Practice>, Clause 12(Discrimination), IPSO
16) <Hearst UK Annual Statement 1 January 2023–31 December 2023>, IPSO, 2024
17) <The Ofcom Broadcasting Code (with the Cross-promotion Code and the On Demand Programme Service Rules)>, Ofcom, 2020.12.31(Last updated: 2023.6.12), https://www.ofcom.org.uk/tv-radio-and-on-demand/broadcast-standards/broadcast-code
18) <Harm and offence: Gender stereotypes>, ASA, 2025.9.23, https://www.asa.org.uk/advice-online/harm-and-offence-genderstereotypes.html
19) <Harm and offence: Sexual orientation and gender identity>, ASA, 2025.3.12, https://www.asa.org.uk/advice-online/offence-sexualorientation.html
20) Equality Act 2010, s.4, UK Government
21) <Equality Act 2010: Who the Equality Act protects>, Equality and Human Rights Commission, 2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