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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포럼] 북리뷰 《내러티브 뉴스》
미디어포럼 | 등록일 : 2023-04-28

 


 

‘백인 우월주의자’, 이민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반(反)이민주의자’, ‘감정적이고 거짓말을 하는 신뢰할 수 없는 대통령’, ‘러시아와 공작을 벌여 대통령이 된 인물’ 등.

 

미국의 전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들이다. 뉴욕타임스, CNN 등 주요 언론사를 ‘미국인의 적’, ‘가짜뉴스’라고 규정하면서 백악관 기자회견에도 못 들어오게 한, 민주주의와 언론에 위협이 되는 인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탐사보도 전문기자가 있다. 《내러티브 뉴스(원제: Slanted)》의 저자, 셰릴 앳키슨(Sharyl Attkisson)이다. 40년 이상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탐사보도상을 수 차례 받았고,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을 지지하지도 않는 저자는 트럼프에 대한 이러한 인식들이 조직적으로 전개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내러티브’ 때문이라고 말한다. 앳키슨에 의하면 내러티브는 새로운 용어가 아니다. 원래 내러티브는 기자들이 다른 누군가가 뉴스를 설계하고 만들어 내려고 시도하는 것을 잡아냈을 때 묘사하는 단어였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내러티브를 “힘 있는 자들이 시민의 견해를 규정하고 제한하기 위해 들려주고자 하는 스토리라인”으로 재정의하면서, 이제 언론인 스스로가 그런 짓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트럼프에 대한 언론의 과장된 보도

 

그 대표적인 예로 소개되는 것이 바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사례다. 앞서 말한 것처럼 트럼프에 대한 대부분의 인식은 백인 우월주의자, 반이민주의자, 거짓말쟁이, 러시아의 부적절한 지원을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트럼프에 대한 인식이 주류 언론과 반트럼프 단체가 함께 만들어낸 트럼프에 대한 ‘내러티브’라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트럼프에 대한 사실, 진실은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이전에 유력한 흑인 미디어와 정치인들에게 칭찬을 받았고 대중 매체들에서 우호적으로 다뤄졌었다는 점에서 백인 우월주의자가 아니며, 합법적인 이민자냐 아니냐에 따라 이민자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합법적 이민자 찬성론자, 불법적 이민자 반대론자’이지 반이민주의자가 아니다. 또 트럼프가 타고난 거짓말쟁이라는 인식도 언론의 과장과 차별적인 묘사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2017년 뉴욕타임스가 발표한 ‘트럼프의 거짓말’ 목록은 명백한 실수와 과장까지도 나쁜 의도를 가진 거짓말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또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 발언의 약 40% 정도가 허위로 드러났지만, 언론은 바이든은 ‘실수쟁이’로, 트럼프는 ‘거짓말쟁이’로 차별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CNN 헤드라인 역시 트럼프의 실수는 ‘이상한’, ‘황당한’, ‘엉망’, ‘야단법석’ 등으로 묘사되지만, 전임자인 오바마의 실수는 단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선별된’ 등으로 묘사된다. 러시아의 선거 개입 의혹 역시 특검을 통해 이미 혐의없음으로 결론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트럼프에게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저자는 이처럼 트럼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언론이 트럼프에 대해 만든 내러티브 때문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트럼프는 언론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에 대한 잘못된 내러티브는 실제 연구를 통해서도 밝혀졌다. 알베르토 마르티네즈(Alberto A. Martinez) 텍사스대 교수가 쓴 《미디어 vs 어프렌티스: 마왕 트럼프(The media versus the apprentice: The devil Mr. Trump)》 에 따르면, 트럼프에 대한 미디어의 내러티브는 그가 ‘위험천만한 바보이자 의문의 여지 없는 악당’이고, 뉴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그 누구보다도 소수 인종과 여성들을 모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발언 등을 분석한 결과는 달랐다. 트럼프는 인종, 출생, 성별, 성적 지향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공평하게 공격하고 있었고, 특히 부유한 백인 남성을 가장 신랄하게 모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저명한 백인 남성들에게 가장 심한 독설을 내뱉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기사는 하나도 없었다. 이밖에도 앳키슨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AP, NBC 등 유수의 언론이 트럼프 정부에 대해 잘못 보도한 50개의 사례를 부록에서 별도로 제시하며, 언론의 내러티브로 인해 트럼프에 대한 사실이 변형되고 진실이 왜곡된 실태를 보여준다.


미 언론에 대한 내부 고발서

 

그렇다면 언론은 왜 트럼프를 이렇게 잘못된 방식으로 재현했을까. 왜냐하면 해당 언론이 상정한 트럼프 대통령의 내러티브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앳키슨은 “진실이 내러티브에 맞지 않을 때 뉴스는 진실을 버린다”고 주장한다. 내러티브를 실현하기 위해 기자는 기사를 작성하기 전부터 이미 상정했던 결말과 맞지 않는 사실들은 버리고, 미확인 정보에 의존해 편파적인 방식으로 보도하며, 기사가 가지는 태생적 중요도 이상으로 미디어를 통해 중요도를 증폭시킨다. 또 잠재적 반론에 대해 어떤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내러티브에 빠진 기자들과 미디어는 사실과 정보 및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입장을 이용자에게 설득하고 이러한 내러티브를 확장하는 것을 그 목표로 삼는다. 이로 인해 비슷한 사실과 진술들이 미디어의 의도와 내러티브에 의해 다르게 다뤄지면서 미디어에 의해 정치화되고, 이러한 모순 속에서 대중의 신뢰는 침식돼 간다.

 

내러티브가 나타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어떤 특정 목적을 위해 다른 사실들에 혼란을 주거나 다른 사실들을 덮어버리는 식으로 제시되면서 진실된 정보가 고의적으로 편향된 방법으로 제시되는 경우, 둘째, 보다 확대된 스토리라인을 만들기 위해 어떤 개별 뉴스의 가치를 필요 이상으로 확대하는 경우, 셋째, 어떤 이슈를 재고할 필요도 없는 종결된 사건인 것처럼 서술하거나 그것과 반대되는 사실과 견해는 불법인 것처럼 서술하는 경우 등이다. 이러한 내러티브를 통해 특정 아이디어를 사회 속에 깊숙이 심음으로써 더 이상 그에 대해서 질문이 나오지 않도록, 아니 아예 질문할 생각조차 못 하게 하는 것이 내러티브의 목적이다. 앳키슨은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행위자가 흔히 언급되는 정부와 정치인, 이익단체뿐 아니라 본인이 근무했던 CBS, 세계에서 존경받는 신문인 뉴욕타임스, CNN, 전문가들과 여론조사 회사, 검찰까지 광범위하다는 점을 경험담과 다양한 사실 증거를 통해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확인된 사실보다는 왜곡된 인식 또는 진실을 왜곡하려는 의도에 맞춰 뉴스를 제작, 보도하는 미국 언론에 대한 내부 고발서다. “언론인들은 사실을 밝히기보다 내러티브를 충족시키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는 표현은 팩트체크 뉴스를 상시 제작하고 언론사 편집국 내에 팩트체킹 시스템을 가진, 사실과 진실 추구를 제1원칙으로 삼고 있는 미국의 주요 언론이 자신들이 들려주고 싶은 사실과 이용자가 믿도록 만들고 싶은 이야기만을 제공하기 위해 사실과 진실을 왜곡하고,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내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사실과 의견의 구분 원칙이 내러티브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기자·매체가 가진 선입견이나 편견을 바탕으로 편향적인 취재와 보도를 하는 행태, 믿을만한 취재원이 제공한 정보를 사실이라 전제하고 시작하는 취재, 스스로 취재하여 확인한 사실을 바탕으로 기사를 쓰기보다는 내러티브에 맞춰 사실을 선별적으로 사용하는 언론에 대한 신랄한 비판서다. 저자는 직접 체험한 다양한 사례를 통해 언론이 사실 확인과 보도, 사실과 의견 분리라는 저널리즘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원칙을 방기한 채 사실을 조작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모습을 고발하고 있다.


한국 언론에 질문을 던지다

 

내러티브라는 용어는 다소 낯설지만, 특정 정치 세력이나 이익집단, 정부에 의해 진실이 감춰지거나 왜곡되고, 뉴스가 이에 동조하거나 주요 행위자로 등장하는 현실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다르지 않다. 필자가 사실확인 관행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인터뷰했던 주요 언론사 에디터들은 “호랑이 등에 올라탄다”, “사회의 흐름을 타고 쭉 간다”는 말을 했다. 사회에서 주류로 받아들여지는 관점, 요구되는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을 선별·보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안일수록 독자, 여론, 발행인에 의해 만들어진 ‘요구된 사실’로 인해 사실이 아님에도 이에 동조하는 기사를 작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 농단과 관련해 민간인 최서원이 대통령의 연설문 모두를 수정했다는 이야기,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등은 사실이 아니지만(사실은 최서원이 수정했다고 밝혀진 것은 전체 대통령 연설문 중 일부였고,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사과를 한 적이 있었다는 점에서), 당시 이슈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 얘기이기 때문에 이런 맥락의 기사, 이런 사실을 담은 기사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내러티브에 맞지 않아,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밝혔어야 하는 사실임에도 버려졌다는 얘기다. 물론 우리나라와 미국의 언론 상황을 고려했을 때 내러티브를 우리나라 언론에 직접적으로 매칭해 논의하긴 어렵다. 그러나 사실 확인에 대한 의무, 확인된 사실에 대한 존중, 사실과 의견의 구분 등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들이 무너져가고 있는 공통의 현실을 다룬다는 점에서 국내 언론인이나 언론학자를 넘어 일반인에게까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또 책을 읽는 내내 정파성에 따라 같은 사안도 달리 보도하는 언론의 모습, 비정치적인 문제도 정치적인 문제로 변질되어 보도되는 상황이 떠오르며 한국 언론 역시 내러티브의 행위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아쉬운 것은 번역된 책의 제목이다. 원서 제목은 <Slanted: How the news media taught us to love censorship and hate journalism> 이다. ‘Slanted’는 우리말로 굳이 풀어쓴다면 ‘경사진’, ‘편향된’이라 하겠는데, 미디어가 내러티브를 통해 의도한 방향으로 독자를 호도하는 모습을 적절히 표현했다고 본다. 이에 비해 국내 번역본의 제목인 ‘내러티브 뉴스’는 국내에서 뉴스를 보도할 때 자세한 인물 보도와 상황 묘사 등을 사용한 스토리텔링형 뉴스를 의미한다. 책에서도 ‘내러티브’와 ‘뉴스’를 별개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번역된 책의 제목이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오해의 소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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