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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경주와 포항의 지진, 코로나19,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 이태원 참사, 곳곳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사고,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빈대까지.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이 유행한다. 그 정도로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위험이 가득해 보인다. 지난 10년 동안 일어난 굵직한 사건·사고들은 이슈에 따라 다르지만 짧으면 몇 달, 길게는 몇 년 동안 미디어에 보도됐다. 정치권은 해당 이슈를 우연한 사고에 대한 개인의 책임, 또는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이라고 논쟁했다. 누군가는 이러한 사건·사고를 무심코 지나갔지만 많은 사람들은 일상에서 더 두려워하고, 긴장하고, 때론 공포와 무력감을 느꼈다. 위험한 상황은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불평등한 사회구조 내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기도 했다. 이렇게 위험은 우리를 둘러싼 미세먼지와 같이 일상적이고, 우리 삶에 알게 모르게 깊숙이 영향을 미치며 양면성을 지닌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늘 미디어가 있다.
시대·사회·개인에 따라 인식 다른 위험
당장 요즘 유행하는 빈대에 관한 기사를 떠올려 보자. 기사 제목을 보면, 빈대는 심각한 위험이다. ‘빈대 기승’, ‘빈대 비상’을 거쳐 ‘빈대 포비아’, ‘빈데믹’이 제목에 쓰이고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빈대 있다?’…빈대 출몰, 어느 정도길래>(매일경제), <‘초가삼간 태우는 심정으로’… 전국 지자체 빈대 잡기 비상>(SBS), <전국 공항 빈대 비상… 빈대 색출 긴급 방역>(국제신문), <지하철도 호텔도 무서워…‘빈대 박멸’ 팔 걷은 오세훈>(뉴시스), <英 부부 이집트 호텔서 사망, 옆방서 뿌린 빈대 살충제 때문이었다>(동아일보) 등의 보도가 잇따른다.
빈대에 물리면 가렵고 빈대를 쉽게 없애기 어렵다고 하지만 기사는 그 불편함을 공포로 바꾸고 있다. 예방이나 퇴치법을 알려주기보다는 현재 상황을 중계하면서 감정을 자극하는 표현과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핵심 쟁점은 외면한 채 사안을 정치화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우려된다. 그 사이 소셜미디어에는 바퀴벌레를 풀어 빈대를 잡는다거나, 빈대에 일부러 물려보는 장면 등 허구적이거나 극단적인 정보도 유통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빈대는 위험할까? 의학적 관점에서 빈대는 인체의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단지 해결해야 하는 위생의 문제다.
우리말로 번역되는 것은 모두 위험이지만, 위험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여러 개며 각각 의미가 다르다. 예를 들어 리스크(risk)는 가능성과 확률로 표현되는 기회와 손실의 확률을 모두 품고 있는 위험, 데인저(danger)나 해저드(hazard)는 대체로 부정적 결과만을 품는 위험이다. 위험과 함께 주로 쓰이는 말인 위기(crisis)는 부정적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매우 큰 사건이 막 발생한 경우 사용되는 표현이고 재난(disaster)은 주로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고나 기술적·정치적·사회적·자연적 재앙을 뜻하며, 위급(emergency)은 부정적 사건이 갑작스럽게 발생해 즉각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을 의미한다. 즉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위험이라는 용어는 실은 그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고 다뤄지는 방식 또한 달라질 수 있다.
위험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따라 변했다. 초자연적 신적 권위와 섭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명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인식에서, 통계학이 발달하면서 미리 계산·예측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성격의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현대로 오면서 위험은 이전보다 훨씬 거대하고 글로벌하며 끝나는 시점이 없고,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또 대개 눈에 보이지 않고 이론적으로만 논의 가능한 것이 많으며 이미 존재하는 불평등의 골을 따른다.
또한 위험은 동시대에도 어떤 문화 공동체에 속하느냐에 따라 달리 인식되고 이해된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에 의하면 한 사회는 집단성(사회 구성원의 삶에 집단에 대한 소속감과 집단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격자성(개인과 집단의 삶과 행동에 미치는 외부 규범의 강도)에 따라 위계주의, 평등주의, 운명주의, 개인주의 사회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위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자연,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위험 상황에 표출되는 비난에 대해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위험의 발생 가능성과 결과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개인별로 달라진다. 인지과학적으로 접근하는 학자들은 위험을 ‘부정적인 위험의 객관적 발생’과 ‘사람들의 주관적인 격렬 반응’의 합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같은 위험 상황도 공감하는 방식으로 처리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개개인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더 불안해지기도 하고 차분해지기도 한다. 이처럼 위험은 시간·공간·개인으로 이뤄진 다차원적인 상황 속에서 파악해야 하는 복잡한 현상이다.
위험을 매개하는 미디어의 역할과 방향성
《위험, 사회, 미디어》는 이처럼 사회학·심리학·문화 연구 측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한 김용찬, 김진희, 김예란 저자 3인이 각각의 고유한 관점-현대인이 겪는 위험의 문제를 후기 근대라는 시간적 흐름 속에 놓고 파악하는 사회학적 관점, 동시대의 위험 문제도 다른 공간의 다른 문화적 틀 속에 속한 구성원들은 매우 다른 것으로 인식하고 경험할 것이라는 문화적 접근, 그리고 그러한 시공간적 맥락의 틀의 영향을 받는 개인들의 인지 과정에서 위험이 어떻게 인식되고 경험되는지를 보는 인지과학적 접근 방식-으로 살펴본다. 책은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은 위험이 개인의 문제인지 공동체의 문제인지(2장), 위험 상황에서 사람들은 왜 연대 또는 적대의 이중적 모습을 보이는지(3장), 미디어는 위험의 해결자인지 촉진자인지(4장), 왜 위험을 과대 또는 과소평가하는지(5장) 살핀다. 또 미디어와 관련해 뉴스(6장), 엔터테인먼트(7장), 소셜미디어(8장)의 역할과 순기능, 역기능에 집중해 살펴봤다. 미디어가 위험을 다루는 방식을 자유·구속(9장), 사랑·혐오(10장), 평등·불평등(11장) 관점에서 짚어보기도 한다.
이처럼 위험과 관련된 가장 기초적인 개념 구분부터 영향까지 방대한 주제에 대해 질문을 제시하고 해답을 모색하면서, 저자들은 위험이 단지 객관적인 현실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임을 알려주고 위험을 매개하는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숙고를 촉구하며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위험과 재난을 객관적·물리적인 상황일 뿐 아니라 사회적·심리적·문화적 현상이면서 커뮤니케이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관적 현상으로 분석하고, 사회가 위험을 올바르게 다루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한국적 현실에 대응하며 제시한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 위험이 끊이질 않고 정치화되고 있으며, 책임자 규명이 부족하다는 점 등으로 인해 한국 사회가 위험 사회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사회에서 위험 문제를 다루는 사회적 자원, 즉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신뢰가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위험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고 커뮤니티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위험 사회인 것은 위험 상황에서 위험의 문제를 자신의 말로, 자신의 느낌으로, 자신의 시각과 입장에서 말하고 공유할 수 있는 개인의 소통 능력과 공동체 차원의 커뮤니케이션 하부 구조가 열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험의 문제를 공동체의 문제로 본다면 커뮤니케이션 하부 구조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위험 상황에서 배타성은 낮추고 사회적 연대를 늘린다면 적대를 줄이고 연대를 늘릴 수 있다. 공동의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의 차이를 관리하면서 함께 문제 해결 과정에 참여하기 위한 소통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저자들은 아래와 같이 희망을 찾는다.
“위험의 복합성, 조건성, 미결정성에 대한 실천적 이해를 통해 현재의 위험 사회는 변화할 수 있다. 위험의 문제를 겪거나 인식하거나 평가하거나 경험하거나 대처하는 지점들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차이들에 대해 배척하고 혐오하는 대신, 서로 인정하고 관용하기, 대화와 논쟁을 거치며 최선의 공동선을 구성하기, 무책임하게 도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집합적인 노력으로 위험에 도전하기, 마침내 함께 회복하기! 이런 노력 위에서, 어렵지만 열려있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지금보다 덜 위험한,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356쪽)
실제로 이 책은 막연하게 느껴지던 위험에 대한 불안을 어느 정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된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객관적인 위험 상황의 증가도 있지만 재난·위기를 다루는 미디어의 방식으로 인해 막연한 불안과 공포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미디어는 이러한 감정을 해소해 주기보다 외려 불안을 자극한다. 사회적 논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투명한 상황 공개와 책임 규명은 부족하면서 사회적 참사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느낌이다. 이는 단지 개인의 느낌이 아닌 한국 사회가 공유한 감정이다. ‘각자도생’은 이러한 집단적 감정의 결과가 빚어낸 사회적 단어다.
저자들이 수행한 위험 관련 개념의 촘촘한 분석은 위험한 현대 한국 사회라는 막연한 불안을 분해한다. 위험에 대한 명확한 인식, 그 사이 미디어의 역할, 미디어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제시 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