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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되짚기 05 - 원칙
기획연재 | 등록일 : 2023-07-28

백주몽(白晝夢)과 같은 11분간의 휴전협정 조인식은 모든 것이 상징적이었다. 너무나 우리에게는 비극적이며 상징적이었다. 학교 강당보다도 넓은 조인식장에 할당된 한국인 기자석은 둘뿐이었다. 「유엔」 측 기자단만 하여도 약 백 명이 되고 참전하지 않은 일본인 기자석도 10명을 넘는데 휴전회담에 한국을 공적으로 대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이리하여 한국의 운명은 또 한 번 한국인의 참여 없이 결정되는 것이다. (조선일보, 1953.7.29.)

 

소설의 시작 부분처럼 보이는 이 글은 한국 현대사를 바꿔놓은 휴전 협정 조인식을 다룬 기사다.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면 기사인지 소설인지 헷갈릴 정도로 흔히 보는 기사 형식과 다르다. 행사 기사지만 일시, 장소,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정보가 첫 문단에 없다. 총 1,230자로 된 이 기사를 끝까지 읽어 봐도 육하원칙과 관련된 내용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제시되지 않았다. 기사의 핵심 요소인 취재원도 등장하지 않고, 직간접적으로 인용된 발언도 없다. 대신 이 기사에는 현장에 있던 기자가 조용히, 그러면서도 면밀히 관찰한 장면들과 분위기가 기자의 관점(주제 의식)하에 ‘상징’으로 개념화되어 제시되고 있다. 11분 밖에 소요되지 않은 조인식, 둘 뿐인 한국인 기자석, 한국 대표자의 부재 등 여러 ‘상징’들은 남의 손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어 버린 남한의 비극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휴전협정 조인식이 개최됐다는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처절하게 느끼게 한다. 이 기사는 종군기자로 활동하다 순직한 최병우 기자가 쓴 ‘기이한 전투의 정지’라는 제목의, 한국 기자와 언론학자가 꼽는 최고의 기사다.


국내 기사 대부분은 역피라미드 형식

 

일반적으로 ‘기사’하면 역피라미드로 쓰여진 스트레이트 기사가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기사의 리드는 기사 내용 전체를 요약해 제시하고 있고, 육하원칙에 따라 정보들이 중요한 순서대로 배치된다. 취재원의 중요한 발언은 인용으로 처리된다. 신중하게 선택한 단어들, 그 단어를 연결한 문장들은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정보의 결정체다. 국내에서 ‘좋은 기사’는 대체로 글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보다 ‘무엇’을 다뤘는지를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올해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기사 제목에는 ‘의혹’, ‘은밀한’, ‘수상한’, ‘드러난’, ‘끌어낸’, ‘배후 규명 및 추적’ 등의 단어가 포함돼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숨겨진 사실, 진실을 드러내는 기사는 이슈 자체로 흡입력을 갖긴 하지만, 뭔가 아쉽다. 좋은 기사는 소재와 주제를 잘 선택하는 것과 함께 읽는 사람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소재, 주제라도 읽히지 않는다면 기사의 가치도, 영향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기사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글이어야 한다.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일곱번째는 “저널리즘은 시민들이 중요한 사안을 흥미롭게, 그들의 삶과 관련 있는 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반드시 최선을 다해 전달해야 한다”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기사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다루는 것이 중요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주목적은 정보 전달이지 재미, 흥미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국내 기사가 쓰여진 방식을 살펴보면 읽는 재미는 거의 고려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990~2007년 국내 10개 종합일간지 1면 기사의 97.5%1), 2006년 1~10월 5개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의 94.1%2)가 역피라미드형 기사였다. 마치 다른 글쓰기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한 가지 유형의 글쓰기 방식이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이후 15년 이상이 지난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다수 사람들이 이용하는 포털에 게재된 기사 역시 대부분 역피라미드형 기사다. 대학의 기사쓰기 수업이나 언론사 입사 후 기사 작성 교육에서 역피라미드 외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가르치는 경우도 드물다. 역피라미드형 기사는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여러 글쓰기 방식 중 하나이며, 가장 기초적인 글쓰기 방식일 뿐임에도, 국내 언론은 역피라미드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다. ‘기초’라는 것은 기본이기에 중요하다는 뜻은 담겨 있어도, ‘원숙하다’, ‘탁월하다’와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 코바치와 로젠스틸(2021)은 이러한 기사들이 스토리텔링이 정형화되어 있고, 새로운 플랫폼인 인터넷이 가진 가능성을 활용하지 못하며, 기사가 더욱 큰 의미를 조명하지 못하는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양한 이용자를 위한 정보가 아닌, 한정된 사람들(예를 들어 정치인)만 겨냥한 정보가 담겨있고, 취재원이 고정된 틀처럼 활용되어 ‘실제 인물’처럼 등장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고 했다. 

 

이러한 기사의 핵심적인 문제는 기사를 써도 이용자에게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분석해보니 한 언론사 홈페이지에 작년 12월 한 달간 업로드된 기사 500개의 평균 스크롤뎁스(Scroll Depth)3)는 39.8%였다. 해당 언론사나 기사에 관심이 많아 언론사 홈페이지에 가입을 하고 로그인을 했지만, 한 기사의 절반 정도도 읽지 않고 웹페이지를 떠났다는 뜻이다. 습관적으로 훑어보는 포털 기사의 스크롤뎁스는 이보다 훨씬 낮을 가능성이 높다. 이용자 입장에서 봤을 때 기사 리드만 읽어도(사실 제목만 읽어도) 내용 전반을 다 파악할 수 있으니, 기사 일부만 읽고 페이지를 떠나는 것이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다. 기자는 공들여 기사를 쓰지만 이용자에게 가닿지 못하고, 시민들은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한다.


글쓰기를 차별화하라 

 

그래서 기자는 글을 쓰는 방식을 기사 주제를 선택하는 것만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취재 단계부터 기사가 다루는 내용이 시민들의 삶과 관련이 있는 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 이용자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무엇을 알 필요가 있는지, 이용자들이 기사에 대해 갖는 의문은 무엇인지, 이용자가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자가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사안을 취재해야 한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신중하게 선택되어야 하고,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인지, 상황이 어떠한지 세부적으로 묘사해 나와 관련있는 실제 사람, 실제 상황으로 인식되도록 해야 한다. 또 기사가 다루는 전반적인 내용을 더 깊은 주제와 연결시켜야 한다. 이처럼 독자를 고려한 글쓰기는 미사여구를 동원한 현란한 글쓰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취재 단계부터 독자를 생각하고, 기사 작성 단계에서도 이용자의 관심과 흥미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기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독자가 충분히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리드, 주인공의 도입, 장면 재구성, 공간·상황·인물에 대한 묘사, 복선과 전조, 대화, 여운을 남기는 엔딩 등 이야기 창작에 활용되는 다양한 작법들은 이용자의 몰입을 위해 기사를 쓸 때도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 

 

이런 기사는 이용자들도 그 가치를 알아본다. 현재 필자가 참여 중인 연구에서 국내 기자와 이용자들이 ‘좋은 기사’로 선택한 417건을 분석해보니, 역피라미드 방식으로 작성된 기사는 14.4%에 불과했다. 역피라미드가 아닌 기사는 시간 흐름에 따른 사람·사건·상황의 변화가 있거나(82.4%), 특정한 상황 또는 장면을 묘사, 재구성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69.2%), 기사 전체를 이끌어가는 인물, 즉 캐릭터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24.9%). 이용자들은 글쓰기 방식에서 차별화된 기사를 좋은 기사로 인정한 것이다.


‘무엇을’ 뿐 아니라 ‘어떻게’ 다룰지도 고민할 차례

 

기사를 작성할 때 무엇을 쓸지 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쓸지에 대해서도 비중있게 고민해야 한다는 점은 해외에서 이미 통용되고 있는 기준이다. 미국 내 신문 편집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신문의 우수성에 대한 9가지 콘텐츠 기준 중 하나로 ‘좋은 글쓰기’를 꼽고 있다.4) 캐나다 전국 신문상(Canadian National Newspaper Awards) 심사위원의 평가 기준은 아이디어, 보도, 글쓰기 세 분야로 구분되는데, 글쓰기 평가 항목에는 매력적인 리드·오프닝, 효과적인 일화 인용 및 예시, 서술 및 묘사, 독자의 흥미, 콘텐츠에 적합한 분위기, 언어와 어조 등이 포함되어 있다. 세계 각국의 유력 신문 40곳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선도적인 고급 언론의 특성 중 하나로 ‘좋은 글쓰기’를 제시하고 있다.5) 훌륭한 저널리즘은 콘텐츠가 독창적이어야 하고, 이와 더불어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법도 혁신적이고 매력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소 키우기6)’, ‘양치기7)’에 허덕이는 국내 언론 현실에서 글쓰기 방식까지 고민하라는 게 무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작성한 기사의 절반도 읽히지 않는 기사 쓰기 방식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흡입력 있는, 독자와의 관련성을 높이는 방식의 글쓰기, 이것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할 수도 있는 ‘선택 사항’이 아닌, 저널리즘이 지켜야 하는 기본 원칙이다.

 

 

 

 

 

1) 박재영·이완수, <인용(quotation)과 취재원 적시(attribution)에 대한 한미(韓美) 신문 비교>, 한국언론학보, 51(6), 439-468쪽, 2007

2) 박재영, <뉴스 평가지수 개발을 위한 신문 1면 머리기사 분석>, 《한국의 뉴스미디어 2006》, 147-220쪽, 한국언론재단, 2006

3) 스크롤뎁스(Scroll Depth)는 사용자가 웹페이지에서 어느 정도까지 스크롤을 내려 콘텐츠를 소비했는지 측정한 값이다.

4) Gladney, G. A., <Newspaper excellence: How editors of small and large papers judge quality>, Newspaper Research Journal, 11(2), pp.58-72, 1990

5) Merrill, J. C., 《The Elite Press: great newspapers of the world》, Pitman Publishing Corp., 1968

6) 취재처발 기사 등 중요도는 떨어질 수 있지만 반드시 작성해야 하는 일상적인 기사를 쓰는 것을 의미하는 언론계 은어

7) 질이 아닌 양으로 승부한다는 뜻의 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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