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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수신료 분리 징수에 관한 논란이 한창이다. 단순히 TV 수신료 징수 방식의 문제를 넘어 공영방송의 재원과 근간에 관한 논의까지 관련된 문제라 더욱 복잡하다. 공영방송사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아닐 수 없다. 미디어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 공영방송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국 BBC는 모든 채널의 시청점유율이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Statistia, 2022). 최근 BBC 회장이 불명예스럽게 사임했고, TV 수신료 폐지 논의도 예고되고 있다. 프랑스 공영방송사도 예외는 아니다. 2022년 하반기 TV 수신료 제도가 폐지된 데다 최근에는 공영방송사의 20시 이후 광고 완전 폐지 논의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또, 프랑스 공영방송사를 관리·감독할 지주회사 설립도 가시화되고 있다. 게다가 프랑스 공영방송사는 최근 민영채널연합(Association des cha nes priv es)에 의해 불공정 경쟁으로 고발된 상태다.
하원의회의 <공영방송사의 미래> 보고서
지난 6월 7일 하원의회의 문화교육위원회는 <공영방송사의 미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20시 이후 광고 전면 폐지 및 지주회사 설립을 골자로 하는 공영방송사 개혁안을 제시했다. 이 보고서에서 공영방송사의 개혁 목표는 ‘공영’ 방송사라는 정체성의 재확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조치로 민영방송사와 차별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광고 없는 채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보고서에는 이 밖에도 공영방송의 미래를 위한 30여 가지 제안이 담겨있는데, 그중에는 지난해 폐지된 TV 수신료 수익을 대신할 수 있도록 부가세 일부를 지원하는 영속적인 정부 재정 지원에 관한 내용도 있다. 공영방송 채널로서 많은 문화 프로그램을 편성할 것과 유럽에 관한 뉴스와 관련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뉴스 플랫폼인 프랑스앵포(Franceinfo)에서 국제뉴스를 더 중점적으로 다룰 것 등을 제안해 공영방송사의 정체성을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20시 이후 광고 폐지나 부가세 지원안 등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라는 평가다.
20시 이후 공영방송사 광고 완전 폐지 제안
역시 보고서 제안 중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공영방송 TV 채널의 20시 이후 광고 폐지에 대한 것이다. 보고서에서 하원의원들은 2009년 방송법 개정으로 공영방송사의 광고 폐지가 법제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스폰서 광고(parrainage)’를 허용함으로써 여전히 주요 시간대 공영방송사 채널에서 광고를 볼 수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는 시청자들이 보기에 민영방송과 별 차이가 없어 공영방송사로서의 정체성을 약화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스폰서 광고를 포함해 20시 이후 공영방송사 채널에서 모든 광고를 폐지하고, 이 시간대 편성된 프로그램의 다시보기 서비스에서 제공되는 광고까지 폐지할 것을 제안했다. 나아가 점진적으로 시간대에 상관없이 공영방송사의 광고 폐지를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저녁 8시~오전 6시 공영방송사의 스폰서 광고와 디지털 광고 수익은 프랑스 텔레비지옹의 광고 수익(총 3억 9,280만 유로)의 1/3을 차지하고 있다.[표]

보고서 작성에 동참한 하원의원들은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에 부과되는 세금 일부로 공영방송사의 광고 수익을 대체하자고 제안했다.
사실 프랑스의 공영방송사 20시 이후 광고 폐지 논의의 시작은 15년 전인 2009년 사르코지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공영방송사의 재원을 정부 지원이나 광고 없이 100% TV 수신료로 충당하도록 하는 법안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TV 수신료를 직접 부담하는 국민을 비롯해 여러 이해관계자의 반대로 인해 점진적 TV 수신료 인상과 저녁 8시~오전 6시까지 광고 우선 폐지 및 2011년 전면 폐지로 결론을 내렸다. 이후 TV 수신료의 지속적인 인상을 통해 2017년부터 정부 재정 지원을 거의 제로에 수렴하도록 했지만, 광고 폐지라는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공영방송사의 재정적 어려움이 지속되어 유예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또한 2009년 방송법 개정 시 상업광고에 대한 금지는 명확히 했으나 스폰서 광고는 허용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광고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렇게 우회적으로 광고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프랑스 공영방송도 할 말은 있다. 2009년 당시 공영방송사가 광고를 폐지하는 대신 두 종류의 세금을 통해 이를 보전해주기로 했으나, 결과적으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공영방송사의 광고 수익을 대신해 방송 개혁의 혜택을 받게 될 민영 채널의 광고 매출 3%와 통신 사업자 매출의 0.9%를 공영방송에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민영 채널의 로비로 광고 매출 세율을 0.5%까지 낮췄고, 통신 사업자 매출 역시 2019년부터 지원하지 않게 됐다(Henni, 2019.1.13). 결국 공영방송사로서는 우회적으로라도 광고 수익을 통해 재정 마련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원의원의 문화교육위원회는 광고가 없는 영국의 BBC, 2009년부터 광고가 금지된 스페인, 어린이·문화 프로그램에는 오후 8시 이후, 공휴일·일요일에는 광고를 금지하고 있는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 공영방송 사례를 제시하면서 프랑스 공영방송사의 광고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공영방송사의 20시 이후 광고 전면 폐지가 실질적으로 이뤄질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광고 폐지를 담은 것이 법안이 아니라 국회 위원회의 보고서라는 점에서 여전히 논의 단계에 있으며, 비록 지난 7일 다수 의원이 보고서 채택에 찬성한 상태지만, 프랑스 앵수미즈당(La France insoumise)과 사회당(Parti socialiste)이 반대표를 던졌고, 국민연합당(Rassemblement national)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해관계자인 공영방송사 프랑스 텔레비지옹(France T l visions) 역시 반대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 2009년 사르코지 정부가 공영방송사 광고 폐지안을 들고나왔을 때도 ‘민영 채널들의 로비’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던 것처럼 이번에도 비슷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민영채널연합(Association des cha nes priv es)의 회원사인 TF1, M6, Canal+, Altice(BFMTV, RMC 등) 등의 미디어 그룹은 엘리자베스 보른(Elisabeth Borne) 총리에게 “시장을 우회하는 프랑스 텔레비전의 관행과 광고 확대를 요구하는 것을 중단시켜달라”고 서한을 보낸 바 있어 이러한 비판이나 의심이 터무니없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공영방송사 측은 또한 “공영방송사가 협찬 광고와 디지털 광고를 통해 얻는 수익은 프랑스 전체 광고 시장에서 0.8%를 차지하는 지극히 미미한 수준으로 이 광고를 폐지하더라도 민영 채널보다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미국의 플랫폼에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AFP, 2023.6.7).
공영방송사 관리·감독을 위한 지주회사 설립
이 보고서의 또 다른 쟁점 중 하나는 공영방송사 관리·감독을 위한 지주회사 설립에 관한 것이다. 이 역시 새로운 논점은 아니다. 마크롱 1기 정부 시작인 2017년부터 대통령의 의지로 논의가 시작됐고, 2019년 방송법 개정을 앞두고 당시 문화부, 의회, 시청각최고위원회(CSA)에서 영국의 BBC를 모델로 지주회사 설립안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팬데믹으로 3년간 멈춤 상태에 있다가 다시 논의 선상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의회가 제안하는 지주회사는 프랑스 라디오 공영방송과 텔레비전 공영방송사를 비롯해 프랑스 공영 국제방송 그룹(France M dia Monde), 국립시청각연구소(l’Institut national de l’audiovisuel)를 포괄하는 형식이다.
하원의원들은 보고서에서 공영방송 지주회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표 임명을 시청각디지털커뮤니케이션규제청(Arcom)과 의회 문화교육위원회의 동의를 받은 후 이사회에서 진행하도록 제안했다. 또, 상원의회에서 이미 제안한 라디오 공영방송(Radio France), 프랑스 국제방송 채널인 프랑스24(France 24), 텔레비전 공영방송(France T lvisions)의 공동 뉴스룸 설치에 동의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공영방송사 그룹의 서로 다른 디지털 플랫폼 간 시너지 효과 창출을 위해 공동 검색 엔진을 만드는 등 다양한 협력을 제안했다.
공영방송사 지주회사 설립은 ‘20시 이후 광고 완전 폐지’보다는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17년 지주회사 설립 논의가 시작됐을 때 공영방송사 노조는 구조조정이 전제된다는 점에서 강하게 반대한 바 있고 지난 4월에도 델핀 에르노뜨(Delphine Ernotte) 프랑스 텔레비지옹 대표를 비롯해 공영미디어 기관의 수장들은 난색을 표했지만, 이미 상원의회에서 다수 의원의 찬성을 바탕으로 지난 5월 제출한 공영방송사 개혁 법안에 포함됐으며, 이후 6월 13일 상원의회에서 통과됐기 때문이다.
2019년까지 활발히 진행됐던 공영방송사 개혁 논의가 오랜 팬데믹을 지나 다시 진행 중이다. 하원의회는 ‘공영방송의 정체성 강화’라는 목표로, 상원의회는 ‘방송 주권’을 목표로 20시 이후의 광고 폐지, 공영방송의 관리·감독을 위한 지주회사 설립 등을 하나씩 결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정체성이나 방송 주권도 공영방송사가 존재하고 유지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프랑스 공영방송사가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는 다른 것보다 재정 문제다. 재정 문제는 십여 년째 공영방송사 안팎으로 지적되고 있다. 공영방송만의 정체성과 방송 주권을 위한 의사결정에서 공영방송사의 재정 안정도 고려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