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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7일, 크리스 리흐트(Chris Licht) CNN CEO의 해임 소식이 갑작스럽게 전해졌다. 워너브로스디스커버리(Warner Bros. Discovery)의 최고 경영자 데이비드 자슬라브(David Zaslav)가 그를 CNN의 수장으로 전격 임명한 지 약 13개월 만이다. 당시 크리스 리흐트는 CNN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끌며 다양한 직면 과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됐다. 1년 남짓한 짧은 재임 기간 몇 가지 눈에 띄는 시도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크리스 리흐트의 기용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번 호에서는 CNN CEO 해임 사건을 통해 지난 몇 년간 이 메이저 케이블 언론사가 겪은 이슈들을 돌아보고 미국 언론계에서 이 사건이 의미하는 시사점을 알아본다.
위기의 CNN, 여전히 미지수인 돌파구
CNN은 여전히 상당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케이블 뉴스 채널이다. 그러나 케이블 방송 업계 전반이 스트리밍 플랫폼과의 경쟁 등으로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CNN도 최근 시청률과 광고 수입 모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2021년 약 12억 5,000만 달러(약 1조 6,300억 원)에 달했던 수익이 2022년에는 약 7억 5,000만 달러(약 9,800억 원)로 줄어든 데다(Stewart, 2022), 2023년 첫 넉 달 동안 광고 수입은 약 39% 감소했다(Adgate, 2023). 같은 시기 경쟁 케이블 뉴스 네트워크인 폭스뉴스(Fox News)나 MSNBC 등도 시청률이 감소했지만 CNN만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Mullin, 2022).
CNN의 문제는 시청률 하락과 수익 감소에서 멈추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기간 CNN은 일부 보수 공화당이나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층에게 가짜 뉴스를 생산해내는 기득권 언론사라고 지속적으로 공격 받으며 전쟁 아닌 전쟁을 치렀다. 의도와 상관없이 이 같은 정치적 소동에 휘말린 CNN은 정치적 편향성을 지닌 언론사로 이미지가 고착됐다.
CNN 내부에서도 좋지 않은 이슈들이 계속됐다. 간판 앵커였던 크리스 쿠오모(Chris Cuomo)가 형제였던 전 뉴욕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Andrew Cuomo)의 정치 스캔들에 깊게 관여했다는 정황이 밝혀지면서 2021년 12월 회사를 떠났다. 이어 CNN을 이끌고 있던 제프 저커(Jeff Zucker)가 2022년 2월 사임했다. 사임 이유는 쿠오모 앵커 내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내 연애 때문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동안 정권과의 갈등 속에서 CNN을 이끌며 뉴스룸 직원들과 긴밀한 신뢰 관계를 쌓았던 수장의 갑작스러운 사임은 당시 어수선했던 사내 분위기에 불확실성을 더하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당시 모기업이던 워너미디어(WarnerMedia)의 디스커버리 인수 작업이 한창이어서 CNN 또한 상당히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로 출범한 워너브로스디스커버리의 CEO 자슬라브가 당시 CBS의 간판 심야 토크쇼 <더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The Late Show with Stephen Colbert)>의 책임 프로듀서였던 크리스 리흐트를 CNN의 수장으로 앉힌 것이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자슬라브와 리흐트의 목표는 분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저히 편향된 CNN을 보다 균형 있는 보도와 목소리를 내는 언론사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Grynbaum & Koblin, 2022; Koblin et al., 2023). 취임 후 리흐트가 직원들에게 보낸 첫 메모를 참고하면, 시청률 극대화를 위한 자극적 이데올로기 뉴스 생산으로 잃은 신뢰를 균형 있는 보도로 회복하고 다시 성장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Barr, 2022). 이는 전임자인 저커(Jeff Zucker) 체제의 CNN에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Barr, 2021; Grynbaum & Koblin, 2022).
이렇듯 야심찼던 리흐트 체제의 CNN은 1년을 갓 넘긴 지난 6월 끝이 나고 말았다. 리흐트의 리더십 아래 CNN은 다양한 시도를 했다. CBS에서 아침 프로그램을 성공시켰던 경력을 살려 모닝 토크쇼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개편했고, 탄탄한 시청률의 기반이었던 9시 프라임 타임의 프로그램에도 변화를 줬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공화당 또는 보수 의견을 내는 게스트, 평론가들을 초대해 특정 이슈에 대해 보다 균형 있는 관점을 제공하려 했다.
같은 맥락에서 명확한 의견을 피력하는 CNN의 유명 평론가, 통신원 및 특파원들이 떠나고 그들이 주도하던 프로그램이 취소되기도 했다(Barr, 2022). 그 와중에 스타 앵커였던 돈 레몬(Don Lemon)이 새84 미디어 월드 와이드 미국로 개편된 아침 프로그램 <CNN 디스 모닝(CNN This Morning)>에서의 성차별적 발언으로 지난 4월 불미스럽게 해고됐다. 결정적으로 2023년 5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출연하는 타운홀 형식의 인터뷰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방송 전부터 CNN 안팎으로 논란이 된 이 프로그램은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의 관점과 의견을 균형 있게 내보낸다는 리흐트의 의지가 반영된 주요 결과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청률 반등은커녕 프로그램 방영 이후 기존 CNN 시청자들의 채널 보이콧 선언이 이어지는가 하면 방송국 내부에서도 리흐트가 뉴스룸과의 유대감이 부족하다는 식의 불협화음이 계속되면서 결국 2023년 6월, 리흐트는 해고되고 말았다.
‘균형’에 대한 정의 재정립과 케이블 뉴스의 역할
혹자는 CNN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보며 현재 온디맨드(OnDemand) 형태의 분열된 뉴스 미디어 환경에서 정파적이지 않고 독립적인 뉴스가 진정 가능한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Rutenberg, 2023). 지역신문사 감소 등 다양한 요인이 지역 정치를 국가화(nationalization)시키는 가운데(Darr et al., 2018) 케이블 뉴스 또한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소셜미디어 콘텐츠 등과 경쟁하고 있는 환경에서 정파성 없는 독립적인 뉴스가 진정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리흐트가 시도했고, 자슬라브가 시도하려는 방향은 언론에 대한 대중의 장기적인 신뢰 구축에 적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이제껏 한쪽 인사들의 의견만 보여줬으니 사실이든 아니든 다른 쪽 인사들에게도 방송 시간을 내주는 것이 ‘균형’을 맞추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진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혹자가 전 CNN 앵커들과 내부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전했듯, 리흐트와 자슬라브의 시도가 실패한 것은 ‘균형’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에 대한 논의 부족 때문일 수도 있다(Rutenberg, 2023).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 균형 있는 콘텐츠 및 보도에 대한 정의는 비단 케이블 매체뿐만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 그리고 뉴스 추천 시스템 등 보다 광범위한 측면에서 중요한 고민의 대상이다. 리흐트 이후의 CNN이 어떤 해결책과 방향을 찾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