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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잼버리와 언론] 국제 행사 보도 관행과 향후 개선 방향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3-09-27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여러 이슈로 인해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언론은 이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에서 제 할 몫을 다했는지 살펴보고 향후 국제 행사 보도 시 되새겨야 할 사항을 점검해본다. 편집자 주

 

한국의 한껏 높아진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초대형 국제 행사 유치는 이제는 익숙한 소식이 됐다. 그렇지만 이번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준비와 진행, 수습 과정에서 온갖 문제점을 되풀이하면서 한국 사회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이와 더불어 언론의 국제 행사 보도 관행이 갖고 있던 해묵은 문제점도 덩달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동안 국내에서 무수히 많은 국제 행사가 개최됐지만 어설픈 운영이나 행사 파행으로 망신당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파행은 그간 암묵적으로 통용되던 관행의 한계가 극단적 형태로 노출된 사례에 가깝다. 이 점에서 이번 사건은 앞으로 언제든 드러날 수 있는 문제점의 한 예시라고 보는 게 나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국제 행사 보도에서 통용되던 관행의 특징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개선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국제 행사인가, 국가대표 경기인가?

 

언론이 국제 행사를 대하는 태도는 스포츠 국가대표팀 경기 보도와 닮은 점이 많다. 스포츠에서는 이해관계나 선호도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이 태극 마크 아래 하나로 결집한다. 이와 비슷하게 언론이 국제 행사를 대할 때도 마치 행사의 유치와 성공적 개최 여부를 모든 단체와 개인이 ‘한 팀’으로 뭉쳐 성사시켜야 하는 숙제처럼 단순화해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행사 유치 과정에 참여한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은 ‘총력전’이라는 용어를 남발하고 언론 역시 이를 충실하게 받아적으면서 분위기를 띄우려 한다. 

 

이 총력전이라는 단어는 행사 유치와 관련한 다른 목소리의 여지를 배제한다. 그 의견이 어떤 것이든 국가적 목표에 딴지를 거는 비애국적 견해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총력전의 최종 목표는 승리이며 일단 유치 전쟁이 시작되고 나면 모든 요인은 승패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방해가 되는가 하는 측면에서만 평가가 내려진다. 

 

행사 유치가 확정되고 나면 그다음에는 성공적인 개최가 지상 과제로 떠오른다. 주최자든 공무원이든 기업이든 일반 시민이든 모두 행사의 성공적인 완수를 위해 지원과 격려, 마음을 모아야 하는 것으로 암묵적 합의가 되어 있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처럼 유치 후 거의 무관심 상태에서 시작된 행사라 할지라도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이는 다시 온 국가가 힘을 모아 극복해야 하는 국가적 위기로 부상한다. 행사를 통해 우리가 어떤 이익을 얻었는가 하는 문제는 좀체 거론되지 않는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는 본예산만 1,171억 원이 지출됐고 행사가 파행으로 가면서 기업과 정부, 시민 등이 막대한 추가 부담을 감수했다. 누가 얼마를 지출했고, 이후 어떤 식으로 처리됐는지는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국가의 위신이 벼랑 끝에 선 마당에 그러한 ‘사소한’ 문제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분

위기였다. 

 

여기서 행사의 목적을 둘러싼 주객전도 현상이 드러난다. 11년 전 전라북도가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유치를 처음 선언했을 때 장밋빛 청사진으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온갖 기대 효과는 어느 정도 달성했는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 주체가 누구든 국제 행사도 엄연히 비즈니스니 당연히 따져봐야 할 질문들이다. 하지만 행사가 끝난 후 언론이 이러한 사후 정산과 평가를 제대로 내리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국내에 유치한 역대급 국제 행사인 2002년 월드컵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도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전국에 건설한 경기장 뒤처리로 골머리를 앓은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다음번에도 애국심 하나만 믿고 이처럼 깜깜이식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가?


‘아폴로 13호’ 증후군: 무관심과 지나친 관심

 

이번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언론이 국제 행사를 보도하는 방식의 한 가지 전형을 보여준다. 이른바 ‘아폴로 13호’ 증후군이라 할 만한 양상이 전형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아폴로 13호는 미국 나사(NASA)가 추진한 우주 탐사 계획의 일환으로 1970년 4월 11일 발사한 유인 우주선을 말한다. 이미 아폴로 11호가 전 세계적 열광 속에 달 착륙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터라, 13호 발사는 언론과 대중의 무관심 속에 진행됐다. 그런데 발사 직후 산소 탱크가 폭발하면서 승무원들의 귀환에 적신호가 켜졌다. 사고가 나자 전 언론의 시선이 나사에 집중됐고, 이는 6일 후 승무원들의 무사 귀환이 확정될 때까지 이어졌다. 승무원들의 귀환일 닉슨 전 대통령은 베트남전 철군을 발표하는 중대 연설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이를 취소하고 해군 함선에서 귀환하는 영웅들을 맞이했다. 그는 이 미션을 “성공한 실패(successful failure)”라고 선언하며 아폴로 13호 승무원들을 격찬했다.

 

국내에서 개최된 국제 행사 역시 많은 점에서 아폴로 13호의 사례를 닮았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일반 시민에게 볼거리와 감동을 안겨주는 행사는 다르겠지만, 대다수 행사는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치러진다.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역시 일부 국가들의 철수가 거론되기 전까지만 해도 아마 행사의 존재 자체를 모른 시민이 많았을 것이다. 참가자만 4만 명이 넘는 데다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는 초대형 행사라는 사실도 이 와중에 처음 알려졌다.

 

그동안의 무관심을 만회하려는 듯이 뒤늦게 언론의 보도 경쟁이 이어졌다. ‘파행’, ‘최악’, ‘망신’ 등 자극적인 단어가 남발되면서 행사는 대한민국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졸지에 전 국민의 민폐로 전락했고, ‘잼버리 일병 구하기’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시작됐다. 비록 문제점은 많았지만 수년 동안 준비한 행사 계획은 거론조차 되지 않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열띤 정치적 공방 속에 대통령까지 나서면서 행사 조직위원회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청소년들의 단체 야영 활동이 졸지에 ‘관광 잼버리’로 변질했으나 이에 의문을 제시하는 목소리는 많지 않았다. 언론의 지나친 관심은 그간의 무관심만큼이나 행사에 독이 된 듯하다.

 

아폴로 13호의 공식적 미션은 실패했지만, 현명한 위기관리 덕분에 모든 승무원이 무사히 귀환하는 ‘성공한 실패’로 마무리됐다. 위기가 드러나고 종결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철저하게 현장 전문가들의 판단과 결정에 의존한 덕분이다. 귀환 현장에서는 대통령조차 극적 드라마에서 미미한 조연 역할에 만족했다. 하지만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문제점이 발견된 순간부터 언론의 열렬한 관심 아래 모든 주도권이 정치인들에게 넘어가 이들의 즉흥적이고 임기응변식인 발언에 휘둘렸다. 언론의 관심은 필요하지만, 방향이 잘못되면 오히려 해가 된다.


홍보와 뉴스 사이

 

국제 행사는 대개 홍보로 시작해 홍보로 끝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특히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 행사가 흥행에 성공하려면 유치 신청 단계부터 행사 폐막식에 이르기까지 전 단계에서 대내외의 대대적인 관심을 유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도 이에 보조를 맞춰 대체로 우호적인 보도로 일관한다. 국제 무대에 나선 국가대표를 비판하는 기사는 자칫 비애국적 기사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듯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제 행사 관련 뉴스는 주최 측의 발표를 옮겨놓는 ‘발표 저널리즘’이 대세를 이룬다. 행사 유치 단계에서 이른바 ‘경제적 파급효과’ 등의 유치 효과 예측이든, 진행 상황에 관한 보고든 사후 평가든 대체로 주최 측의 일방적 시각을 담은 보도자료를 전달하는 방식이 주류가 된다. 특히 행사 장소가 지역일 경우 상설 취재의 난점도 있어, 주무 부처의 홍보자료에 의존하는 방식은 언론사 측에도 현실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이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보도에서는 행사가 파행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자, 이러한 밀월 관계가 순식간에 적대적으로 바뀌었다. 그간의 홍보성 보도는 온데간데없고, 이례적일 정도로 비판 일변도의 보도가 쏟아졌다. 다음 두 기사는 제목에서부터 달라진 분위기를 절감하게 해준다.

 

<토건-정치 카르텔의 합작품, 새만금 잼버리 파행>(한겨레, 2023.8.10.)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새만금 잼버리 나라 망신 흑역사>(서울신문, 2023.8.8.)

 

그렇지만 대다수의 언론이 취재 대신 주로 홍보성 발표 보도에만 의존했던 8년 동안 정작 중요한 뉴스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새만금 간척 사업은 잼버리 행사와 떼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여기에는 역대 정권의 선거 전략 등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나 지역 개발 이슈가 얽혀 있어, 접근하기에 따라 뉴스거리가 쏟아져 나올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행사 기반 조성을 명분으로 투입된 11조 원의 사회간접 사업비 외에도 행사에만 1,0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갔다. 그런데 역대급이라 할 정도로 준비 상태나 진행 과정은 엉망이었다. 예산 지출 내역도 74%가 행사 준비 기관의 운영비로 소비될 정도로 방만했다. 이는 단지 일부 공무원들의 외유성 해외출장 등 도덕적 불감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난맥상이다. 언론은 행사 전에는 물론이고 모든 부실이 드러난 후에라도 이 문제를 과연 어느 정도 깊이 파고들었는가?

 

다시 아폴로 13호의 교훈을 되돌아보자. 우주선이 작동 불능 상태에 도달하고 온갖 문제점이 드러나자 나사 측은 종합적인 진단에 나섰고, 이는 구조가 끝난 후에도 이어졌다. 어처구니없게도 일부 부품의 부실함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방대한 조직이 안고 있던 관료주의의 방만함에 있었다. 발사 전에도 크고 작은 문제점이 발견됐으나 그동안 별 문제가 없었기에 편법적으로 묵인한 부분도 있었다. 개혁이 필요한 것은 비리 사실이나 범인이 아니라 문제점을 발견하고도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경직된 제도였던 셈이다.

 

마찬가지로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의 난맥상은 그동안 정부 주도의 관치주의 운영이 갖고 있던 문제점이 집약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방대한 인력과 예산이 동원되는 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업무의 칸막이로 일의 효율성은 한없이 낮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국제 행사를 치르면서 나름대로 성공의 공식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어설픈 실패의 공식인데도 그것으로 별문제 없이 행사를 마칠 수 있었기에 크고 작은 문제점들을 그냥 덮고 넘어간 것이다. 실패의 공식으로도 통했다는 자만심과 안일함에 취해 있다가 파국을 맞은 셈이다. 언론이 그 긴 시간 동안 조금만 파고들었으면 진작 드러났어야 할 뉴스거리였다. 


‘따옴표’ 저널리즘의 한계

 

행사 주최 측의 홍보에 보조를 맞추는 발표 저널리즘은 예상 밖의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행사 유치와 진행 과정에서는 이른바 거물급 정치인들이 큰 역할을 하고 이들의 발언이 비중 있게 보도된다. 하지만 이른바 ‘따옴표’ 저널리즘이 관행화하다 보니 사실과 주장, 변명의 구분이 모호한 기사가 남발됐다. 초기에는 물론 장밋빛 전망과 덕담을 퍼 나르는 기사가 주를 이뤘다.

 

“새만금은 친환경 녹색개발의 중심지로 잼버리의 추구 이념과도 일맥상통한다”(김완수 전북지사, 연합뉴스, 2012.4.27)

<윤, 스카우트 명예총재로 추대 “새만금 잼버리 대회 아낌없이 지원”>(뉴시스, 2023.3.29)

 

하지만 대회 운영이 삐거덕거리며 참가단 철수가 거론될 무렵에 이르자, 뉴스에 인용되는 발언의 성격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관련 기사에서 실제로 대회 운영과 직접 관련된 인사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이와 무관한 여야 정치권의 훈수가 지면을 장악하게 된다.

 

<민주 “잼버리 대회 좌초, 윤석렬 정부 안일한 대응 탓”>(동아일보, 2023.8.15)

<여, 잼버리 실패? “뻘밭 대참사 원인은 문재인 ... 윤석렬 탓 마라”>(이데일리, 2023. 8.13)

 

이러한 날선 공방 덕분에 전 세계 청소년의 행사는 또 하나의 정치적 힘겨루기의 소재로 전락했다. 인용문의 주인공은 대개 잼버리와는 무관한 정치권의 ‘뉴스메이커’들이지만, 이들을 인용하기로 한 선택까지 비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인용문은 발언 내용에 대한 팩트체킹을 거쳐야 하며 다른 맥락 정보에 대한 취재와 함께 기사화해야 했다. 여러 정권에 걸쳐 추진된 행사를 두 정권 간의 대립구조로 묘사한 주장을 그대로, 게다가 제목으로 올린 선택은 사실상 정파적 갈등을 대놓고 부추기는 폐해를 낳았다. 

 

정치적 공방이 책임자 지목으로 옮아가면서 인용문 보도는 근거가 희박한 강변이나 발뺌, 원색적 비난의 창구로 악용되기도 했다. 행사 주무 부처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 대한 ‘공공의 적’ 만들기도 그 예 중 하나다.1) 이 때문에 행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렸다. 같은 사안이라도 정파적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정파적 대립 구도에 들어맞는다고 해서 아무 주장이나 검증 없이 옮겨놓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된 국가적 사업의 파행을 이러한 정파적 대립과 분노의 틀로만 소비한다면 정작 문제의 본질은 의제화하기도 어려워진다. 책임 전가가 난무하도록 방치하는 바람에 오히려 책임 소재가 희석돼 정작 책임지는 자는 없어지는 희한한 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다. 문제는 언론의 보도 방식에 있다. 홍보든 갈등과 비난 중계든 인용에 그치고 적절한 취재로 뒷받침되지 않는 보도로는 이런 복잡한 사안을 제대로 다루기 어렵다. 아무리 거물급 공인이라도 인용문은 정치적으로 계산된 일방적 주장일 뿐 팩트가 아니다. 따옴표 안에 집어넣어 입증 책임을 회피하는 면피성 보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취재를 해야 언론은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행사와 무관한 인사들이 따옴표 속에 숨어 무책임한 훈수를 남발하는 바람에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국제 행사, 품격 있는 언론 보도란?

 

21세기에 접어든 지도 한참 되었고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들 하는데도, 국제 행사를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이나 태도는 아직 해묵은 개발도상국 시절의 감각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국제 행사는 국가대표 경기가 아니고,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는 애국심과 단결만이 요구되는 덕목도 아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에만 일희일비하는 감정적 보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국제 행사는 대규모 재원과 인력이 투입되는 엄연한 비즈니스이자 행정이며, 언론 보도도 그에 걸맞는 치밀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제는 잔칫날의 홍보가 아니라 국가적 사업을 파고드는 취재 마인드로 국제 행사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뉴스는 디테일에 있다. 행사와 관련된 거물급 뉴스메이커의 목소리만 쫓아다니지 말고, 현장과 집행 과정을 파고들면서 뉴스를 ‘발굴’하려는 각오가 필요하다. 행사 유치의 명분으로 제시된 장밋빛 미사여구가 목표로서 타당한지, 도출 과정은 합리적인지, 소요 재원과 투입 예산의 비율은 적절한지, 행사 주관 조직 편성은 합리적인지, 내부의 조직적 비리는 없는지 등은 기자들이 그동안 훈련받은 직업적 감각으로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이슈들이다. 이른바 어떤 뉴스메이커를 선택하고 이들의 발언을 어떻게 기사화할 것인지도 직업 언론인에 걸맞은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과업을 8년이라는 기간 동안 일부라도, 잠시라도 실행에 옮겨 감시 기능에 충실했다면,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대참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크고 작은 국제 행사는 더 일상화할 것이고 언론에서도 이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커질 것이다. 국제 행사에만 국격이 필요한 게 아니며, 언론 보도에도 그에 맞는 품격이 시급하다.

 

 

 

 

 

1) 이지운, <잼버리 숙영 안 한 김현숙 장관 “SNS 신변 협박 때문에”>, 동아일보, 2023.8.20,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0820/1207778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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