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 상세
[미디어 월드 와이드]프랑스
미디어 월드 와이드 | 등록일 : 2024-02-23

‘기준점 효과(anchoring effect)’라는 것이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처음에 제시된 기준이 이후의 판단이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뜻한다. 마케팅이나 협상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고, 교육 분야에서도 학생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적용된다. 최근 프랑스 언론 자유에 관한 법률 개정안 소식을 듣고 이 기준점 효과가 떠올랐다. 개정안 이슈의 핵심은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언어적·신체적 폭력이 증가하면서 이들에 대한 명예훼손 및 모욕죄에 관한 공소시효를 기존 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한다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해 언론인 단체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반발한 것이다. 명예훼손 공소시효가 5년인 나라의 국민으로서 공소시효 1년으로의 확대에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프랑스 언론인들의 반응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 언론법의 명예훼손 및 모욕죄 조항 개정

 

프랑스의 1881년 언론 자유에 관한 법률(La loi du 29 juillet 1881 sur la liberté de la presse)은 150년에 달하는 오랜 역사 속에서 개정을 거듭해 오늘날에 이른다. 이 법률은 언론과 출판의 정의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해, 정정권·반론권·언론의 위법행위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법률은 제목이 ‘언론 자유’에 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총 70조로 구성된 법률 중 언론이나 출판 수단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범죄나 위법행위, 그리고 그에 대한 처벌이 더 많은 부분(23조~65조)을 차지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더 많이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법률적 제한 외엔 언론 표현의 자유를 허용함과 동시에 최소한의 언론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1881년 언론 자유에 관한 법률에서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를 다루고 있는 부분은 제29조~제37조, 그리고 해당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다루는 제61조~제65조 4항까지다. 이 법률에 근거해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같이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와 관련해 형사처벌을 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또, 프랑스는 재판에서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당했다고 소송을 제기하는 측의 손을 들어주는 편이다. 이는 과거 역사적으로 왕이나 기사 등 계급이 존재해 명예를 중시했던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이 같은 역사·문화적 배경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종교·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청원권과 함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수정 헌법 1조에 명시한 미국과는 비교되는 특성이다. 또, ‘국가원수모독죄’ 조항 역시 오랜 기간 사문화됐다고는 하나 실제 폐지된 것이 2013년이라는 점은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라는 세간의 생각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한편, 이번에 개정해 논란이 된 부분은 명예훼손과 모욕죄에 대한 정의와 규정이 아니라 이 위법행위와 관련해 기소 및 처벌하는 것에 관한 부분이다. 기존 법률 제65조는 명예훼손 및 모욕죄의 공소시효를 3개월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상원의회가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명예훼손 및 모욕죄의 경우 공소시효를 1년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제65조 5항을 신설할 것을 발의했고, 하원의회가 지난 2월 7일 가결해 통과시킨 것이다. 


선출직 공무원 대상 폭력 전년 대비 32% 늘어

 

이렇게 법률을 개정한 까닭은 최근 프랑스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언어적·신체적 폭력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내무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에 시장과 같은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언어적·신체적 폭력 건수는 전년 대비 32%나 늘어나 2,265건에 달했다. 물론 신체적 폭력(2021년 165건, 2022년 160건)보다는, 위협이나 모욕과 같은 언어적 폭력이 대다수며, 언어적 폭력은 최근 큰 폭으로 늘어났다(Floc’h, 2023.3.15). 2023년 11월 프랑스 시장(市長)협회(AMF, Association des maires de France)가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시장의 69%가 무례함을 이미 경험했고, 39%는 모욕, 41%는 위협을 받았으며, 27%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격받았다고 응답했다(Vie-publique.fr, 2024.2.4). 문제는 이러한 정치인에 대한 폭력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에는 3분기까지만 집계했는데도 이미 2,387건의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된다(Vie-publique.fr, 2024.2.4). 

 

이에 프랑스 정부는 선출직 공무원이나 그 가족들 대상 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특히 이들에 대한 온라인상의 괴롭힘에 대해서는 최대 3년의 징역과 4만 5,000유로(약 6,4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했다. 또, 폭력의 피해가 발생해 공무원 및 가족이 요청하는 경우 즉시 5일 이내에 보호조치가 이뤄지도록 하는 법안도 발의했다. 이와 함께 이번에 논란이 된 1881년 언론 자유에 관한 법률 제65조 5항 신설도 추진한 것이다.


3개월에서 1년 확대로 논란 불거진 명예훼손 공소시효

 

한편 언론인들과 일부 법조인들은 언론 자유에 관한 법률 개정이 반민주적인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것이다. 애초에 1881년 언론 자유에 관한 법률에서 명예훼손 및 모욕죄에 관한 공소시효가 예외적으로 3개월인 것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명예훼손 및 모욕죄에 관한 공소시효 3개월은 프랑스의 형법에서 다루는 다른 위법행위에 비해 공소시효가 매우 짧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2월 이상 10년 이하 금고형의 경죄, 벌금형 수준의 위경죄는 공소시효가 각각 3년, 1년이다(손병현, 2012). 사안이나 대상에 따라 1만 2,000유로(약 1,700만 원)에서 크게는 1년의 금고형에 처할 수 있는 명예훼손에 대해 공소시효를 3개월로 한 것은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1년으로 확대하는 것은 기존의 공소시효의 예외적 규정의 의미를 상실하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선출직 공무원들에 대해서만 특별히 공소시효를 확대하는 것은 특혜가 된다는 것이다. 전술한 것처럼 프랑스에서 점점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폭력이 늘어가는 가운데 이들을 보호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정책 중 하나로 이들에 대한 명예훼손 및 모욕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확대하는 법 개정이 이뤄진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 및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법 조항과 관련해 이들이 특혜를 받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 언론인 노조의 주장이다. 특히, 언론인 노조는 하원의회에서 이 개정안을 10분만에 해치우듯 표결한 것이 “본인들을 위해서만 개정한 것”이라며 비판했다(SNJ, 2024.2.7). 하원의원들이 선출직 공무원 보호만 생각하고 이 개정안이 영향을 미치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지는 최근의 경향을 고려하면 이번 개정안이 소위 사회적 엘리트인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특혜로 비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De Santis, 2024.2.8). 결국 이 개정안으로 인해 “취재할 권리, 알 권리를 포함한 정보의 자유는 침해당할 것”이고 민주주의를 훼손할 것이라는 것이 언론인 노조의 입장이다(SNJ, 2024.2.7). 

 

개정안을 발의한 비올레뜨 스필부(Violette Spillebout) 의원은 선출직 공무원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명예훼손된 사실을 보통 3개월 이후에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 1년으로 확대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회당 의원이나 언론인 노조는 오히려 소셜미디어에서는 명예훼손 내용이 빠르게 사라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 속도를 고려하면 오히려 공소시효 기간을 추가하는 것이 넌센스라고 말한다(De Santis, 2024.2.8). 

 

실제로 2016년부터 상·하원의회는 인터넷상에서 이뤄지는 명예훼손과 모욕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1년으로 확대하려는 개정안을 수시로 발의해왔다. 그러나 다수의 여론은 이 개정안이 언론인은 물론 수많은 인터넷 이용자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타 미디어와 인터넷 미디어를 차별하는 조치라고 비판해왔다. 때문에 그간 개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법안 발의는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명예훼손과 모욕죄에 대한 공소시효 확대가 이뤄진 것이며, 이에 대한 반발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보편적 인권이라는 개념에도 불구하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문화권의 맥락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갖는 권리라는 부분에서는 보편적이지만 그 정도와 적용 범위는 각 문화권이나 국가의 역사적 배경과 제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느 나라의 기준과 제도가 옳고 그른지 따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명예훼손 공소시효 3개월과 우리의 5년이라는 기간 차이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기준점을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아닐 수 없다. 

저자의 다른 미디어
  • 필자 : 최지선
  • 소속 :
  • 직함 :
  • 발행 : 2024-02-23
  • 조회수 : 5
  • 키워드 :
블로그 공유 트위터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