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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TV의 ‘성추문 스캔들’이 일본 방송계를 강타하고 있다. 광고주들의 잇따른 방송 광고 중단 선언이 일본 전국 민간방송 127개 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 의존도가 절대적인 민방 입장에서는 최대 악재를 만난 셈이다.
OTT 등의 기세에 밀려 ‘오와콘(オワコン·퇴물 콘텐츠)’이 돼버린 지상파 방송은 이미 해를 거듭할수록 꾸준히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상황. 여기에 ‘후지 쇼크’까지 덮치면서 경영 위기가 심각해진 방송국이 하나둘이 아니다. 전국 민방의 약 57%에 해당하는 73개국이 내년이면 적자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까지 나왔다.
일본 내에선 ‘민방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란 평가도 나온다. 제대로 된 외부의 견제나 감시 없이 방만 경영 속에 전성기의 악습을 반복하던 관행이 들통났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발단은 퇴행적 기업지배구조
당장 이번 후지TV 사태만 봐도 그렇다. 방송국의 상습적인 갑질 행태, 성차별적 태도가 한꺼번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 일본의 국민 아이돌 SMAP 출신 연예인 나카이 마사히로(中居正広)가 후지TV 간부(편성부장)로부터 성 상납을 받았다는 슈칸분슌의 보도가 나오자 대중은 충격적이란 반응을 보였다.1) 그런데 왠지 일본 방송계에선 “당연하다”는 기류가 읽힌다. 여성 아나운서 등을 ‘접대의 도구’로 쓰는 후지TV의 관행이 그만큼 뿌리 깊다는 ‘믿음’에서다.
사건이 일파만파 커진 뒤 “해당 간부가 사건의 발단이 된 파티(2023년 6월)에 피해자(당시 후지TV 아나운서, 2024년 퇴사)를 초대한 건 아니다”라는 정정 보도가 나왔지만, 후지TV에 대한 부정적 반응은 달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피해자의 첫 폭로 이후 여러 사례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일본 최고의 민방으로 군림했던 후지TV는 왜 이렇게 곪아 있었던 것일까. 전문가 사이에선 “후지TV의 퇴행적인 기업지배구조가 총체적인 파국을 몰고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후지TV의 모회사인 후지미디어홀딩스(HD)의 이사진은 사외이사 7명을 포함해 총 17명이다. 이는 경쟁 방송국의 지주회사인 TBSHD(10명), 닛폰TVHD(10명)에 비해 훨씬 많은 숫자다. 그런데 사외이사 비율은 후지미디어HD가 24%로 TBSHD(40%), 닛폰TVHD(60%)보다 적다. 게다가 후지미디어HD의 감사와 사외이사는 대부분 이해관계자들로 채워져 있다.
반면 TBSHD의 경우 리쿠르트 전 사장, DeNA 전 회장, 소니그룹 법무 분야 임원 출신, 헬스케어 업체 경영진이 현재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닛폰TVHD는 주주·그룹사 출신도 일부 섞여 있지만 외부 이사 비율 자체가 높다. 후지미디어HD에 비해선 유착이 덜해 기업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후지TV 안팎에선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오랜 관행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눈 감고 넘어가는 일이 흔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사회에서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개선을 촉구하는 등 모니터링 체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급기야 사내에서는 “경영진이 밀실에서 의사결정을 내리고 직원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조직문화가 당연시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더기 광고 철회로 경영 패닉
성추문 사태는 후지TV의 취약한 경영 구조를 정면으로 드러냈다. 자정 작용이 이뤄지지 않는 민방에 가장 무서운 건 외국계 주주와 광고주였다.
후지미디어HD의 주식 7% 이상(계열사 지분 포함)을 가진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달튼 인베스트먼트(Dalton Investments)는 이번 사태가 불거지자 “기업지배구조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며 후지미디어HD에 서한을 보내 경영 재편을 요구하고 나섰다.2)
핵심은 40년 가까이 독재자처럼 군림하던 히에다 히사시(日枝久) 후지산케이그룹 회장을 후지미디어HD와 후지TV 이사직에서 사퇴시키라는 것이었다. 달튼은 서한을 통해 “(히에다 회장의) 이사회에 대한 지배력과 영향력이 막강하다”며 “이번 스캔들로 기업지배구조가 완전히 기능부전 상태에 빠졌다는 게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런 구조를 조속히 재검토하지 않으면 스폰서(광고주)나 협력자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달튼은 또 “후지미디어HD 이사회에 과반수의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선임하라”고도 촉구했다.
실제로 후지TV는 무더기 광고 철회 사태에 직면하면서 패닉 상태에 빠졌다. 후지TV 측에 따르면 성추문 사태 관련 1차 기자회견(지난 1월 17일) 이후 지난 1월 말까지 무려 311개 사의 광고가 중단됐다. 빈자리는 어쩔 수 없이 AC재팬(한국의 공익광고협의회 격)의 공익 광고로 대체하고 있다. 후지TV의 늑장 대응과 불충분한 설명에 따른 결과였다. 심지어 후지미디어HD의 주주인 야쿠르트까지 광고 중단을 결정할 정도로 기업들의 적대감은 커졌다. 지난 2월 25일 기준 후지TV의 스폰서 기업은 72개 사로 예년의 18% 수준까지 급감했다.3)
결국 후지미디어HD는 역대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 1월 30일 발표한 2025년 3월 기 실적 전망에선 광고 수입이 1,252억 엔(약 1조 2,400억 원)으로 기존 예상보다 233억 엔(약 2,307억 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2008년 지주회사로 전환한 이후 첫 적자다.4)
이게 끝도 아니다. 시장에선 “2월 광고 감소 폭이 예상보다 더 커서 추가 하향 조정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게다가 상당수 광고주가 3월 말 발표하는 제3자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보고 향후 광고 지속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경영 압박은 점점 더 커지는 형국이다.

로컬 방송국이 광고 수익에 더 취약
일본 방송계에선 “그래도 후지TV는 아직 비빌 언덕이 있다”는 시각이 있다. 후지미디어HD 산하에는 후지TV와 닛폰방송(라디오) 등 89개 자회사 및 50개 관계사가 있다. 주력인 미디어·콘텐츠 사업 외에도 부동산 개발사업(산케이빌딩), 호텔(그란비스타 호텔&리조트)·관광 사업 등 다양한 사업군이 형성돼 있다.5)
전체 그룹 매출의 80% 정도가 미디어 사업에서 나오지만, 영업이익으로 따지면 사정은 달라진다. 50% 이상이 부동산 등 도시개발 사업에서 나올 만큼 수익성은 다른 사업들이 높은 편이다. 방송 이외의 사업에서 후지TV의 적자를 충당할 수 있는 구조라는 의미다.

다른 민방의 사정은 어떨까. 일본 민방은 후지TV처럼 도쿄에 본사를 둔 닛폰TV·TBS·TV아사히·TV도쿄 등 5개 ‘키국(キー局, key station)’을 중심으로 전국에 계열화된 114개 방송국이 있다. 이 중 닛폰TV는 NNN(30개국), 후지TV는 FNN(28개국), TBS는 JNN(28개국), TV아사히는 ANN(26개국), TV도쿄는 TXN(6개국)이란 명칭의 각 네트워크(중복 가맹사 포함)를 구성하고 있다. 이런 네트워크에 속하지 않는 13개 ‘독립 UHF 방송국’을 합치면 지상파 민방은 총 127개국이다.
로컬 방송국들은 키국의 주요 방송 프로그램을 공유하면서 ‘네트워크 비용’, ‘전파료’ 등의 명분으로 광고 수익을 일정 비율 배분받는다. 이런 분배금이 지역 방송국 매출의 3분의 1에서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크다. 그러다 보니 지역 광고주를 직접 개척하는 것보다 분배금에 의존하는 ‘먹이사슬’이 고착화돼 있다. 즉 키국의 경영이 흔들리면 로컬국도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후지TV 계열 로컬 방송국들 역시 이런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여러 방송국이 후지TV처럼 광고가 끊기면서 AC재팬의 공익광고를 늘리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엔도 류노스케(遠藤龍之介) 후지TV 부회장은 지난 1월 27일 기자회견에서 “(계열 방송국에서) ‘하루빨리 신뢰를 회복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6)
광고 의존도가 훨씬 높은 로컬 방송국 입장에선 키국보다 이번 사태의 타격이 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127개 민방 중 73개국이 적자 예상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가 전국 127개 민방의 2026년도 3월 매출 감소액과 영업이익을 예측한 결과 이런 경향성은 확연했다. 전체 민방의 약 57%에 해당하는 73개국이 적자에 빠질 것으로 예측됐으며, 특히 후지TV 계열 방송국은 전부 포함됐다.7)
적자 추산액 상위권에도 후지TV(-552억 4,000만 엔)를 필두로 간사이TV방송(-58억 3,000만 엔), 도카이TV방송(-23억 1,000만 엔), 홋카이도분카방송(-9억 3,000만 엔), 센다이방송(-8억 8,000만 엔) 등 후지TV 계열이 포진했다.
그런데 다른 네트워크 방송국이라고 해서 형편이 나은 것도 아니다. 닛폰TV(214억 7,000만 엔)와 TBS(6억 2,000만 엔)는 키국을 제외하면 상당수 계열 로컬국이 적자에 허덕일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TV아사히(-39억 1,000만 엔)는 키국인 데도 후지TV 다음으로 큰 폭의 적자가 예상될 정도다.
원인은 역시 광고 수입이다. 일본 최대 광고대행사 덴쓰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TV 광고비는 전년 대비 3.7%p 감소한 반면, 인터넷 광고비는 같은 기간 7.8%p 증가했다. 전체 광고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TV는 23.7%, 인터넷은 45.5%로 격차가 컸다. 이처럼 광고 시장에서 TV의 존재감이 뚝뚝 떨어지는 상황에서 후지TV 사태마저 발생한 것이다.8)
광고주 입장에선 광고 매체로서 TV의 효용성을 다시금 검토할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적자 도미노 현상이 더 빠르고 격해질 수 있다는 심각한 경고다.
‘경영 통합’보다 ‘폐업’ 가능성 더 높아
일부 방송국은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육책을 펴고 있다. 닛폰TV 계열의 삿포로TV방송, 주쿄TV방송, 요미우리TV방송, 후쿠오카방송 등 4개 사는 올해 4월에 경영통합을 위한 지주회사(요미우리주쿄FS홀딩스)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프로그램 공동 제작과 방송 설비의 상호 이용 등을 통한 비용 절감을 위한 조치다. 또 신규 사업에 대한 공동 투자와 해외 사업 전개도 검토 중이다. 로컬국 특성상 부족한 인력 문제도 인사 교류와 그룹사 채용 활동 등으로 개선할 계획이다.9)
구조조정을 등한시하던 일본 민방계에선 신선한 움직임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로컬국 중에서도 경영 기반이 비교적 탄탄한 방송국들이 뭉치는 경우여서 군소 도시 방송국들의 통합 롤모델이 되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적자 방송국끼리 통합해 봐야 적자만 늘어날 뿐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경영 사정이 나은 방송국 입장에선 굳이 경영 통합을 통해 적자 방송국을 떠안을 이유도 없다.
결국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수많은 지역방송국이 ‘폐업’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어떤 식의 구조조정을 통해 연착륙할 것인지, 일본 민방계의 고민은 깊다. 방송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방분권이 강한 일본에선 지역방송국이 지역 경제와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역방송국의 수명이 그만큼 많은 것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다.
1) <中居正広9000万円SEXスキャンダルの全貌 X子さんは取材に「今でも許せない」と…>, 週刊文春, 2024.12.25, https://bunshun.jp/denshiban/articles/b10401?page=1
2) <米投資ファンド ダルトン フジテレビ親会社に日枝氏の辞任要求>, NHK, 2025.2.4, https://www3.nhk.or.jp/news/html/20250204/k10014711631000.html
3) <広告市場、CM中止で異変 番組制作にも影響―フジ問題>, Jiji Press, 2025.2.28, https://www.jiji.com/jc/article?k=2025022701249&g=eco
4) <フジ、CM233億円下振れ今期、単体で初の最終赤字>, 日本経済新聞, 2025.1.31, https://www.nikkei.com/article/DGKKZO86426400Q5A130C2EA2000
5) https://www.fujimediahd.co.jp/corporate/group.html
6) <【詳報】フジ記者会見が午前2時過ぎ終了…HD金光修社長「こんなに長いのは反省しなければ」>, 讀賣新聞, 2025.1.28, https://www.yomiuri.co.jp/culture/tv/20250127-OYT1T50051
7) <【全国民放テレビ局127社・赤字危険度ランキング】フジショックによる減益で73社が赤字に!?テレ朝と、日テレ・テレ東で明暗>, Diamond online, 2025.2.14, https://diamond.jp/articles/-/359231
8) <2023年 日本の広告費|媒体別広告費>, Dentsu, https://www.dentsu.co.jp/knowledge/ad_cost/2023/media.html
9) <日テレ系4社の経営統合で交付式 「系列全局が生き残るため」と抱負>, 朝日新聞, 2025.3.11, https://www.asahi.com/articles/AST3C3RPVT3CUCVL026M.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