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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에게는 공공의 이익에 봉사해야 한다는 사회적 역할이 요구된다. 그 가운데 헌신과 희생은 당연시되고 정시 퇴근, 휴식이라는 자연스러운 일상은 무시된다. 이렇듯 오래된 업무 방식의 원인과 언론인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나도 기자지만 기자랑은 결혼하지 마.”
과거 결혼에 관해 조언하던 언론사 기자가 나에게 한 말이다. 기자에게 일과 가정의 분리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거나 개인의 희생을 전제한다. 사건 중심 업무 구조, 예측 불가능한 호출, 반복적인 마감 때문에 휴일과 야간에도 업무가 이어진다. 내가 아는 기자 친구는 퇴근 후 집 앞까지 와서 카페로 들어간다.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린다. “육아하기 싫어서 일부러 안 들어가는 거 아니야?”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평균적으로 저녁 10시에 퇴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모습은 기자의 삶에서 일과 가정을 함께 챙기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왜 기자는 그런 방식으로 일할까? 기자 전문직주의는 기자가 사회적으로 공인된 전문성을 갖추고, 독립성과 윤리를 바탕으로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다. 이러한 전문직주의는 기자의 자율성과 책임감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헌신과 희생을 당연시하는 조직 문화를 정당화하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헌신과 책임은 성과 기준이 되며, 정시 퇴근보다 야근, 휴식보다 대기, 회복보다 지속이 강조된다. 변화의 필요성은 명확하지만, 구체적 방안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기자의 삶에서 ‘일상’은 가능한가
각기 다른 경력과 환경에 있었지만, 앞선 글에서 네 명의 기자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주제에 관해 같은 말을 한다. 기자 정체성과 가족 내 역할 사이에 갈등을 경험했고, 단순한 시간 조율의 문제가 아닌 정당한 삶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이들이 공통으로 마주한 어려움은 언제나 대기해야 하는 기자의 업무였다. 기자는 출입처 사건과 정보에 언제나 연결돼 있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출입처를 소홀히 하면 보도의 질이 떨어지고 중요한 정보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 결과 기자는 자율성을 가진다는 표면적 이미지와 달리 엄격한 시간 제약 속에 있다. 마감은 절대적이고 속보는 예고 없이 일상을 침범한다. 식사 중에도 대기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는 사례에서 업무와 생활 사이 분리가 불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 통제력을 잃은 기자는 예측 불가능한 일상을 받아들이며 소개팅 자리에서도 직업적 요구에 대응해야 했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개인은 이러한 문제를 불가피한 직업적 현실로 수용하며 서서히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시간에 관한 문제는 돌봄으로도 연결된다. 여성 기자는 육아휴직이나 유연근무제와 같은 제도적 권리를 사용하는 순간 조직 내에서 ‘전력에서 이탈한 사람’이라는 취급을 받았다. 복귀 후에는 중요한 기회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육아와 업무 중 한쪽을 포기하거나 양쪽 모두에서 죄책감에 시달리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제도적으로 양육과 직업의 병행을 보장하지만, 실제 조직문화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 구조 속에서 개별 기자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끊임없이 자책하게 된다.
네 명의 기록은 기자들의 일-가정 갈등이 개인의 시간 관리 능력 부족이 아니라, 전문직주의라는 가치 아래 정당화된 ‘헌신의 서사’가 구조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론사의 평가 기준, 동료 문화, 출입처 관계 모두가 정상적인 일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되어왔다. 결국 이들의 피로와 갈등은 좋은 기자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유지돼 온 구조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언론인이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시간 관리 기술이 아니라, 기자의 역할과 지속가능한 기자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다.
일·가정 양립, 조직이 나서야
해외 주요 언론사들은 기자의 과중한 노동과 정신적 소진을 조직 차원의 구조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복지가 아닌 보도 품질과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략적 대응이다. BBC는 ‘트라우마 리스크 매니지먼트(TRiM)’ 프로그램으로 충격적 사건을 취재한 기자들에게 심리 상담을 제공하며(BBC, 2021), 워싱턴포스트 등은 전문 교육을 받은 기자 중심의 ‘동료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해 내부 심리적 돌봄을 제도화했다(Cabra, 2025).
미국 머크랙(Muck Rack)의 전 세계 언론인 대상 설문조사(2025)에서 응답자 절반은 최근 이직을 고민했고, 3분의 1 이상은 언론 업계 장기 근속에 확신이 없다고 밝혔다. 38%는 지난 1년간 정신 건강이 악화됐으며, 주요 원인으로 불안정한 고용, 수면 부족, 재정적 불안정성을 꼽았다. 반면 정신 건강이 개선된 이들은 상담, 원격·하이브리드 근무, 동료들의 지지가 실질적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국내 언론계도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전직을 고려하는 기자들이 증가하는 것은 구조적 피로와 조직 문화의 긴장이 누적된 결과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인 조사를 기반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기자의 이직 결정에는 금전보다 조직 내 사기 저하와 직무 효능감 약화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송해엽·정재민, 2024). 또 다른 연구는 ‘좋은 기자’로서의 자기 인식의 결핍, 추가되는 온라인 관련 업무 부담이 언론계 이탈 의향을 유의하게 설명한다고 말한다(Song & Jung, 2024). 이는 기자들이 전문성과 삶을 동시에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의미 있는 경력 지속 조건을 찾지 못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언론사는 기자들의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구체적 조건을 조직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 유연근무제, 재택·하이브리드 근무 제도화, 육아휴직 활성화, 인력 재배치, 정기적 심리 상담은 언론 조직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전략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대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자들이 실제로 일과 삶을 병행할 수 있으려면, 제도를 뒷받침하는 조직문화의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기자 회복 돕는 기술 설계 필요해
문화는 상식이 아니라 반복된 행동의 결과다. 기자라면 당연히 대기해야 하고, 호출이 오면 즉시 응해야 하며, 아이가 아파도 출입처부터 챙겨야 한다는 믿음은 규칙이 아니라 관성이다. 이 관성은 조직의 평가 방식과도 깊게 연결돼 있다. ‘기록에 남지 않는 성실성’이 보상의 기준이 되는 환경에서는, 기자는 휴식이 아니라 희생으로 자신을 증명하게 된다.
일과 삶의 균형은 단지 기자 개인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문제가 아니다. 조직이 기자를 오랫동안 함께 일할 수 있는 존재로 존중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판단은 결국 저널리즘의 지속가능성과도 맞닿아 있다. 정시 퇴근, 휴식, 돌봄 같은 선택은 전문성을 해치는 행위가 아니라, 전문성을 지속시키는 전제 조건이다. 회복 없이 지속되는 헌신은 결국 사람도, 조직도 소진시킨다.
이를 위해 업무 구조 자체에 대한 정비도 필요하다. 기자의 일이 고강도인 것은 정보의 양 때문이 아니라, 정보가 끊임없이 흐르고 언제든 대응해야 한다는 긴장 상태 때문이다. 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기술과 제도는 그 압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 반복적인 확인 업무나 속보 대응은 AI와 협업으로 줄일 수 있고, 사내 커뮤니케이션과 업무 공유 시스템이 정비된다면 불필요한 대기나 중복 작업도 줄일 수 있다. 핵심은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기자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설계하는지다. 기자가 사람답게 일할 수 있도록 시간을 회복시키는 새로운 장치의 고민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