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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 같은 50일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4월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이른바 미국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을 선언한 후 불과 50일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5월 16일 금요일 현재도 당장 내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이 기사가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시점에는 내용과 180도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만큼 트럼프 관세 폭탄 이후 50일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사건과 반전이 반복됐다.
미국의 취약점, 중국의 강점 드러나
올해 1월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관세’를 무기로 꺼내 들었다. 지난 2월부터 미국의 최대 교역국인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중국에 10%의 관세를 부과한다면서 세 국가를 몰아세웠다. 전 세계 다른 국가들은 이를 초조하게 지켜보며 관세는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협상용이며, 자유무역이라는 근본적인 틀은 흔들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지난 4월 2일 ‘해방의 날’에 공개된 내용은 예상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미국과 교역하는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최소 10%의 보편관세가 부과됐으며, 미국의 해당 국가에 대한 무역적자를 기준으로 10~46%까지 상호관세가 부과됐다. 보편관세는 당장 2025년 4월 5일, 상호관세는 4월 9일부터 적용된다는 발표까지 나왔다.
우방국과 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이 스스로 세운 자유무역 체제를 스스로 무너뜨린다는 것이 자명해졌고,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미국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S&P500지수는 다음날인 지난 4월 3일 4.93%, 4일 5.85% 폭락했다. 제품의 약 80%를 중국에서 생산하는 애플은 가장 큰 타격을 받아 나흘간 주가가 23% 하락했다. 더 큰 후폭풍은 미국 채권시장에 닥쳤다. 4월 4일부터 채권금리가 급등하기 시작해 3.8%였던 10년물 국채 금리가 4.4%까지 올랐다. 미국 달러화의 가치도 하락하기 시작했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달러화에 대한 불신이 생겼음을 의미했다.
그 영향일까?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 상호관세를 90일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주식과 채권시장이 계속 폭락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크게 내려갔다. 월스트리트의 금융인과 기업들은 대통령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점차 유화적인 발언을 내놓기 시작한다.
반면 중국은 과거 1기 트럼프 행정부 때와 달리 미국이 관세를 부과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오히려 중국이 80% 이상을 점하고 있는 희토류와 희토류 자석에 대한 미국 수출을 금지하면서 미국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
미국 시간으로 지난 5월 8일에 공개된 영국과의 무역 협상 결과는 향후 다른 국가와 협상 방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슈였다. 영국은 미국과 무역에서 적자를 보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협상에서 미국은 자동차 시장을 일부 영국에 개방하고 10%의 보편관세는 그대로 유지했다. 결국 어떤 나라와도 10%의 보편관세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의미다.
지난 5월 12일 공개된 중국과 1차 협상 결과도 트럼프 행정부가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미국은 중국에 부과하기로 했던 145%의 관세를 30%로 낮추고, 중국도 125%의 관세를 10%로 낮추기로 했다. 두 나라는 90일간의 협상 기간을 갖기로 했다.
50일간 롤러코스터의 결말은 무엇일까? 이번에도 트럼프는 자신의 전매특허인 협상 전략을 구사했다. 상대를 당황시키는 비현실적인 제안을 먼저 내놨고, 나중에는 여기서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정공법에서 얻을 수 없는 이상의 것을 얻어내는 방식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협상 대상인 중국이 여전히 굽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기 트럼프 행정부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중국은 수년간 미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준비해 왔지만, 미국은 여전히 중국산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희토류부터 일반 공산품까지 중국은 전 세계 제조업의 중심이 됐다. 미국인들의 생활에 중요한 제품 중 하나인 아이폰도 80%가 중국에서 생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장이나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임기 4년의 대통령이고, 시진핑 주석은 종신 집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협상력은 시작부터 이미 불균형 상태였다. 트럼프 관세 폭탄 50일은 미국의 취약한 점이 무엇이고, 중국이 강한 점이 무엇인지를 오히려 보여줬다는 것이 미국 언론들의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엇을 원하나
해방의 날 이후 50일. 트럼프 대통령이 무엇을 원하는지 윤곽이 명확해지고 있다. 첫 번째, 트럼프는 진지하게 관세를 부과하고 싶어 하고, 이를 통해 미국의 세수를 늘리려고 한다. 10%의 보편관세는 모든 국가에 부과될 가능성이 크고, 과거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던 나라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트럼프는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이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른 국가에 관세를 부과해 세수를 늘리는 것은 물론 일론 머스크가 수장으로 있는 정부효율부(DOGE)를 통해 연방정부의 지출을 줄이려고 한다. 궁극적으로는 세금 감면을 통해 작은 정부를 만들려는 신자유주의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세 번째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흑자로 전환하려고 한다. 다른 국가들과 무역 협상에서 미국에 대한 흑자를 줄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현재 미국에 수출하는 물건을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세워서 자체 생산하거나,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늘려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은 경쟁력이 없다. 첫 번째로 미국 기업들의 제조 경쟁력이 있는 분야가 제한적이고, 두 번째로 높은 달러 가치가 미국산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달러화 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낮아져야 한다. 하지만 달러화 가치가 낮아지는 과정에서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이미 막대한 정부 빚을 지고 있는 미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이다. 미국 정부 예산의 6분의 1이 채권 이자를 갚는 데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 미란 보고서다. 올해 3월부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을 맡은 스티븐 미란(Stephen Miran)은 지난해 11월 <글로벌 무역 체제 개편에 대한 안내서(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라는 41페이지의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는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와 재정적자는 결국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붕괴시키고, 이는 미국이 결국 중국에 추월당하는 결과로 나올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해서는 달러 가치를 낮춰야 하기 때문에 스티브 미란은 ‘100년물 국채’를 제안한다. 매우 낮은 금리의 초장기 국채를 발행한 후, 미 국채를 외환보유고로 갖고 있는 국가들의 국채와 교환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낮아지면서 달러화 가치는 떨어지지만 미 국채 금리는 안정된다. 대신 100년물 국채를 보유하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미국이 방위 우산과 함께, 통화스와프를 통해 달러를 무제한 제공한다.
이런 미란 보고서의 내용이 실현될 수 있을지 여전히 시장에서는 많은 의문을 품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달러를 약화해서라도 국내 제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국제무역 현실에서 모든 제품을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품목별로도 현실성이 각각 다르다. 노동집약적인 의류, 전자제품 등은 미국에서 생산하더라도 엄청나게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반면 인건비가 중요하지 않은 반도체, 철강과 같은 대규모 설비 투자 산업이나, 미국 시장이 매우 큰 자동차 같은 산업은 미국 내 제조가 계속 확대될 여지가 있다. 미국이 향후 주요 무역 국가에 부여하는 관세에 따라 기업들은 생산기지를 옮길 것이고, ‘메이드인 차이나’ 제품이 미국에서 덜 팔릴 수는 있겠지만, 중국 기업이 소유한 베트남이나 인도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더 팔리는 수준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관세 폭탄이 촉발한 테크 산업과 미디어 지형의 변화
미국은 주요 무역 적자 국가들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멕시코, 베트남, 아일랜드, 독일, 대만, 한국, 일본이 대표적이다. 어느 곳이든 10%의 최소 관세는 부과되고, 미국에 수입되는 제품들의 가격은 인상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무역 정책이 ‘해방의 날’에 공개했던 것보다는 강경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면서 흔들렸던 금융시장은 어느새 회복됐다. 하지만 10%의 관세 부과는 점차 미국 경제나 세계 무역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관세보다 더 우려되는 점은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신뢰가 손상됐다는 점이다. 캐나다와 호주에서 열린 최근 선거에서는 트럼프 성향의 정당이 패배하고, 반 트럼프 성향의 정당이 승리했다. 일본, 한국, 대만 등 미국의 군사적 우산 아래에 있는 우방 국가들은 미국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힘을 강화해줄 것이고, 최근 중국의 유화적인 움직임과 함께 더욱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경쟁에서 누구보다도 우방국의 협력이 필요한 미국은 관세를 더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방국의 신뢰라는 더 중요한 자산은 잃게 될 것이다.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들이 트럼프 관세 이후 가장 주목하는 것은 전자제품 및 부품들의 향방이다. 애플 아이폰을 비롯해 수많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이 미국 밖에서 생산되고 조립되어서 미국에 수출된다. 이는 수십 년간 이뤄진 공급망으로 테크 기업들이 매년 성능이 개선된 신제품을 내놓으면서도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었다. 스마트폰, 랩톱, 서버컴퓨터, 태블릿PC, 스마트워치까지 중국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전자제품들을 기반으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구글, 아마존까지 빅테크 기업들의 제국은 세워졌다. 트럼프의 관세는 이 선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원자폭탄과 같은 조치였다. 해방의 날 이후 애플, 엔비디아 등 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가장 많이 폭락한 이유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5월 11일 스마트폰, PC, 반도체 등 주요 전자제품에 대해서는 협상기간 중 관세를 면제해 주면서 ‘대 파국’이 일어나는 것은 막았다. 하지만 보편관세 10%는 유지되며, 트럼프 대통령은 팀 쿡 애플 CEO를 콕 집어서 “중국에서 인도로 아이폰 생산을 옮길 것이 아니라 미국으로 옮기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빅테크들에 대한 압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제 중국 중심의 전자 산업 공급망을 어떻게 변화시킬지가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과제다. 이 과정에서 테크 산업의 패권이 중국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될 수도 있다. 애플마저 중국 스마트폰과의 경쟁에서 밀린다면 중국 스마트폰은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를 장악할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AI 개발 경쟁도 완전히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가 부여하는 관세가 현실화 된다면 미국 내에서 스마트폰과 AI 데이터센터용 서버 판매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서버는 대부분 중국에서 조립된다. 서버 가격 상승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로 미국 내 AI 인프라를 확대하려는 계획에 차질을 가져올 것이다. 반대로 중국은 AI 개발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트럼프 관세 폭탄은 미국의 미디어 지형도 바꿔놓고 있다. 급진적인 관세 정책과 이에 따른 금융시장의 충격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도를 가장 빠른 속도로 하락시키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CNN이 발표한 4월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41%의 지지율을 얻어 신임 대통령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트럼프의 지지도가 떨어지면서 미국의 이른바 주류 언론(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신문과 CBS, ABC 같은 방송 뉴스)에 대한 신뢰도 높아지고 있다. 퓨리서치가 지난 5월 8일 공개한 조사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주류 언론에 대한 신뢰가 낮았던 미 공화당 지지자들의 신뢰가 미 대선 전 40%에서 53%로 13%p나 크게 뛰었다. 트럼프 1기 때처럼 트럼프의 실책이 기존 주류 언론에게 부활의 기회가 될지 주목해 볼 만하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전 세계 무역 질서뿐만 아니라 테크 기업들과 AI 패권까지도 흔들고 있다. 태풍 같은 50일이 끝나고 바람은 잠잠해졌지만, 이 50일은 향후 수십 년간 세계 경제와 국제정치를 바꿔놓을 강렬했던 열병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