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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생활을 시작한 2018년, 외국인을 거의 본 적 없는 인도인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중에서도 “당신 가족은 어떻게 그렇게 하얗게 됐나요? 어떤 화장품을 바르나요?”라는 질문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인도에서도 한류 열풍이 거세졌다. K-POP과 드라마에 이어 한국 화장품이 인도 소비 시장에서 최근 큰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특히 ‘미백’제품에 대한 선호가 높다. 밝은 피부(fair skin)에 대한 선호는 인도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 인도는 이에 대한 ‘인도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우선 인도의 인종적·민족적 다양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가 비교적 동질성이 높은 편이라면, 인도는 지역·언어·종교·역사적 이동이 겹겹이 쌓인 다민족 사회다. 그만큼 피부색과 외모의 스펙트럼도 넓다. 북인도와 남인도, 도시와 농촌, 공동체와 계층에 따라 피부색 분포가 달라 보이기도 하고, 같은 지역 안에서도 개인차가 크다.
문제는 이 ‘다양성’이 오히려 피부색을 단순한 외모 특징이 아니라 사람을 분류하고 서열화하는 사회적 신호로 오해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인도의 맥락에서 피부색은 카스트와 결합해 상하 위계와 연결된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그래서 인도의 밝은 피부 선호는 한국의 ‘미백’ 소비와는 결이 다르며, 더 큰 사회적 긴장과 차별 문제를 야기해 왔다. 인도 대중은 왜 ‘밝은 피부’를 선호하게 됐을까?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상하 계층 관계로 이해하게 됐을까? 이 현상을 인도의 역사적·사회적 맥락, 특히 미디어와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밝은 피부’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편견
결론부터 말하면, 인도에서 밝은 피부 선호는 카스트와 인종이라는 두 축과 맞닿아 있다. 물론 그 연관성은 전통에 대한 오해와 바람직하지 않은 편견이 뒤엉킨 결과에 가깝다. 그럼에도 대중의 인식 속에는 ‘밝은 피부=상위, 어두운 피부=하위’라는 연상이 뿌리 깊게 자리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통과 카스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선호는 영국 식민지 시기 제도와 관행 속에서 강화됐고, 현대에 들어서는 미디어와 마케팅을 통해 더욱 확산·재생산됐다.
밝은 피부 선호의 기원으로 자주 거론되는 ‘전통에 대한 오해’를 살펴보자. 첫째로 카스트 계급을 표현하는 색채 상징을 들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카스트로 알고 있는 브라만, 크샤트리야, 바이샤, 수드라의 네 계층 구분은 바르나(varna)라 불리는 전통적 계급 체계인데, 바르나의 사전적 의미는 ‘색깔’이다. 종교와 학문을 담당하는 브라만은 흰색, 육체노동과 봉사를 담당하는 가장 낮은 계층인 수드라는 검은색으로 상징된다. 이는 실제 피부색과는 무관한 상징 체계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흰색=상위, 검은색=하위’라는 연상이 피부색의 위계화로 이어지는 데 영향을 줬다.
둘째, 카스트가 직업을 기반으로 한 계층 체계라는 점도 한몫했다. 하층 계급이 야외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고, 어두운 피부는 햇볕에 그을린 것으로 인식되기 쉬웠다. 그 결과 ‘어두운 피부=야외 노동의 표식=낮은 계층’이라는 상징적 연결이 강화됐다.
셋째는 이른바 ‘아리아인 침입설’의 영향이다. 아리아인이 인도 아대륙(Indian subcontinent)에 침입해 선주민인 드라비다인을 정복했다는 서사는 오늘날 고고학·역사학계에서 근거가 약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대중적 상상력 속에서는 여전히 강한 힘을 가진다. 여기에 “정복자인 아리아인은 희고, 피정복자인 드라비다인은 검다”라는 단순화된 도식이 더해지면서 밝은 피부 선호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작동해 왔다.
이러한 ‘전통에 대한 오해’에서 출발한 밝은 피부 선호는 영국 식민지 시기에 더욱 증폭됐고, 일부는 제도적 형태로까지 고착됐다. 1901년 인구조사를 주도한 영국 당국은 피부색과 코의 형태를 측정해 카스트 분류에 활용했다. 사회적 다윈주의를 근거로 “피부가 밝고 코가 좁은 사람은 아리아인에 가까워 우월하고, 피부가 어둡고 코가 넓은 사람은 드라비다인에 가깝기 때문에 열등하다”라는 주장까지 만들어져 유통됐다. 이러한 관점은 인구조사 보고서 등에 공식 기록으로 남으며 권위를 획득했다. 영국은 행정직과 하급 관료 채용에서 밝은 피부의 인도인을 선호했고, 군대 모집에서도 북인도 지역의 ‘피부색이 상대적으로 밝은’ 집단을 우선적으로 선발했다. 이 과정에서 밝은 피부는 ‘유능함’과 ‘용맹함’의 상징으로 포장됐다.
미디어가 강화한 이미지, 마케팅 단골 소재로
현대에 들어서는 미디어가 밝은 피부 선호의 강화와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인도를 대표하는 영화 산업인 발리우드의 영향력은 압도적이었다. 발리우드는 뭄바이를 거점으로 한 힌디어 영화 산업으로, 인도인의 일상적 가치관과 미적 기준을 이끄는 거대한 대중문화 엔진처럼 작동해 왔다. 오랜 기간 발리우드는 ‘밝은 피부를 가진 인물이 주연 배우’라는 공식을 반복해 왔다. 디피카 파두콘(Deepika Padukone), 알리아 바트(Alia Bhatt), 카리나 카푸르(Kareena Kapoor) 등 톱 여배우는 물론, 국민 배우로 불리는 아미타브 바찬(Amitabh Bachchan) 역시 밝은 피부를 지닌 배우로 인식된다. 이른바 ‘세 명의 칸(아미르 칸1), 살만 칸(Salman Khan), 샤룩 칸(Shahrukh Khan))’ 역시 인도 기준에서 밝은 피부를 가지고 있다.
발리우드 영화는 전통적으로 상위 카스트의 삶과 서사를 중심에 놓는 경우가 많았고, 그 주인공은 대체로 밝은 피부를 가진 인물로 그려졌다. 교훈과 도덕적 메시지를 중시하는 인도 신화적 서사 구조가 영화에도 반영되면서, 밝은 피부의 상위 계층이 어두운 피부의 하위 계층에게 교훈을 전달하는 방식의 이야기 역시 적지 않게 생산됐다. 인도 국민 배우인 아미타브 바찬이 이에 매우 잘 맞는 예다. 밝은 피부에 대한 선호는 인도 대중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해 온 영화 음악에서도 확인된다. 영화 음악에서 아름다운 여성을 ‘고리(गोरी)’라는 단어로 자주 묘사하는데, 이 표현은 문자 그대로 ‘밝은 피부’를 뜻한다.
역사적 맥락 위에서 미디어가 강화한 밝은 피부 선호는 곧 미적 기준으로 굳어졌고, 기업 마케팅의 단골 소재가 됐다. 기업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밝은 피부는 아름다움의 조건이며, 밝은 피부를 얻기 위해서는 소비해야 한다”라는 메시지가 광고와 캠페인을 통해 널리 확산됐다. 대표적 사례로 힌두스탄 유니레버의 ‘Fair & Lovely’를 들 수 있다. 이 브랜드 광고에는 피부가 밝아진 여성이 더 나은 일자리를 가지고 더 ‘성공한’ 남성을 만나 삶이 상승한다는 서사가 노골적으로 삽입되곤 했다. 2020년 힌두스탄 유니레버가 브랜드명을 ‘Glow & Lovely’로 바꾸었지만, ‘fair(밝음)’를 ‘glow(광채)’로 완곡하게 치환했을 뿐, 핵심 메시지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남인도 콘텐츠의 부상, 피부색 기준 바꿀까
그런데 최근 인도 미디어 지형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인프라의 성장과 OTT 확산으로 콘텐츠 공급이 다변화되면서, 힌디어 콘텐츠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고 남인도 콘텐츠 소비가 커지는 흐름이 뚜렷하다. 이는 곧 ‘밝은 피부 배우가 연기하는 밝은 피부 인물’의 비중이 이전보다 감소할 가능성을 의미한다. 또한 과거처럼 상위 카스트가 교훈을 전달하는 서사에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계층과 주변부의 이야기가 영화와 드라마에서 점차 더 많이 다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18년 개봉한 <Kaala(카라)>는 뭄바이의 하층 계급 출신 리더가 악덕 재개발 세력에 맞서는 서사를 담았다. ‘카라(काला)’는 힌디어로 ‘검은색’을 뜻하며, 앞서 언급한 바르나의 상징 체계에서 하층민을 연상시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영화 속 주인공은 검은 옷을 주로 입고 등장하며, 그 색채 자체가 메시지로 기능한다. 이 밖에도 2021년 〈Jai Bhim(자이 빔)>, 2019년 〈Asuran(아수란)> 등은 하층민의 현실과 저항을 전면에 놓으며 기존의 위계적 미적 기준을 흔들어 놓는 작품들로 읽힌다.

마케팅에서도 변화의 가능성은 보인다. 디지털 미디어가 성장하면서 마케팅 역시 디지털 비중이 커지고 있고, 이는 시장을 더 촘촘하게 세분화해 ‘맞춤형 메시지’를 만들 수 있게 한다. 데이터가 충분하다면 소비자의 피부색이나 정체성, 취향에 따라 서로 다른 캠페인을 집행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여기에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는 대형 광고 모델보다 소비자와의 심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점이 핵심 특징인데, 그만큼 다양한 정체성과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제안할 여지가 커진다. 과거에는 밝은 피부가 Fair & Lovely 같은 대중 브랜드 캠페인을 통해 획일적 이상향으로 제시됐다면, 앞으로는 다양한 피부색이 각기 다른 이상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열려 있는 셈이다.
디지털 콘텐츠 소비 확대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획일적이고 계층적인 밝은 피부 선호를 약화시킬 잠재력을 지닌다. 다만 역설적으로,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서 대중은 더 많은 콘텐츠에 노출되고, 이는 미디어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밝은 피부를 선호하는 사람의 ‘규모’는 줄어들지언정, 밝은 피부 선호의 ‘강도’가 오히려 더 심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디지털 미디어와 마케팅은 새로운 미적 기준을 제시하며 소비를 촉진하는 동시에, ‘돈을 써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 소비자를 만들어 낼 위험도 함께 내포한다.
과연 남인도 콘텐츠의 부상과 디지털 미디어 소비의 확산은 오랜 역사를 가진 계층적 ‘밝은 피부 선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과연 색깔에 근거한 편견과 차별이 둔화되고, 있는 그대로의 다양한 피부색이 아름다움의 새로운 기준으로 받아들여질까? 여전히 우려할 거리가 많지만, 피부색과 관련해 사회가 한 발 진보하기를 기대해 본다.
1) 아미르 칸(Aamir Khan)은 인도 사회의 여러 문제를 고발하는 영화의 주연을 맡거나 제작에 참여한 유명 배우다. 그를 피부색만으로 인도 전통에 기반한 계급 체계에 기여한 사람으로 보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하지만 그의 피부색이 하얀 것은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