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인도 신문의 범죄 기사를 읽다 보면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범죄를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출신 지역, 나이, 가족관계 등 피의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물론이고, 피의자의 이름과 사진이 기사에 그대로 실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로는 살인 사건 피해자의 이름과 얼굴까지 공개된다. 게다가 이런 보도가 이름 없는 인터넷 매체가 아니라, 오랜 역사와 전국적 영향력을 가진 영자 신문에 실릴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인도의 범죄 보도 관행이 한국과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예를 들어, 타임스오브인디아(Times of India) 델리판1) 3면에는 <사중 살인: 채권자의 전화는 어떻게 연쇄 비극을 촉발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2) 기사에서 다룬 사건은 채무와 관련해 아버지가 일가족을 살해한 범죄이며, 해당 기사에는 피의자의 이름, 나이, 과거 직장, 채권자의 이름과 채무 금액, 범행에 사용한 흉기와 그 가격까지 공개돼 있다. 심지어 해당 온라인 기사에는 피해자의 사진도 게재돼 있다. 같은 날 타임스오브인디아 벵갈루루판 3면에는 <19세 집단 성폭행 용의자 3명 추가 검거>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으며, 이 기사에는 범죄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추가로 체포된 피의자 세 명의 나이, 출신, 직업뿐 아니라 기존 체포된 두 명에 대한 정보도 다시 공개됐다.
인구가 많다 보니 범죄 건수 역시 많을 수밖에 없는 인도에서는 언론이 매일 범죄 기사를 보도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기사가 피의자 신상을 포함한 범죄 관련 정보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인도에서는 신상 공개와 함께 낙인찍기가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델리판 기사에는 일가족을 살해한 가장을 “상습 도박꾼”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묘사했고, 소셜미디어에 무기 사진을 올린 적이 있다는 과거 행적을 언급했다. 이는 피의자의 반사회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다. 기사는 피의자의 범행 과정을 재구성해 상세히 보도하고, 이는 독자가 기사를 읽으면서 피의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의 인식 속에 피의자는 이미 범죄자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바로 ‘미디어 재판’이다.
미디어 타고 국민 분노 확산
판결에 영향 미치기도
인도에서 미디어 재판의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의 니타리(Nithari)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이다. 2006년 12월에 니타리 마을에서 실종된 자녀를 찾던 부모들이 한 저택 배수구에서 유골을 발견했다. 배수구와 저택 근처에서 최소 16명의 아이와 젊은 여성들의 해골과 시체가 발견됐으며, 대부분 인근 슬럼가 출신의 빈곤층 자녀들이었다. 저택의 주인이며 부유한 사업가 모닌더 싱 판데르(Moninder Singh Pandher)와 그의 집사인 수렌드라 콜리(Surinder Koli)가 유괴, 성폭행, 살인뿐 아니라 식인 및 장기 매매 의혹으로 피의자 신분이 됐다.
인도 미디어는 이들을 ‘니타리의 괴물’로 묘사하고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며 취재 경쟁에 몰입했다. 2009년 2월 인도 법원은 제1심에서 이들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며, 당시 법정 밖에는 분노한 군중이 몰려와 피의자들에 대한 즉각적인 처형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당초 수사기관은 판데르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으나, 법원이 여론과 미디어의 압박 속에서 이를 뒤집고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그러나 2009년 9월, 고등법원은 판데르에게 무죄를 선고하였고, 콜리의 사형 판결은 유지됐다. 이후에도 인도 법원은 개별 살인 사건에 대해서 콜리에게 연속적으로 사형 판결을 내렸다. 콜리는 2014년 사형 집행 직전까지 몰렸으나 대법원이 자정 청문회를 열어 집행을 일시 중단했고, 2015년 1월 고등법원은 콜리의 형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하지만 2019년 10번째 살인 사건 재판에서 다시 사형 선고를 받게 됐다.3)
롤러코스터 같은 법원의 판결은 2025년 11월에 대법원 무죄 판결로 결말지어졌다. 대법원은 수사 과정에서 고문과 가혹 행위로 인해 비자발적으로 자백을 한 점, 자백 당시 변호인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점,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 수사 기관의 수사 방식이 과학적이지 않은 점을 무죄 판결의 근거로 내세웠다. 그리고 “여론의 분노가 유죄의 근거가 될 수 없다”라는 점을 언급하며 미디어가 부추기고 대중이 반응한 미디어 심판의 문제점을 명시했다.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범죄 행위를 낱낱이 묘사하는 행위는 국민의 알 권리 및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적 가치, 그리고 무죄 추정의 원칙 및 공정한 재판이라는 사법적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여기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는 그 나라의 역사적 경험과 사회적 합의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인도 역시 헌법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과 프라이버시 권리를 보장한다. 또한 법정 모독법에 따르면 재판에 계류 중인 사건에 대해 판사나 배심원에게 선입견을 줄 수 있는 보도는 법정 모독에 해당할 수 있다.

제재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재판이 이어지는 이유
2006년에 인도 법률위원회는 <미디어에 의한 판결(Trial by Media)> 보고서에서 언론이 피의자에게 불리한 정보를 보도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언론평의회(PCI, Press Council of India)의 저널리즘 준칙에 따르면, 언론인은 피의자 사진 공개를 자제하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 보도를 금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권고 사항일 뿐이다. 인도에서 미성년자 신원 공개와 성범죄 피해자 신상 공개는 법적으로 엄격하게 제한된다. 인도 언론은 법적으로 엄격하게 제한되는 이 두 가지 사항은 잘 따르고 있다. 하지만 권고 사항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적 처벌이 명시된 금지 영역을 제외하면, 일반 형사사건의 피의자나 일반 살인 사건 피해자에 대한 보도에서는 여전히 세부 신상과 이미지가 비교적 쉽게 노출된다.
이런 현실의 배경에는 인도의 미디어 환경과 사법 시스템이 함께 놓여 있다. 우선 보도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인도 정보방송부(MIB, Ministry of Information and Broadcasting Government of India)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도에서 허가된 TV 채널은 921개이며, 이 가운데 뉴스·시사 채널이 약 400개다. 또한 2024년 말 기준 등록된 인쇄 정기간행물이 15만 4,362개로 집계됐다. 물론 이 숫자에는 신문뿐 아니라 잡지와 여러 정기간행물이 함께 포함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인도 뉴스 시장의 규모와 경쟁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 이렇게 많은 매체가 독자와 시청자의 주의를 붙잡기 위해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자극적 제목과 상세한 묘사가 유혹이 되기 쉽다.
사법 지연도 중요한 배경이다. 인도 국가 사법 데이터 그리드(NJDG, National Judicial Data Grid)에 따르면 2026년 3월 기준 하급심, 고등법원, 대법원을 합한 계류 사건은 약 5,519만 건에 달한다. 사건의 처리 기간도 길다. 하급심에서 계류된 사건 중에서 10년이 넘은 사건이 약 500만 건이고, 고등법원에서는 155만 건으로 전체의 24%에 달한다. 재판이 너무 느리다 보니, 대중은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기보다 언론이 즉각적으로 내려주는 심판에 더 열광하게 된다. ‘법은 멀고, 뉴스는 바로 옆에 있다’라는 인식이 무죄 추정의 원칙을 기다릴 인내심을 앗아가고 있다.
또한 인도인의 사법 시스템 불신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 정의 프로젝트(WJP, World Justice Project)의 2025년 법치 지수에서 인도는 민사사법 부문 114위, 형사사법 부문 89위에 그쳤다. 이 수치만으로 인도인의 사법 불신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법의 효율성과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탄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는 미디어 재판이 더욱 힘을 얻고, 판사 역시 여론이 이미 확정해 버린 결론과 다른 법적 판단을 내릴 때 큰 사회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물론 인도 내부에서도 이런 관행을 비판하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언론계와 법조계에서는 인도 언론평의회의 저널리즘 준칙을 더 엄격히 지켜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고, 인도 대법원도 2026년 1월 각 주 정부에 형사사건 관련 경찰 브리핑 정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정보 공개와 이를 증폭시키는 언론 보도 관행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당장 큰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인도 사회 내부에서 과도한 신상 공개와 미디어 재판의 위험성을 성찰하는 움직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최근 중대 범죄 피의자의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여론이 매우 강하다. 가장 최근 사례로 2026년 3월 서울 강북구 모텔 연쇄살인 사건이 있다. 검찰은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거쳐 피의자의 이름, 나이, 머그샷을 공개했다. 앞서 2025년 텔레그램 목사방 사건 총책 김녹완의 신상도 공개된 바 있다. 이런 요구에는 분명 장점도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유사 범죄 예방과 재범 억제에 이바지하며, 피해자와 시민에게 국가가 중대 범죄에 단호하게 대응한다는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사례는 이런 요구가 지나칠 때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를 보여준다. 한국 사회가 피의자 신상 공개의 균형점을 찾을 때 인도 사회는 하나의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1) 나라가 크고, 지역에 따라 구독자의 관심사 차이가 있는 인도 특성상 중앙 일간지는 지역별로 조금씩 다른 기사를 싣는다. 타임스오브인디아는 델리, 아메다바드, 벵갈루루, 뭄바이 등 14개 지역판 신문을 출간한다.
2) Khushi Bhuta, <Delhi quadruple murder: How a call from lender triggered tragic chain of events>, The Times of India, 2026.3.2,
3) 인도 사법 체계는 피해자가 여러 명인 범죄 행위에 대해, 각 피해자를 별개의 독립된 사건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강하다.



